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산책 길, 잠시 멈춰 햇빛을 쬐다, 계속 걸었다. 하루사이로 바뀌는 날씨 탓에 길은 반복해 얼고 녹았다. 햇빛이 내리쬐자 길 위에 눈얼음은 투명해졌다. 뭇국에 든 무 같다. 고춧국물에 동동 떠 있는 어슷썬 무. 그러자 멸치 육수와 조선 간장, 마늘과 고춧가루까지 넣어 칼칼한 엄마표 표고버섯 뭇국 향이 확 끼쳤다.
엄마는 늘 바빠서, 미리 장보고 미리 끼니를 챙기는 일은 없었다. 들일을 마치고 급히 들어와, 말곰히 세수를 하고 앉은 남편이 시장해서 김치를 안주로 소주를 한잔 마실 때, 그제서야 보이는 재료로 잡히는 대로 요리했다. 그런 많은 날 들 중의 저녁 때.
학교를 다녀오자 냄비에는 이미 노랗고 구수한 멸치 육수가 끓고 있었다. 하얀 김이 나는 냄비에 엄마는 불린 표고 버섯을 한 주먹, 고추가루 병에서 밥숟가락 가득 넣었다. 콜록 콜록, 혀를 내고 재채기하던 엄마는 서둘러 포대에서 흙 묻은 무를 꺼냈다.
소매를 걷어올리고 물에 무시를 씻는 둥 마는 둥, 대충 필러로 껍질을 벗기고, 왼쪽 팔뚝에 척 걸쳤다. 아이고, 달다! 먹어볼래? 아니. 엄마는 무시한 조선칼로 열어 놓은 냄비에 대고 무를 슥슥 빗어넣는다. 수제비를 떠 넣듯이, 무를 치듯이 그 안으로 넣었는데, 아버지가 뭘 물어보면 그 어슷한 무가 가스밸브에도 타일에도 붙었다. 저 냥반은 바빠 죽겠는데 말을 시키노. 딸, 냉장고에서 점심 때 남은 주물럭 좀 데워. 엄마는 그렇게 한참 동안 무를 어슷 썰어 넣어었다. 찧은 마늘과 조선 간장 한 숟가락을 넣고 간을 봤다. 아이고 짜. 오만상 찡그린 엄마의 표정을 보니 오늘도 실패인 것 같다.
살찐 표고 버섯의 미끈한 표면을 보자 식욕이 돋았다. 그 옆에 무가 동동 떴다. 얇은 데는 투명해서 살얼음, 두꺼운 데는 하얘서 땡얼음. 숟가락으로 국물을 휘젓자 마늘이 표면에 떠오르며 알싸한 향이 은근히 퍼졌다.
아버지는 국을 한 입 떠먹고, 입맛에 맞는 건지 아니면 너무 배가 고팠던 건지 아무 말 없이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사실 나는 꽃게탕과 오징어국을 더 좋아한다. 그런 국들이 나오면 엄마가 부르기 전에 이미, 밥상에서 대기했다. 아니면 엄마가 가스 불을 끄기 전에 국그릇을 가지고 기다리던지. 표고버섯 뭇국은 그저 그랬다.
엄마는 농삿일과 집안일을 동시에 해냈다. 지금의 워킹맘보다 더 고되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자식 새끼 거둔다고 요리는 해야겠지만, 시간에 쫓겨 하는 요리가 늘 맛있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엄마의 서두르는 성격이 요리에도 영향을 줬다.
엄마는 대중없는 사람이었다. 시래기가 퍼진 게 맛있다고 하면 한솥 크게 끓였다. 처음에 좋아하던 시래기국을 질리게 만든 것도 엄마였다. 먹고 데우고 먹다 보면 시어서 끝내 소 여물통에 들어갔으니깐. 엄마 요리는 자주 간이 너무 세기도 하고, 어쩔 때는 그냥 밍밍했다. 그날 장에서 산 재료로 대중없이 해놓는 음식 맛은 그날 운수처럼 들쭉날쭉했다.
엄마 음식은 보통 엄마들이 자식들 먹이기 위해 하는 생존 요리같았는데, 그래도 엄마가 지향한 게 있다면, 자연의 맛이었다. 표고 버섯의 감칠맛과 무의 시원한 맛,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표고버섯 뭇국. 강된장국에 상추만 대충 잘라 넣어 비빈 된장 비빔밥. 김치만 볶아서 올리는 멸치육수 국수 등. 그런 자연스럽고 간단한 음식을 하는 폼도 엄마다웠다. 들에서 돌아와서 대강 씻은 대로 부엌에서 요란하게 그릇과 냄비를 부딪쳐 가며 뚝딱 만들어내는 그 모습도.
그런 엄마가 표고버섯 뭇국과 함께 내 기억속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표고버섯 뭇국은 급식에서나 식당에서 먹은 적이 없는 엄마만의 음식이다. 시원하고 칼칼한 아버지의 입맛을 겨냥한, 그런 음식. 어쩔 때는 멸치 비린내가 났고 어쩔 때는 파 줄기 맛이 우려나와 달고 시원했던 그런 엄마대로의 음식.
딱 그렇게, 그때의 엄마처럼 얼추 맞춰 살아도, 뭔가 되었다. 그 음식을 먹고 그런 엄마를 보고 잘 자란 딸이 여기 있고, 마흔 넘어 그런 엄마를 기억하고 이해하는 딸이 있다는 건 그 증거다. 맛집 음식이나 잔치 음식같은 진귀한 음식이 아닌 엄마의 표고 버섯 뭇국이 지금 이렇게 그리운지. 엄마가 보고 싶다. 명절이라 더욱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