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마을 어귀에는 비석이 서 있다. 오석 위에 크게 성북 아래는 작게 맥불이라고 음각으로 적혀 있었다. 지원은 그것이 어릴 때는 더 크고 낡았다고, 언제는 논바닥에 처박혀 있었다는 걸 기억했다. 그것이 다시, 당당하게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었다. ‘저 비석은 썩는 시체와는 달리 언제나 저기서 비바람을 맞아도 부서지지 않고 마모만 되어 마을을 지켜보고 있겠지.’ 도로에서 양편으로 펼쳐진 양이 논을 끼고 십 미터를 들어가면 담장에 보일러 수리 광고판이 붙어있다.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앞 동네 세 번째 집이었다.
지원은 이제 호성이 집의 석류도 담장 위로 손만 뻗으면 딸 수 있었고, 집을 고치면서 베어버린 감나무 댁 집의 탱자도 몰래 훔쳐 논으로 멀리 던질 수 있었다. 동쪽 대문에 아버지의 파란 트럭이 삐져나와 있었다. 작은오빠가 처음으로 고등학교에서 만든 은색 철 비둘기가 떨어진 타일 몇 개를 토대로 서 있었다. 은색 눈이 예리하게 지나는 동민들을 관찰했다.
마을로 들어서면서 차가 덜컹거렸다. 차 문을 열자 반긴 거친 시멘트 바닥이 여전하다고 지원은 생각했다. 차에서 내려 이민 가방을 트렁크에서 꺼내 현관으로 끌고 들어갔다. 도쿄에서 짐을 끌다 부서진 바퀴 하나가 시멘트 바닥에서 너덜너덜 거리는 살점처럼 흔들거렸다.
유학을 떠나면서 다시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다. 결국엔 다시 돌아왔다.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처럼 어쩔 수 없이 운명처럼 돌아와야 하는 곳이었다. 지원은 현관 문을 열기 전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수리한 집에서 과거의 생각은 희미했다. 지원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나왔어.
-어. 딸이 왔어?
하고 장계댁은 여윈 지원의 얼굴과 몸을 한번 훑고 눈을 약간 찡그렸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머리라고 하는데, 숱 친 헤어스타일의 딸이 낯설어 보였다. 1년 만이었다. 딸은 일본에 도착해서 한번,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 연락이 점점 뜸해지더니, 돌아온다고 전화를 한번 했었다. 그간의 일본에서의 일과 여행을 했다는 말을 며느리에게 들은 것 같은데, 먼저 딸의 어색한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짐이 그게 다야?
그게 짐이 다라니. 지원은 엄마는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했다. 딸을 고모 집에 더부살이로 보내 놓고 쌀만 보내면 전부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이국으로 출국하는 딸을 배웅하지 않았다. 지원은 교환 학생에 합격한 후에 통보하듯 엄마에게 알렸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중요한 결정을 혼자 했고, 통보하듯 엄마에게 알렸다. 엄마는 잘 받아들였다. 편리했지만, 지원은 쓸쓸했다. 유학 결정과 일본에서의 생활을 궁금해하길 바랄 수 없었다. 지원은 언젠가부터 그건 ‘엄마’라는 명사에 꼭 붙은 의미처럼 생각했다. 오빠 상원이 아기를 낳아, 여름 새벽 서늘한 피해 애경을 이 집으로 들어왔을 때도 엄마는 덤덤하고 대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돈은.
지원은 엄마가 돈보다, 어떻게 말 모르는 곳에 가서 살 것인지, 학점은 충분했는지를 묻길 바랐다. 그것보다 먼저, 대학은 잘 다니고 있는지 수업은 어떤지부터 물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 면접이나 시험은 어렵지 않았는지. 어떻게 합격하게 되었는지를 물어봐 주길 바랐다. 무엇보다 딸의 안위를 걱정하고 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좀 더 세심하게 물어봐 주길 바랐다. 그런데, 지원은 엄마가 그렇듯 단편적이고 현실적으로 무심하게 답했다.
-여기서 학비를 똑같이 내고, 거기서 아르바이트해서 용돈을 벌면 돼.
-그럼 됐네.
그럼 뭐가 되는 것일까. 용돈은 항상 모자랐고, 오빠가 집에서 가정을 꾸린 후 모든 돈이 거기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기저귓값, 장난감, 그리고 그 둘 내외는 대학 등록금까지.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상원은 트럭 사업을 시작했다. 부도가 났다. 지원은 대학 등록금도 못 내서 학자금을 냈다. 학자금 이외의 용돈은 벌었다. 학과 사무실에서 장학금을 받고 교수님의 글을 타이핑했다. 그 시간에 읽어야 하는 전공 책을 읽고 친구들과 놀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한 번이라도 알아주길, 한 번이라도 물어봐 주길 바랐다.
지원은 엄마와 멀었다. 엄마는 말을 꺼내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자동응답 메시지 같았다. 어쩌겠노. 그런 소용없는 말. 돈은?이라고 현실적인 걸 걱정했지만, 그런 데는 속수무책으로 손을 들었고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엄마. 벽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짐 정리해.
-어.
지원은 이민 가방에서 옷가지들을 먼저 꺼내고, 그 아래서 게타, 일본 과자, 그리고 약간의 선물들을 꺼냈다.
“언니, 게타 갖고 싶다면서. 이거 안 맞겠지? 장식품이야. 그래도 예뻐.”
“화과자와 이런 작은 열쇠고리는 우리 엄마 갖다주고, 짐도 참 초라하다. 유학이라서 그런가 보네.”
지원은 가방 밑에서 책들을 꺼냈다. 깨끗했던 거실에 늘어진 자신의 물건들을 보자, 지원은 남의 집에 속옷을 늘어놓은 듯 민망했다.
-언니, 내 짐 이거 어디 놔두지?
-일단 작은방에 갖다 놔. 거기서 자고.
지원은 짐을 대충 이민 가방에다 집어넣고 이민 가방을 끌어다 방구석에 세웠다. 작은방 하나에 깨끗한 누빔 한 이부자리와 푹신한 꽃무늬 이불이 정리되어 있었다. 작은 앉은뱅이 책장. 오른쪽으로는 티브이 장에 작은 티브이, 그 사이에는 철제 옷걸이가 있었다.
지원은 아버지가 들어오는 기척을 느꼈다. 장계 양반은 뒷문으로 들어왔다.
-저 왔어요.
-어 왔나. 몸은 건강하고?
-네.
-아버지, 지원이가 가지고 온 일본 과자 좀 드셔 보세요.
지원과 아버지, 엄마, 애경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일본은 어땠어?
애경이 지원에게 물었다.
-좋아. 오기 전에 짐 들고 도쿄 가서 친구 집에서 자고, 또 그거 끌고 기차 타고 역까지 가는 게 좀 힘들더라.
-이제 돌아왔으니깐 며칠 푹 쉬어.
지원은 다시 그 겨울로 들어온 것 같다. 작은방에는 지원이 가기 전에 꽂아두고 간 책들이 있었다. 굴뚝 위의 철학자. 황금 비늘,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 철학 책을 꺼내 자연스럽게 펼쳐봤다. 아직도 어려운 전공 책들. 몇 구절을 읽자 스르르 졸렸다.
-엄마, 그거 어디다 놨어? 내 물건들.
-버렸을까? 나도 잘 몰라. 언니가 보일러 방에 넣어 놨던가. 너거 언니한테 물어봐
애경이 주물럭을 팬에 볶으면서 말했다.
-보일러 방에 있어. 그런데 다 있을런지는 모르겠네. 엄마가 아무거나 다 보일러에 넣고 태워버렸거든. 몇 개 건져 놓은 건 그래도 있을 거야.
연두색 판넬 샤시 보일러 실 문은 가벼웠다. 문을 열자 크기가 구분되지 않는 공간에서 후끈하게 석유내가 났다. 빛이 차단되고 보일러가 들어선 그 공간에서 먼지 한가득을 덮어쓸 것 같아서 지원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둔 채 왼쪽 벽에서 스위치를 더듬거리다 켰다. 서서히 밝아보는 공간에는 왼쪽에서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보일러, 그 옆 선반 위에 구식 빨간 전기 팬, 졸업 앨범, 테니스 라켓이 흐리게 보였다. 그 아래 가기 전에 따로 챙겨 놨던 종이 상자가 있었다. 쥐 오줌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쥐가 찍찍거리며 어디선가 나올 것 같았다. 뿌연 백열전구 아래는 눈을 깜박거려도 어두웠다. 상자를 받쳐 들고 손끝에 포슬한 먼지를 느끼며 상자를 조금 열었다.
일기장과 편지, 몇 개의 사진들. 소중한 추억의 증거들이 과거에서 꿈틀거렸다. 파란색 바탕에 흰색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는 일기장을 들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해졌다. 그 몇 달을 지원은 기억했다. 수화기를 들었다. 고요한 오후면 마지막 번호가 333로 끝나는 번호를 누르고 수화기를 드는 이를 생각하며 떨었다. 누구인지 이름을 밝히고 지연을 바꿔 달라는 말을 해야지. 드디어 목소리가 들렸다.
-어, 무슨 일이야?
-아니 그냥. 뭐하나 해서.
그녀가 전화를 받으면 뭘 했는지, 숙제는 했는지, 뭘 하고 놀 건지. 학교에는 몇 시에 갈 것인지, 쓸데없는 말을 물었다. 지원은 그 아이가 매일 전화에 심드렁하고 빨리 끊으려는 걸 눈치챘다. 그래서 학교에서 만나면 그녀의 땋은 머리를 뒤에서 당기고 가방을 일부러 지나가면서 건들기도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도 그 마음을 해결할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을 일기장에 적었다. 낱 개 낱 개로 마음을 똑바로 써서.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도 적었고, 마음이 심란 복잡한 것들을 다 적었다.
부 반장이 담임 선생님이 검사를 마친 일기장을 반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친구들과 놀고 있는 사이에 부 반장이 펼쳐진 부분인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펼친 부분이었을 부분을 보란 듯이 읽었다.
-야, 내놔!! 안 내놔?
“이 멸치 머리에 상어 눈 가진 게.
-너 그래 봐라. 나 다 말한다. 애들아, 들어봐. 지원이가 누구 좋아하는지 알아?
-너 입 다물어.
지원은 기정의 입을 손바닥으로 가로막았다. 그리고 가볍게 주먹으로 옆구리를 때리고 발길질했다.
-그만해라. 아니면 너 진짜 죽는다.
지원은 그때 어떻게 기정이를 침묵하게 했는지 잊었다. 돈을 줬을까. 과자 한 봉지를 쉬는 시간에 갖다 바쳤을까. 다만, 지원은 일기장을 받아들고 나서, 아직도 벌건 얼굴로 의심을 살 만한 곳을 싹 다 지웠다. 그 장은 너무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한 장을 거의 다 화이트로 채웠다. 물기를 머금은 종이가 볼록하게 튀어나고 덕지덕지 뭉친 곳은 흰 기름을 두르고 천천히 말랐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다 지웠다. 이제 아무도 모른다. 지원은 그다음 일기장에서 문구를 읽었다.
-이제 전화하지 말아야지. 이제 표 안 내야지.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척해야지.
그리고 지원은 정말로 다른 애를 좋아하는 척했다. 공부를 더 열심히 했고, 체육을 더 열심히 했고, 친구들과 고루고루 잘 지냈다. 화이트 데이나, 빼빼로데이는 영진이에게 선물을 하면서 기정의 발언이 아주 망가지는 모습을 보았다. 어제 상민을 좋아한다고 양팔로 몸을 감싸고 좌우로 흔들던 뚱뚱이 지영은, 몇 주 후면 동현이 체육시간에 날렵하게 뛰는 걸 보고 똑같이 두 손을 모으고 팔짝 뛰었다. 빼빼로 데이에는 동현이에게 직접 만든 카드를 쓰고 책상 서랍에 몰래 넣어놓겠다고 했다. 누구를 좋아하고 미워하고는 사건사고처럼 그날의 뉴스였지만 몇 주가 지나면 소리 소문도 없이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앞으로 몇 장 앞에는 화이트 위에 적은 파란색 글과 그 아래 검은색 볼펜으로 적은 것들이 서로 엇갈렸었다.
-한자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지. 어제는 국어시간에 그걸 못 맞춰서 코팅 한 대를 맞았다. 아파도 너무 아팠다. 좀 더 신중하게 나갈 걸 그랬어.
우글우글해진 종이에서 화이트의 흔적은 다 사라졌다. 그리고 진실은 선명했다. 그 아래는 과거의 뒷장에서 선이 춤췄다. 결심과 에피소드 뒤에 검은 글자.
-넌 너무 예쁘고, 착하고 옷도 잘 입어. 너랑 친해지고 싶어.
-좋아하는 것일까. 좋아하는 거겠지. 그럴 리가. 그건 병이잖아.
기정이가 읽었을 그 부분을 읽고, 지원은 그때처럼 얼굴을 붉혔다. 병… 그건 전염병일까. 그 병에 걸리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가려울까. 아니면 바늘로 찌르는 파열 통증을 느낄까. 지원에게는 그것은 서늘해졌다. 다른 것들과 다르고, 발각되면 손가락질이 지원의 이마를 밀어내고, 다시 돌아오면 다시 밀어내는 자존심이 무척 상하는 그런 학칙을 어긴 불량 학생들에게 학생 주임이 하는 체벌 같은 그런 것이었다. 손을 들고 있으면 지나가는 후배와 선배들이 알아보고 키득키득하는 그런 창피함이기도 했다.
지영이처럼 다음 주는 동현을 좋아하고, 그전에는 상민을 좋아하는 일이 그래서 드러내도 그러냐고, 그냥 넘길 수 있는 그런 일이 되었길 바랐지만.
지원은 일기장을 덮었다. 지원은 한숨을 쉬고 몇 개 편지를 들췄다. 수애의 사진과 쪽지. 미정과 주고받았던 의미 없는 편지들. 몇 번이나 확인하고 다시 본 기억이 선명한 사진들과 편지들.
-버릴까? 아무도 모르게 나무 보일러 불길에 넣어버리면 되잖아. 집을 따뜻하게 데우겠지. 이 집 바닥을 데우고, 열로 사라지겠지.
그러려고 지금 이걸 다시 찾은 거잖아. 모든 걸 지우고 새로 시작하려고. 지원은 변했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만난 친구들, 어떤 이야기도 잘 들어주는 그들과의 즐거운 시간이 지금껏 없었던 다른 삶을 다른 형식으로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건 무지개색이었다. 돈이 있고, 아껴주는 친구가 있다면, 몸을 뉠 작은 공간이 있다면 충분했다.
지원은 그 작은방에 이제 짐을 비워 찌그러진 이민 가방을 어디에 둬야 할지 고민했다. 보일러 방에 두면 먼지가 묻을 것이었고, 대학으로 돌아가면 다시 꺼내야 할 것이다. 지원은 그렇게 확실치 않을 때 침묵하기로 했다.
지원은 집에 돌아오면 졸렸다. 계절에 상관없이, 그곳에서는 힘을 잃었다. 누워 있으면 작은방에서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소마 굿 간에서 숨을 킁킁거리를 소들의 낮은 발굽 소리를 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어두웠다. 엄마가 있는 새벽인지, 가족들이 아무도 없는 저녁 무릎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지원은 그 시간으로 돌아갔다.
멀리 타국에서 일할 때도 딱 그 시간이면 그 순간에 느끼는 감정이 있었다. 서글픔,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 다난한 하루를 지내고 지친 영혼에게 주는 달가운 선물이 아니라 어중간했다. 그리고 또다시 몇 시간을 이겨내야 하는 부담스러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