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 나와 옆 팀 틴틴 씨와 로또를 샀다. 손에 꼭 쥐고 당첨금에 대한 계획을 나누었다. 틴틴 씨가 먼저 포부를 밝혔다.
저는 자신감 있게 회사에 다닐 거예요. 당첨금이 있다고 생각만 해도 자신감이 솟아나서 스트레스가 확 줄 것 같아요.
저는요. 저의 고용인이 될 거예요. 나의 사장님이 될래요. 꼬박꼬박 성과급도 주고 올해의 우수사원으로 뽑아서 유급휴가 빡빡 주고. 나는 나만 고용할 거거든요.
저는 우선 가족들한테도 비밀로 하고 여행을 다녀올 거예요. 그리고 핸드폰 끄고 한동안 잠수 탈거예요.
아니다. 저는. 부동산을 사겠어요.
와- 역시. 이런 게 연륜인가 보다. 사회생활 오래 한 게 역시 이런 데서 차이가 나네요.
요즘 당첨금은 얼마지? 근데 로또 당첨 발표는 언제 해요?
일본에서는 로또 당첨자들에게 “그날부터 읽는 책”이라는 책을 준다고 한다. 나도 로또 사이트를 방문해보았다. 당첨자 가이드가 있다.
“01. 당첨번호 확인 전, 심호흡을!” ‘나도 1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미리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설마, 내가?’ 하는 생각에 번호를 확인하다 ‘정말’ 당첨되면 그 충격과 흥분이 오히려 건강을 해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나는 준비된 당첨자. 언제든 당첨될 수 있다는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해야지. 당첨 후 흥분과 스트레스(어째서 스트레스를), 불안에 대비해 꾸준히 운동하고 수면관리도 해야 한다고 했다. 당첨이 되려면 건강이 필수인가 보다. 그래도 흥분이 계속된다면 의사를 만나라고 했다. “이때, 꼭 복권 당첨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쓰여있었다. 세심한 주의사항이다.
마지막으로 당첨 후 얼마 간은 운전을 하지 말라고 했다.
심호흡, 운동, 의사, 운전 금지. 대체 당첨은 얼마나 위험한 것일까.
로또란 착하게 산 사람에게 보상처럼 오는 것도 아니고 더 절박한 사람에게 우선순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당첨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이렇게 나의 당첨 당위성을 누구 들으라는 듯 늘어놓았다. 당첨을 위한 준비는 끝이 났다. 다시 한번 ‘나는 언제든 당첨될 수 있다.’고 되뇌었다. 이제 나는 준비된 당첨자.
나 로또 샀어. 이제 나도 당첨 후보군이야.
친구에게 카톡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돌아온 토요일. 그렇게 기대하게 해 놓고. 언제든지 당첨될 수 있다고 바람을 넣어놓고 결국 로또는 나에게 등을 돌렸다. 제법 반동적인 숫자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나도 당첨될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나의 당첨을 다시 미뤄야만 했다. 당첨되면 함께 로또를 산 사이니까 서로에겐 알려주자던 틴틴님과 나는 월요일 출근으로 서로의 꽝을 알렸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잊지 않았다. ‘나는 언제든 당첨될 수 있다.’는 말. 나는 이제 로또에 당첨된다면 하고 싶은 일마저도 전에 없이 명확하게 정해두었다.
내가 로또에 당첨된다면 나는 시간을 사겠어. 실패할 기회를 사겠어. 잠시 멈춰서 쉬고 싶어. 쉴만한 시간을 사겠어. 가지 않은 길을 걸어볼 기회. 그곳에서 실패하더라도 툭 털고 일어설 수 있는 실패할 기회를 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