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을 다녀온 남편에게, 워크숍은 잘 했는지 물었다. 그냥 그랬다는 그는, “세상은 참 다이내믹 해.”라는 말을 덧붙였다. 더 설명해 주길 기다렸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자기 생각을 말하기 전에 뜸 들이기를 좋아했다. 또 내가 물어봐 주기를 기다린다.
“회사 동료는 친구가 아니지…..” 그가 중얼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워크숍 장소에 도착할 즈음, 건물에서 내 부하 직원들이 나오길래. 손을 들어 인사했는데… 문을 나오자마자 왼쪽으로 꺾더라고. 못 알아본 것도 아닐 텐데”
…
“커피 타임을 하러 갔는데, 다른 동료들은 커피를 다 받아들어 한쪽에 앉아 대화하고, 직위가 낮은 여자 동료가 커피를 기다리는지 서 있는 거야. 그 여자가 신경 쓰여서, 커피 마실 거냐고 물었거든. 그랬더니, 어차피 자기는 오래 기다렸으니, 먼저 커피를 받아 가라고 했고. 그런데 한참 후에도 거기 서 있는 게 마음에 걸리더라.”
남편은 자기가 낌새를 채는 한(그는 좀 둔한 편) 친절하다. 연민도 있고, 오지랖 넓게 도와주려는 측면도 있다. 그런 그가 그 여자 동료에게 느낀 마음은 충분히 이해됐다.
문제는, 동료들이 대화할 때 그는 좀처럼 끼어들 수 없다는 점이다. 각자 무엇을 했고, 또 어떻게 했으며 끊임없이, 숨 가프고 이어지는 대화를 따라갈 수도, 흥미롭지도 않다고 했다. 중국에서 독일로 온 다음, 내가 한참 산후 우울증을 겪을 즈음, 그는 그런 독일 사람들 사이에서 힘겨루기로 힘들어했다. 종종 이런 일에 다시 맞닥뜨리면, 자신과 다른 독일인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그 서늘한 감정을 내게 털어놓았다.
“그런 거 나 중국에 있을 때도 느꼈어. 석사 할 때였어/ 여자 동기들이 인사를 제대로 안 해. 물어보면 대답을 해주긴 하지만, 자기들끼리 중요한 게 있는 듯 무리 지어 빠져나가고. 내가 오면 했던 말을 멈춘다든지. 그 육감이라는 게 있잖아. 쟤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느낌. 남자애들이 내게 순수하게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고, 성실하게 도와주는 것과는 상반됐어.“
“당신이 페킵(아기와 엄마가 참여하는 아기 마시지 수업)에 갔을 때도 그랬잖아. 결국, 거기서 친구를 못 만들었고.”
“그런 걸 한두 번 겪어보나? 어제도 학부모 모임이 있어서 레스토랑에 들어갔는데, 내가 앉자마자 다들 그냥 누가 들어오는구나. 하는 표정이더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즐겁게 메뉴를 보고, 뭘 먹을지 골랐지. 아는 엄마인 우테가 와서 다행이었지. 아니면, 계속 혼자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을걸.”
“자기들에게 이익이 될 만하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안 하지.” 남편이 말했다.
“독일에서는, 그런 일이 더 자주 일어나. 한국에서는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최소한의 예의는 차려. 기본적으로 친절하게 대하는 게 중요하니깐. 독일 사람들은 자기 판단에서 쓸데없는 것 같으면, 눈길도 주지 않고 무시해. 참, 그게 알기 쉬워서 좋긴 하다.”
남편과 이야기를 끝내고도 이전에 겪었던 비슷한 경험들이 떠올랐다. 분명히 우리 집에도 초대하고, 그 집에도 간 적 있고, 휴가도 같이 다녀온 집 엄마였다. 그런데, 다른 어린이 생일 파티에 초대돼서 기다리고 있을 때, 나보다 다른 엄마에게 붙어서 그들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아니, 그들과 더 친하다고 내게 보여주려고 했던지. 나를 친구로도 생각하지 않는 그런 태도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한번은 탁구클럽에 시아버지를 데리고 갔을 때다. 거기 담당 할아버지의 행동도 비슷했다. 나와 아이, 특히 남편에게는 친절하고, 오지랖 넓게 모든 일에 간섭했던 그가, 시아버지를 물건 보듯 했다. 시아버지가 나이가 많고, 옷차림도 그렇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친절하게 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단번에, 그가 싫어졌다. 원래도 다른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게 싫었는데 말이다.
이들 모두는 속물이다. 상대방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판단하고, 의식적으로 그 사람을 무시한다. 그들의 겉과 속이 같아서, 위선적이지 않아서, 그들의 의중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을 높게 평가해야 할까?
“세상에 중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니?”
나 스스로에게 묻고 나서 한 일화가 생각났다. 어느 날, 터키 아줌마와 소풍 가서, 좀 쉬고 싶은 마음에 책을 읽었더니, 그 후로 그녀가 다른 엄마에게 내가 자만스럽다고 평가했다. 그때 그냥 좀 혼자 있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되는 친구가 있고, 아닌 친구가 있는데, 그녀는 아니었나 보다.
독일인은 자기에게 중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차별이 꽤 분명한 편이고, 그날 남편도 그걸 느꼈다. 독일보다 브라질에서 더 오래 산 남편과 동양에서 온 나는 그런 ‘이상한’ 독일 문화를 재확인했고, 적응하기 어렵다고도 동의했다.
사회는 생존 경쟁의 싸움터이기에, 자신에게 유리한 쪽에 붙을 수 있지만, 한눈에 드러날 만큼 사람을 사귀는 이런 문화는 인간미가 없는 것 같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가치가 있고, 그것은 한 번에 알 수 없다. 나는, 아직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