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남자라서 or 여자라서 잘하는 건 없어, '코숭이 무술'
우따따 베타서비스의 세 번째 그림책, <코숭이 무술>의 후기를 소개합니다. 오늘은 아이가 책을 읽으며 어떤 것을 배웠을까요?
아이들이 갓난아기일 때부터 아이들 앞에서는 특별히 더 성차별적인 언행을 조심하고, 성별 고정관념을 심어줄만한 말은 피했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거나 남자는 이래야 한다-거나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여자답다거나 남자답다는 말, 역시 너는 여자라서 소꿉놀이를 좋아하는구나, 역시 남자라서 운동신경이 좋구나 등등 그런 말들을 최대한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3~4살쯤 되면 아이 스스로 그런 말을 한다. 주양육자인 내가 한 번도 하지 않은 말인 것 같은데, 그리고 그런 식의 관념을 심어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엄마! 로봇은 남자들 놀이야!” 같은 말들을 뱉는다.
엄마! 로봇은 남자들 놀이야.
아이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아이를 성별로 규정한다. ‘무의식적으로’ 학습하는 성차별적인 관념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의식적으로’ 아이가 쌓고 있는 잘못된 편견을 해체해줘야 그나마 조금 자유로운 사고를 하게 된다. 아이가 어떤 세계관을 만들고 있는지 잘 모르기에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우따따의 추천도서 <코숭이 무술>은 이런 성별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시킬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코숭이라 불리는 원숭이들이 사는 마을에는 무술 연구가 할아버지께서 연구하신 ‘코숭이 무술’이 있다. 남자 코숭이와 여자 코숭이의 특징을 이용한 무술이다. 긴 코를 가진 남자 코숭이들이 잘하는 ‘열매 쏘기 무술’과 체격이 작은 여자 코숭이들이 잘하는 ‘꼬리 치기 무술’처럼 성별로 나눠져 있다.
평화로운 마을에 알 수 없는 발자국이 생기면서 마을 코숭이들이 겁에 질렸을 때, 이 마을의 코미, 코리 남매 원숭이가 마을 모든 원숭이들에게 할아버지가 연구한 무술을 말해주면서 무술 훈련을 한다. 그런데 ‘남자 무술’인 열매 쏘기 무술은 코나라는 ‘여자’ 코숭이가 가장 잘하고, ‘여자 무술’인 꼬리 치기는 덩치가 큰 코담이라는 ‘남자’ 코숭이가 가장 잘하는 거다. 당황한 남매는 할아버지가 남녀 특징으로 만든 기술이라고 했는데, 왜 성별과 상관없는지 의아해한다.
“할아버지가 남녀 특징으로 만든 기술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전혀 상관없잖아!”
“그러게! 남자 코숭이와 여자 코숭이가 잘하는 게 서로 다를 줄 알았는데 다를 게 없네!”
이 대화를 기점으로 코미, 코리 남매는 성별에 따라 잘하는 무술이 정해져 있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에게 동화를 끝까지 다 읽어 준 후에 질문을 했다. 질문은 되도록 내가 가르쳐 주고 싶은 개념의 반대로 하는 편이다.
“이 동화 좀 이상하다. 여자가 잘하는 것과 남자가 잘하는 게 나눠 있는 거잖아!”
동화를 읽으면서 어린이집 친구들이 떠올랐는지 7살 딸아이는 내게 큰소리친다.
“아니야! 엄마, 잘 들어봐. 우리 어린이집에서 블록 쌓기는 남자 친구들이 많이 하는데 나도 엄청 잘해. 남자 친구들이 좋아하는 놀이여도 내가 엄청 멋지게 쌓거든. 그리고 역할 놀이 좋아하는 남자 친구도 있어! 남자라서 잘하고, 여자라서 잘하는 게 아니라 많이 연습한 사람이 잘하는 거야.”
딸아이의 말에 흠칫 놀랐다. 남자라서 잘하고, 여자라서 잘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연습한 사람이 잘한다니. 명언이라고 생각하며 끄덕였다. 덧붙여 한 마디 더 한다.
“엄마는 여자고, 아빠는 남자인데 둘 다 요리를 잘하잖아. 엄마가 요리한 것도 맛있고, 아빠가 요리한 것도 맛있어.” 나는 한 번 더 확인한다. “아니지~ 요리는 여자가 잘하는 거잖아~! 아빠가 무슨 요리를 잘하겠어.”
“아니라니까! 아빠가 김치 담근 것도 맛있었고, 고기 해줬을 때도 맛있었어! 아빠는 남자지만 요리 잘해”
그 말 끝에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았다. “전에는 네가 로봇은 남자 놀이라고 했잖아!” 무심코 던진 말인 듯 아이에게 물었다. 자신이 했던 말이 이상함을 스스로 돌아보며 그 말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배시시 웃는다. 이만하면 성공적인 대화다!
활동지는 활을 제일 잘 쏜 사람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양한 운동을 다룬 학습지에는 여러 아이들이 성별에 상관없이 한데 모여 즐기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기존 학습지에서 운동하는 아이는 대부분 남자 아이거나 야외활동 중인데도 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과 차별점이 보인다.
성별에 따라 잘하는 종목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남녀 모두 각자 잘하는 게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실제로 올림픽에서 양궁 경기를 하면 여성들이 높은 점수를 낸다는 이야기도 보탰다. 양궁이 무언지 그림을 보면서 설명해주니 관심을 보인다. 2번째 활동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틀린 그림 찾기다. 남녀 구분 없이 어울려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여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3번째 활동지에서는 ‘남녀’라는 단어를 따라 써보며 남자와 여자의 구분에 대해 대화를 나눴고, 마지막 활동지는 코숭이 가면을 색칠하고, 잘라서 가면을 만들어 무술을 따라 했다.
<코숭이 무술>을 계기로 성별에 따른 구분에 대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주고받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뜬금없이 물어보는 것보다는 이런 호기심 끌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어서 일상의 대화를 나누니 아이도 재미있어했다.
<코숭이 무술> 그림책을 통해 잘하는 것은 성별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이 연습했는지에 따라 나뉜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가 너무 기특하네요. 성별이 아이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제한 시키지 않기를, 도전 하기도 전에 주저 앉는 법을 먼저 배우지 않기를 바랍니다.
딱따구리는 아이들이 주저 없이 자신의 미래를 충분히 상상하며 성장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딱따구리가 단단한 나무를 뚫듯, 아이 곁에서 차별과 고정관념을 뚫는 서비스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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