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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키드 Mar 03. 2023

생각은 많았으나 시작하지 못한 이에게

영화 <화양연화>(2000)


어느 날 드라마 <더 글로리>의 배우 정성일의 인터뷰 한 토막을 들었다. 흥미로운 내용은 극 중 도영이 동은(송혜교)과 기원에서 스치는 장면이 영화 <화양연화>를 오마주했다는 전언이었다. 그 말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렴풋이 왕가위 감독의 작품을 몇 편이나 봤나 꼽아보니 <중경삼림>(1994), <동사서독>(1994), <타락천사>(1995), <해피 투게더>(1997) 정도이다. 이 정도 편수를 본 이유는 그 시절 청춘의 한자락을 같이 보냈던 이유가 가장 크다. 그런데 기억해보면 왕가위 감독의 작품은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기억될 뿐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다. 어렴풋한 플롯조차 남아있지 않으니 신기할 정도다.



때마침 영화 <화양연화>가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다. 누군가는 이 작품을 왕가위 최고 영화로 꼽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는 그의 장기인 미장센뿐만 아니라 음악이 어울러져 두 주인공의 쓸쓸한 감정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왕가위답지 않은(?) 깔끔한 서사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같은 날 아파트로 이사 온 첸 부인(장만옥)과 차우(양조위)는 상대의 넥타이와 가방에서 자신들 배우자 사이 관계를 눈치챈다. 그리고 이들은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만남을 시작한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가 끝이다. 이들의 관계는 정신적 교감으로 시작하지만 지속되지 않는다. 




이 영화를 끌고가는 동력은 두 주인공의 쓸쓸함이다. 상대 배우자가 바람을 피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이들은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의심을 넘어 확신을 하지만 어떤 항의 제스처도 취하지 않는다. 그저 혼자서 끙끙 앓기만 할 뿐. <화양연화>는 이들의 고독을 카메라에 담는데 주력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유독 이 영화에서 인물의 정면이 아니라 측면과 이면이 자주 등장한다. 게다가 실내에서 인물을 찍을 때도 벽과 창에 가려 이들 모습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주인공의 배우자도 마찬가지다. 목소리만 나올 뿐 관객은 이들 모습을 알 길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온전히 첸과 차우의 고독을 관객이 느끼도록 만들어졌다. 



앞선 미장센과 함께 이런 주인공들의 쓸쓸한 내면을 부각시키는 장치는 음악의 도움이 크다. 특히 첸이 홀로 저녁 식사를 사러 가는 장면에서 흘러 나오는 테마곡은 아마도 이 영화를 본 이라면 ‘아하’라고 소리칠 것이다. 지금도 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한 장면을 꼽자면 이 음악이 배경으로 흐르면서 느린 장면으로 잡힌 첸과 차우가 교차하는 모습이다(바로 이 장면이 배우 정성일이 언급한 장면이다). 두 주인공이 엇갈리는 장면에서 관객은 이들의 인연 또한 이뤄지지 않을 것임을 예견했을 것이다. 무협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던 차우의 변명처럼 ‘생각은 많았지만 시작하지 못할’ 관계라는 것을 말이다. 



이들 사이가 정점으로 이를 무렵 갑작스럽게 관계는 끝난다. 이야기 끝에서 차우는 취재차 방문한 캄보디아 어느 사원 기둥에 자신의 비밀을 묻는다. 어릴 적 자신의 동네에 전해진 풍습대로 구멍에 자신의 비밀을 속삭이고 흙으로 꽁꽁 막는다.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이 장면에서 나는 한때 잘 나가던 홍콩 영화의 종언을 보는 듯 느껴졌다. 2,000년대 이후 한국 관객에게 큰 반응을 이끌었던 홍콩 영화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도 90년대 말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뒤 이런 사태는 예견됐을 것 같다. 통제사회로 진입은 자유를 억압하고 예술은 그런 곳에서 번창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화양연화>는 “보여줄 수 있지만 만질 수 없는” 과거를 애도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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