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시간은 모두에게 중요하다. 일정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면 삶에 균열이 생긴다. 주말엔 꼭 혼자 보내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 시간동안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이렇게 끄적이는 것인데 최근 이런 글쓰기가 좋은 일인가 두려워졌다. 이런 글쓰기란 나의 감정을 돌아보는 일이 대부분인 글쓰기를 말한다. 자신의 감정을 복기하는 건 글쓰기나 자아성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타인의 감정을 복기하는 것과는 다르다. 나의 심연을 들여다보면 그 심연 또한 나를 들여다보는데 그때 내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답할 수가 없다. 얼마 전 답하지 못한 질문이 하나 더 있다.
행복하십니까?
아... 어떻게 지내세요?
행복합니다. 하루하루 즐겁습니다. 행복하십시오.
이건 전혀 다듬지 않은 대화 원문이다. 실제로 군더더기 없이 짧은 몇 마디였다. 이 대화는 화장실에서 벌어졌다. 나는 손을 씻는 중이었고 그분은 이제 막 양치를 마무리하려는 참이었다. 안녕하세요 했더니 그분이 불쑥 물은 것이다. 볼일 보는 중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이런 질문은 어떤 상황인가에 따라 대답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답을 못했다. 행복하거나 행복하지 않거나 생각해볼 것도 없었다. 뇌가 잠시 블랙아웃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친분도 없을뿐더러 수년 만에 화장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에게서 예상한 질문이 아니었다. 답을 피하기 위해 재빨리 질문을 했다. 잘 지내세요?
그분은 방금 양치를 한 사람답게 앞니가 모두 보이게 웃었다. 하루하루 즐겁게 살고 있는 미소였다. 내가 멍하니 그 입매를 보고 있는 동안 그분은 ‘행복하십시오.’라고 힘주어 말했다. “행. 복. 하. 십. 시. 오.” 입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으니 말소리가 또박또박 더 잘 들렸다. 아니 말이 보였다.
가볍고 상쾌한 미소와 정언명령과도 같은 그 말 때문에 블랙아웃 되어있던 뇌가 깨어났다. 모두의 인생에 신이 머물다 가는 순간이 있다고 도깨비 씨가 그랬는데, 혹시 지금인가? 그렇다면 ‘화장실은 좀 그래요.’라고 덧붙이고 싶었다. 어쨌든 헬렌 니어링이나 이혜인 수녀님처럼 맑은 미소로 행복하라고 하시니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 한 번 더 생각해보았다. 늘 생각하지만 항상 답이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주에는 새해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찜찜함을 털어내기 위해 고민하다가, 일주일에 하나씩 1년간 의미 있는 일을 하면 52번 의미 있고 행복한 1년이 되겠지 하는 도식적인 계산을 해봤다. 실행 첫 주에 의미 있는 일을 계획하다가 결국 한 일이라고는 금요일 저녁 실컷 빵을 먹는 것이었다. 주중에 빵을 안 먹은 것도 아니지만 ‘실컷’이 중요하다.
인생의 커다란 기쁨 3가지에 대해 기회가 생길 때마다 주변에 알리곤 한다. 지복(至福).이라고 써 놓으니 더 없는 행복 이란 뜻풀이 덕분에 의미가 확실히 눈에 보인다. 아는 사람은 공감할 내 인생의 3가지 지복이란 빵, 쾌변, 그리고 입금. 쓰기만 해도 가슴이 들뜬다. 그런 의미에서 연말정산 환급 확정 액을 일주일 내내 기다렸건만 소식은 오지 않았다. 만약 재무팀에서 내가 ‘입금’이란 것을 얼마나 소중한 기쁨으로 여기는지 알았다면 좀 더 서둘렀을까. 그럴 리가 전혀 없다. 절레절레.
사람이 생각 없이 사는 날이 얼마나 될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날이 많을지언정 전혀 생각 없이 살기란 어려운 일이다. 요즘 ‘가치 증명’ 혹은 ‘존재 증명’에 대해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치를 증명하고자 하는 건 온전히 나를 위한 일이다.
수년 전 윌리엄 씨에게 들은 일화가 있다. 군 시절 높은 분의 부대 방문 때문에 환경 미화로 고생하던 때의 일이다. 높은 분 보시기에 아름답도록 흙먼지 날리는 부대에 갑자기 화단을 만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종일 쪼그려 앉아 꽃을 심다가 하루는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고 했다. ‘나는 누구를 위하여 꽃을 심는가.’ 그리고 이렇게 답을 주었다고 했다. ‘꽃은 누구를 위하여 심는 것이 아니다. 나는 꽃을 위하여 꽃을 심는다.’
지금 나는 ‘모든 존재는 스스로를 위해 존재 가치를 증명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다른 답을 찾을 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겠다. 다만 가치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타인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존재를 증명하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들로 만나고 헤어진다.
그동안 나와 헤어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많은 생각 중에 질문 하나가 남았다.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이렇게 물으니 나는 좋은 사람인가 하는 물음이 들린다. 그렇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나는 좋은 행동을 할 때만 좋은 사람이다. 나에게 좋은 사람도 그렇다. 그게 누구든 지금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실망하지 않기로 하자. 그리고 언제고 누군가 좋은 행동을 한다면 짧은 시기일 지라도 고맙다는 말을 잊지 말자. 사람들과 잘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좋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이다. 그러니까 고맙다는 말을 후회 없이 듬뿍 해주고 싶다. 미안하다는 말 역시. 당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
최근 만난 윌리엄 씨는 은유와 유머를 모르는 자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어려워했다. 나도 나와 같은 언어를 쓰는 이들을 찾는 중이다. 나의 언어를 읽어주고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을 확인하고 있다. 그린라이트를 켜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 왠지 지금 다음 한주를 의미 있게 만들 한 가지를 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정도의 감정 복기라면 일기를 쓰는 것이 영 틀린 일은 아니겠지? 그리고 역시 일기란 횡설수설이 제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