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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Dec 03. 2015

낄낄거리며 웃고 싶어 질 땐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야

- 사람이 정말 힘들 때 필요한 게 뭔지 아니?


위로가 아니다. 유머. 정말 유머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웃고 싶을 때가 되면 이 책을 읽어봐.’라고 무림고수의 비기를 공유해주듯 말했다. 당장 1층 로비 서점으로 달려갔다. 그 책이 거기에 있었는지 다른 곳에서 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눈물 나게 웃기는 책이었다. 소박하고 정감 어린 정원을 꾸리고 싶을 뿐인 남자에게 정원은 괴수가 사는 블랙홀 같은 곳이었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정원을 가꾸는 게 정녕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이라면 돈이 생기더라도 절대 정원 딸린 단독주택은 피해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남자의 고군분투는 심각했다. 정원과의 싸움이 심각할수록 더 크게 웃었다.


웃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책을 덮으면 현실은 여전히 옆에 있었지만, 기분이 나아졌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웃고 난 후의 기분이 얼마간 나를 기운 낼 수 있게 해주었다. 마치 부적처럼 그 책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필요할  힐끗 보며 '그래, 너 참 웃기는 책이었어.'라고 책 등을 눈으로 쓰다듬었고 책 속의 웃음을 곱씹었다. 책을 두 번째로 읽은 것은  지난봄이다. 다시 읽어도 큭큭 거릴 수 있을 만큼 유머는 낡지 않았다. 힘들 때 우리에게 가장 간절한 것은 유머가 맞구나. 다시 확인했다. 다시 얼마간의 기운을 차렸다.

7년 반 만에 또 다른 책을 만났다. 이건 전혀 웃기려고 쓴 책이 아니다. 작가적 슬럼프에 빠져있던 소설가의 인생 첫 해외여행기. 책을 따라가면서 나는 작가의 등에 업혀 히말라야를 오르고 내렸다. 그녀의 기막히게 환상적인 방황 기를 카페에서 혼자 읽다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흘리기 일쑤였다. 잰 체 하지 않고 멋들어진 포장도 없고 억지로 지질한 체 하지도 않았다. 말보다 생각이 많은 책이었다. 시원스럽거나 혹은 또 속이 좁아 보이더라도 창피해하지 않는 작가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작가를 어떻게 처음 만나느냐는 아주 중요한 선택이다. 그래서 이 에세이를 읽기 전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유명한 소설들을 먼저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7년의 밤’과 이 책을 두고 한참 갈팡질팡 하다 요즘 기분에는 에세이야! 하면서 책 표지를 열었다. 나는 좋은 선택을 한 것이 분명했다.  


멈추고 싶지 않은 책은 오랜만이었다. 아주 오래전 엄마와 둘이 살던 어린 시절엔 비가 오면 옆집 단짝 친구와 엄마 옆에 나란히 누워 옛날이야기를 듣곤 했다. 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들어도 매번 흥미진진했다. 엄마는 언변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엄마 이야기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데. 그렇지만 그 이야기는 비 오는 날에만 적절다. 이야기 속 귀신이 눈앞에 살짝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처럼 심장이 오글오글 해지는 긴장감은 비 오는 날에 딱 어울다. 오랜만에 그 시절이 생각났다. 멈추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내용을 물으면 히말라야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작가의 생각을 적은 것이라고 맹숭맹숭한 줄거리밖에 말해줄  없는데 그 안에서 끊고 싶지 않은 생각의 흐름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책 역시 우울한 날에만 읽고 싶어 질 것이라는 것.

에세이로 먼저 만난 작가가 너무 사랑스러서 오래전 대충 흘려들었던 그녀가 출연한 팟캐스트를 다시 들었다. 정말 웃고 싶다면, 이 책을 언젠가 다시 꺼내 읽을 것이다. 책 등을 보며 그 안에 얼마나 귀엽고 웃음 나는 이야기들이 있는지 짚어보는 날은 더 많겠지. 이제 벗어날 힘이필요한 날 나는 무기 두 권이나 된다. "나를 미치게 하는 정원이지만 괜찮아."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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