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읍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에서 자랐다. 처음, 읍내 유치원에 갔을 때의 낯섦은 몸이 웅크러지는 걸로 나타났다. 작은 나였지만, 더욱 작아져서 새로운 세계를 관찰했다. 유치원운 두 반으로 나눠졌고, 우리반 여선생님은 유독 얼굴이 하얗고 입술이 빨간 승재를 예뻐했다. 그를 무릎에 앉히고 볼을 비볐다. 그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세상에, 저렇게 사랑받을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사랑에 대한 촉각이 잠깐 돋아났지만, 나는 정글 같은 유치원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읍에 사는 친구들과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용해서 눈에 띄지 않던 나는, 아이들이 노는 것을 관찰했다. 어느 순간이라 할 것도 없이, 기억은 내가 정은이와 지혜를 잡으려고 숨차게 쫓아가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그들이 숨어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 “사자다!”라고 외치면, 그들을 잡으려고 미친 듯이 쫓아갔다.
처음에는 애들이 나랑 친해지려고 하는 줄로 알았다. 그 마음에 대한 성의는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런데, 일 년 내내 그들을 쫓으려고 헉헉거렸다. 조금 재미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반복되자, 그들을 잡으려고 뛰는 도중에, 화가 났다. "나는 사자가 아니다." 그냥, 파마머리가 조금 노랗고, 사자 갈기처럼 부풀어 올랐을 뿐. 나만 그들을 쫓는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았지만,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그마저도 하는 놀이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할지도 몰랐으니깐.
이 기억을 떠올리면, 서러운 감정이 솟아났다. 심지어 복수하고 싶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들에게 속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면, 나를 좋아해 주고 무리에 끼워줄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자 역할이 지속되자, 염증을 느꼈던 것 같다. 그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나를 받아들이려고 한 것이다.
그 이후, 국민학교에서 조용했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성적순대로 반장이라는 지위에 따라 세상이 돌아간다는 걸 알았다. 그때부터, 그들의 주목과 관심을 받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다. 이전에는 반장이 되고, 성적을 높이는 행동이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인생을 통틀어 ‘사랑받기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가정에서는 가족의 사랑을, 학교라는 사회에서는 친구들과 선생님의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을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시도에서 나는 없었다. 어린 시절에 정체성이라는 것은 미약하다고 생각하지만, 학교에 가기 전의 나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순수한 나였다. 비석 차기를 하고, 논두렁을 뛰어다니며 즐거웠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한 행위를 하지 않는 나 자신은 거기에 있었다. 사회에 속하는 순간, 순수한 나를 잃어버렸다.
한편,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기대와 역할이 있다. 학생으로서 공부 잘하고, 사교적인 학생이, 가정에서는 말 잘 듣는 착한 딸이. 아직 정체성이 뭔지도 몰랐던 어린 나는, 사회에 입성하자마자 남들이 원하는 기대를 충족하려 했다. 그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라는 명목은, 미움받지 않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다. 나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아이들에게 무시당하는 건 괜찮지만, 선생님과 인기 있는 아이들의 관심은 받고 싶었다.
내 삶이 타인이 내게 바라는 역할과 어떤 사람됨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써왔다. 그것이 내 안에서 우러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원래의 내가 아님은 분명했다. 나는 조용하고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 어린이였고, 그대로도 행복했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런 타인들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억지로 하는 의무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길게 보면, 그 의무감이 실제로 그 사회를 떠나게 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던 것 같고, 그 때문에 외국에 산다. 유대감을 갖고 싶지만, 소속되면서 집단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한 의무감은 갖고 싶지 않았다. 그 모든 굴레를 벗어버리는 길은 사회를 떠나는 것이라고 무의식중에 알았던 것 같다.
지금은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덜 의무적이다. 본래 이 사회에 속하지 않기에, 그들의 기대치는 낮고, 좀 더 자유롭다. 간혹, 그런 의무를 수행하지 않기 때문에 비어버리는 유대감과 결속적인 친밀감에 대한 갈망이 있다. 고독함도 거기서 비롯한다.
그러나,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언제나 혼자 있을 수 없다는 것보다는 언제나 혼자 있는 편이 어느 면에서나 견뎌내기 쉬울 것 같다.”<수상록>
몽테뉴가 말했듯, 나도 함께 있을 때보다 혼자가 편하다. 무엇보다 나로서 존재하고 싶은 열망이 크다. 드디어,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세계에 들어왔다. 그 세계에서 자신과 대화하고 나름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따금 습관 때문에 누군가에 기대곤 하지만, 이제는 이 상태를 똑바로 보고 있다. 이 고독에서 자신과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