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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키드 Sep 15. 2020

생존인가 생활인가?

<고독한 생존가(Marooned)>


서바이벌의 회귀


유튜브에서 요즘 추천해주는 동영상 카테고리는 서바이벌 동영상이 유독 많다. 물론 내가 틈틈이 이런 종류의 영상을 진지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시청한 결과일 터이다. 아마도 디스커버리서바이벌 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 등을 포함해 요새 수많은 유행어를 만들어낸 <가짜사나이> 등을 시청한 게 원인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가장 흥미롭게 본 작품(?)은 따로 있다. 진짜 리얼한 작품이다. 바로 디스커버리서바이벌의 <고독한 생존자(Marooned)>가 그 주인공이다. 어느 날 문득 눈에 들어온 이 프로그램 한 편을 시청한 뒤 무엇에 홀린 듯 나는 대부분 에피소드를 찾아봤다.



이 프로그램의 호스트는 아마존강을 도보로 2년 8개월만에 돌파해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전직 군인 출신의 에드 스태포드이다. 원래 이 프로그램 제작 연도가 2013~2016년이라고 하니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려 내게 도착했다. 유독 이 프로그램에 끌렸던 이유는 에드라는 인물이 서바이벌(?)하는 방식에 있다. 초창기 내가 본 에피소드에서 에드는 낯선 오지에 옷 하나 걸치지 않고 도착해 자신의 일상을 홀로 촬영한다. 정말(!)로 알몸으로 던져놓고 한번 살아봐라고 외치는 방송에서 나는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괴하다고 해야 할까, 흥미롭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둘 다일까. 옷과 신발 정도 준다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텐데 에드는 이런 식으로 미션을 수행한다.



도망칠 수 없으면 즐겨라


<고독한 생존가>는 영상을 전문적으로 찍는 스태프가 동행하지 않는다. 주인공 에드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유일한 사람이다. 이 프로그램의 기본 플롯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물, 음식을 찾고 집과 불을 마련하는 게 다이다. 정말 원초적인 활동이 전부다. 여기에 각본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 아쉽게도 유튜브 동영상에서는 10-20분 정도로 압축된 영상이 다이다. 그래서 그 과정이 얼마나 걸리고 얼마나 힘든지 잘 표현되지 않는다. 다만 음식을 구하지 못해 하루이틀 굶었다는 에드의 자조적인 말이나 이 프로그램 전편을 본 열혈 시청자의 댓글에서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를 짐작할 뿐이다.



아무리 생존 전문가라고 해도 변변한 도구 하나 없이, 말 그대로 맨몸으로 생존에 필수적인 것을 얻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애드가 죽은 동물 사체에 낀 구더기를 먹거나 생쥐를 구워 먹을 때 어떤 혐오감도 들지 않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오히려 주인공의 표정을 유심히 바라보는 마법이 발휘된다. 에드의 눈은 희번덕거리고 얼굴에는 온통 희열(?)이 가득하다. 유독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면 이 천진난만한 형(?)의 광기를 칭송하는 글이 많다. 그는 정말로 즐기고 있다!



생활의 힘


이 프로램의 메시지는 에드의 되풀이되는 대사에 함축돼 있다. 그는 도전에 앞서 이 대사를 반복한다. 자신은 생존(survival)이 아니라 생활(thriving)을 할 거라고. 문명으로 돌아갈 때까지 버티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이다. 생존 전문가로서 아마존강 맨발 도보 완주만 봐도 그는 충분히 그런 자격을 갖춘 사람일 터이다. 그런데 베어 그릴스의 <야생 대 인간> 등과 같은 프로그램과 전혀 다른 느낌이다. 둘 다 생존 전문가인데 둘의 결은 다르다. 에드가 보내는 생활 터전에는 문명 대 자연과 같은 대립 따위는 없다. 문명은 더 이상 우월하지 않다.



이 생존가의 생활을 유심히 보면서 나는 궁금했다. 애드가 고난을 헤쳐나가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단순히 주인공의 지식과 경험일까? 그러나 보면 볼수록 주인공의 자질과 이력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의 삶에 대한 의지 하나다. 에드가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미친 놈처럼 웃을 때 그의 의지는 빛난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하자면 눈빛에 생기가 돋는 순간이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기쁨이다. 그렇기에 에드가 웃는 순간 시청자는 따라 웃게 된다. 미친놈처럼 말이다. <고독한 생존가>는 그렇게 빠져드는 프로그램이다.



코로나바이러스19가 장기화되면서 한쪽에서는 코로나 블루를 얘기한다. 이런 상황에서 고독감은 누구나 쉽게 느끼는 감정이다. 그런데 누구는 슬기롭게 대응(?)하고, 누구는 깊은 우울감에 빠져든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올까? 나는 그 차이를 에드처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있다고 본다. 살아가겠다는 의지,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낙관 등은 고난을 견디는 힘이다. 그러면서 흔한 문구 하나가 기억났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이다.’



추신 하나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랜선 팬미팅도 했다던데 언젠가 한국을 방문한다면 에드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에드, 당신은 최고야! 내가 본 어떤 서바이벌 진행자 중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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