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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혜숙 Jul 05. 2024

북클럽의 스포일러, 어떻게 할까!

먼저 나의 잘못이라고 인정하자. 그렇게 인정하면 일은 다른 식으로 흘러갈지도 모른다.

 

북클럽 단톡방에 있다. 오랜만에 참여자다. 아는 분을 만났다. 나를 친근하게 느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분과는 약간의 거리감, 뭔지 모르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도 아는 분이니 약간의 가식을 담아 인사했다. 그리고 톡을 나누는데, 영문학 전공으로 이 작품을 조연출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는 얼굴과 끼가 없어 연극을 못 했다고. 


이런 상황에서 늘 튀어나오는 생각이 있다. 어디서 읽은 구절이다. 어린이집 상담을 갔을 때, 부모님이 먼저 아이의 단점을 늘어놓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아이를 좋게 평가하는 선생님이라도 부모님의 말을 듣고 판단이 흐려질 수 있고, 그 프레임을 아이에게 씌우는 일이 생긴다고 했다. 심리적인 부분이고, 그럴 만도 하다.

 

외국어를 배우다 보면, 내 외국어 실력에 대한 변명을 해야 할 때가 많이 생긴다. 혹은 자기 실력이 별로 좋지 못하니깐,라는 겸손으로 아시아 국가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 사실이 그렇다 할지라도 상대방의 기대치를 낮추기 위해서 그런 말은 자주 한다. 그런데, 유럽에 살다 보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장단점이 있지만, 결국엔 좀 지내다 보면 그 사람의 언어 습관과 성격까지 알게 되고, 각자의 판단으로 이 사람의 호감을 결정한다.


"제가 독일어를 못해서요.라고 하면, 유럽에서 "겸손하시네요. 잘하시는걸요." 그런 말이 돌아오기보다는 이상하게 쳐다보기만 할 텐데. 내 언어 실력, 나의 경험이 부족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가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점이 좋았고 나빴는지 그 경험을 나누는 것, 교류의 목적이 더 중시되는 문화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그녀의 말이 조금 거슬렸다. 


어린이집 상담을 예로, 당신이 끼가 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신의 조연출 경험은 좋은 것이고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라고, 조금 돌려서 메시지를 넣었다. 


그것 때문일까. 그다음 날, "소설의 남자 주인공이 왜 나쁜지 모르겠네요."라고 단톡에 메시지를 보냈는데, 그분이 내게 개인 톡을 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결말을 미리 알고 싶어 하는 그것도 자발적인 뛰어넘기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아웃팅 당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남자가 누구를 강간해요. 그건 영화에 안 나오나 보죠?"라고.

"그런 건 몰라도 되는데요."라고 답톡을 보냈다. 

그런데, 좀 억울하다. 나를 뭘로 보나. 내가 그걸 알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을까. 이 분은 왜 그러는 걸까. 일단,  넘기기로 했다. 무시하기로. 법륜 스님이 시주로 똥을 주면, 받지 않으면 된다고 했으니깐. 


그리고 하루 지나고, 감상을 단톡 창에 나눴다. 주인공 이름을 내가 짐작하는 대로 발음을 올렸는데 그게 아니고, 자기가 연극에서 봤던 걸로 알려줬다. 물론 작품을 이해했을 때, 그런 발음이 맞다. 그런데 기분이 나빴다. 그 방의 방장님은 오디오북에서 들었다며, 그 발음 말고 다르게 발음할 수 있다고 내 편을 들어줬다. 


위로가 약간 됐지만, 감정이 상하는 것은 늘 우발적인 사건이 연달아 발생할 때, 시간적으로 연발이 아니어도, 머릿속에서 그 사람에 대한 감정적인 것이 이어지면 증폭된다. 내 경우는 연발이어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지인은 이런 상황이  웃기다고, 이걸 글로 써보라는 거다. "당신이 잘하는 그거, 글로 풀어내요." 아니 이런 정도의 사건 가지고 글로 풀어내야 하나. 하면서도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리고 가볍게 손끝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풀어내고 나면 괜찮아져야 한다. 적어도 40도 열이 5도는 하강했으므로, 글은 역시 치유다.

 

그래서 그 언니를 어떻게 할까. 

귀엽게 봐줄까? 

아님 똑같은 걸로 복수할까. 

(질문을 하는 동시에 어떻게 복수할까 요리조리 보고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복수하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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