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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혜숙 Jan 26. 2022

몇 마디의 말

부부의 대화 



여자는 남자를 만나고 결혼한 지 13년, 마치 처음 만나서 몇 마디 중국어로 대화했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연애 초기에는 말 몇 마디로 마음이 통한 것과는 달리, 지금은 몇 마디 때문에 기분이 상하고 대화가 더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만 다를 뿐. 분명 그들은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것 같은데, 대화가 막히니 아이러니하다. 



여자는 전화로 문의하는 게 귀찮고 두렵다. 되도록이면 남자가 그 일을 해주었으면 했다. 남자는 회사일로 바빴지만 일주일간 휴가를 보내고 있었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청소를 자주 하는 걸 봐서 충분히 휴식이 취했으니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날 흘러가는 말로 “당신, 오늘 첫째 기타수업 좀 알아보게 전화하는 게 어때?”라고 말했다. 남자는 그 정도야 식은 죽 먹기라는 양, 또 가벼운 결심을 한 듯 웃었다.  



늦은 오후, 남자는 며칠 동안 마감을 위해 달리던 비디오 편집에서 잠시 벗어나 집 보조금 신청과 공과금을 지불하고, 음악학원 담당자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남자는 긴장한 듯 소매를 걷어 올리고 안절부절 돌아다니며 통화를 했다. 

“66유로, 화요일 두 시 반, 다음 주…”



여자는 남자가 아이 이름과 자기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는 말을 띄엄띄엄 들은 것 같았고, 수업료 66유로가 또렷하게 들었다. 얼마전 같은 반 친구에게서 분명히 50유로 정도라고 들은 것 같은데, 그래서 직접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66유로라는데 그건 안될 일이었다. 이제 기타를 배우고 앞으로 얼마나 열심히 할 지도 모르는데 선뜻 한 시간 12유로를 내고 그것도 수업을 그만 두기 3개월 전에 미리 중단 의사를 서면으로 보내야 하는데 그런 중대한 일을 남자가 선뜻 결정하고 그 비싼 수업료를 내려고 하는 게 못 마땅했다. 여자는 침착하게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확인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할 지 상의해야 할 것이다. 



“66유로? 수업료 비싸다. 아무래도 너무 비싸.” 

여자는 대뜸 말했다. 여자는 자기도 모르고 목소리가 커지고 올라간 걸 깨닫지 못했다. 눈썹이 꿈틀거리고 눈이 살짝 올라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남자는 또 다시 올 것이 왔구나. 과거의 모든경험과 상황을 떠올려 한번에 목구멍에서 쑥 하고 꺼냈다. 



“뭐? 다 이야기했는데 지금 이러면 어떻게? 다음에는 당신이 전화해서 결정해. 이번에는 내가 이야기 끝냈으니깐 그냥 받아들여.”

남자는 지금까지 여자가 휴가지와 호텔을 정해서 비싼 곳으로 가자고 할 때,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는 여자의 말이 어디선가 들리며, 이제야 복수할 차례나 된 듯 당당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 다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예상하지 못한 채. 



여자는 평화로운 농촌 마을에 갑자기 포탄이 떨어진 것처럼 그의 화를 이해할 길이 없다. 이제 겨우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들어보지도 않고 그만 입을 막아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내가 뭔가 하면 꼭 뒤에 가서 불평하더라. 그렇게 내가 하는 게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당신이 하면 안 돼? 어차피 당신이 원하는대로 할거라면 말이야. 다 말해 놓은 상황에서 이러면 내가 지금 이걸 취소해? 너무 비싸니, 어쩔 수 없다고?”



여자는 말문이 막히고, 생각이 꽁꽁 얼어버렸다. 갑자기 냉동인간이 되어 버린 듯, 입이 다 얼어버려서 눈만 껌뻑였다. 다 끝내고 나니, 토를 다는 게 마음에 안 든 건지. 아니면 자기에게는 수업료는 상관없는데 그걸 따지는 아내 화가 났는지 아님 계속 미뤘던 걸 전화해서 자기가 그 일을 처리했는데 불만이 있는 게 싫은지 알 수 없었다. 여자는 휴가 기간 동안 남자에게 밥을 하라고 장을 보라고 아님 운동을 하라고 종용하지도 잔소리도 한적이 없다. 그가 최상의 휴가를 보낼 수 있게 그가 자유롭게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는데, 도무지 그 상황이 이해가 안됐다. 

“왜 화를 내?”



여자는 왜,라는 대답이 본능적으로 나왔지만 이유를 물은 게 아니었다. 언성이 높아진 남자에게 화가 난다는 뜻이었다. 

“당신도 화냈잖아.”

화를 낸 게 아닌데, 불만이 아니라 비싸니 다른 학원을 골라도 될 일인데, 그 다음 일을 상의할 수도 있었지만 날아가버린 로켓처럼 그들의 대화는 굉음을 내고 허공으로 사라졌다. 



여자는 최근, 싸우면서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말을 빠트리고 했는지 곧잘 잊었다. 머릿속의 생각을 말로 했지만 그 사이에 주어가 빠지고 장소가 빠져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게다가 자신이 흥분했다는 사실, 화를 내고 있었는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남자의 말을 듣고 있는 여자는 그러나, 실은 자신은 사실 화를 낸 건 아니고, 단지 흥분했다고 그걸 오해한 건 너무하지 않느냐고 남자에게 설명할 힘도 없었다. 무기력하게 그가 자신의 화난 얼굴을 봤다면 그것은 그간 그녀가 살아온 흔적이며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은 판화같이 찍어 낸 모습이었다. 어쩔 수 없이 돈에서라면, 자기 생각에 반하는 말이라면 자신을 비난하는 말이면 똑같은 얼굴을 찍어냈다. 



여자는 뜨거운 물에 데였다가 찬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어앙이 벙벙해서 말문이 막혔다. 무슨 말을 하든 화를 내고 짜증내는 어투로 말하고, 또 그게 자기를 추궁하는 말로 들린다는 남편에게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억울하고 화가 난다. 도둑질을 하고 감옥살이를 하고 조기 석방으로 풀려났는데, 당시의 조기 석방이 실수였다며 다시 몇 년간 더 들어가서 살아야 한다고 바로 수갑을 다시 채우는 것처럼 억울했다.   

여자는 억울함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갑자기 화를 내고 소리질러서 화가 나. “

“나도 화가 났어.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 더 자세히 말하거나 어조를 누그러뜨리고 말했다면 들었을거야. 나도 할 말은 있다구.” 남자는 등을 돌리고 흐려지는 여자의 뒷모습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만해, 됐어. 이제 아무 말도 못하겠어.” 

여자는 그간의 반성과 자신을 고치려는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어떤 말을 해도 성난 것 같다거나 짜증낸다는 남편의 말을 믿을 수 없다. 여자는 남자의 말을 듣기 싫다. 등을 돌리고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온다. 남자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리지만 그녀는 귀를 닫았다. 




여자는 지금까지는 계속 자신이 잘못했고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서 몇 년간 잘 지내온 것 같은데, 회개 전 남자를 공격하고 상처 준 말들이 깃과 모터를 달고 자신에게 돌아와 마음 정중앙을 팍 찍을 때가 있다. 며칠 동안 그런 말에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반격을 했으나, 그것도 먹히지 않는다. 그간의 성찰의 노력이 겨우 이 정도였는지, 노력했는데도 왜 다시 이런 시련에 부딪치는지, 하늘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어서 소리 질렀다. 당신도 잘못 했어. 당신도 반성하고 고쳐야해.  



여자는 자기 마음을 들여다본다.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만점 주세요. 

잘 했다고 엉덩이 팡팡 두드려 주세요.

여자는 남자에게 애원하지만, 

남자는 여자에게 성난 얼굴로 고함친다.  

여자는 버튕긴다. 

당신도 완벽하지 않아, 내가 아니라 당신이 고쳐야 해요. 

이런 시련은 부당해. 지금까지 노력이 헛된 것이었단 말이에요? 

나는 더 이상 노력하고 싶지 않아요. 



여자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그 마음을 들여다본다. 

지금까지 힘들었구나. 

또 다시 문제와 충돌이 생기니 그걸 이겨 낼 힘이 없었구나. 

그래도 지금까지보다 이번이 더 쉽지 않니?

앞으로 더 어려운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 그럴 때마다 이렇게 주저 앉을 거니? 

거부하고 저항해도 소용없어. 

고치기 싫어서 그렇지? 너는 이제 완벽하다고? 

성장은 끝이 없어. 

어쩌면 이번이 임계점일지도 모르잖아?

이걸 넘으면 더 넓고 푸른 초원과 과실과 꽃이 넘치는 과수원이 나타날지도 몰라. 

다시 반성하고 성찰하며 고치기로 하자. 

그리고 솔직히, 함께 해결하자고 손 내밀자. 

그러면 힘이 생길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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