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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Jan 17. 2016

그것은 천천히 올 것이고
우리는 괴로울 것이다.

어쩐지 이상하게 많이 먹었다. 고기를 먹기 위해 만났기 때문에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은 예상했던 일이다. 항정 살 2인분에 양념갈비 2인분을 시키고 밑반찬을 알뜰히 리필해가며 파 채가 맛있다고 연신 칭찬하며 소란스럽게 먹었다. 고기가 달다고 생각했다. 맛이 좋아 기분도 좋아졌고  아르바이트하는 언니가 친절해서 우리도 덩달아 친절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날이 춥지 않아 다행이다. 배도 부르고 우리 좀 걸을 만 하지? 카페는  10분쯤 걸려. 어깨를 옹송그리고 손으로 서로의 팔 사이를 파고들어 한 줄로 걸었다. 거리에 사람이 드물어 미안할 필요는 없었다. 

그것은 천천히 올 것이고 우리는 괴로울 것이다.


가려던 카페는 만석인데다 아르바이트하는 아이가 싹수 없이 우리를 내쫓는 바람에 욕을 퉤 뱉어주고 싶었지만 그저 얼떨떨한 기분으로 밀려나와 근처 케이크가 맛있는 다른 집으로 갔다. 크기가  1.5배쯤 큰 조각 케이크를 세 개나 시켰다. 음료도 특대 사이즈로 나와 맛 좋은 집이 인심도 좋다며 감탄했다. 고기는 달았지만 입은 쓰네. 하며 케이크도 이상하게 빨리 먹었다.  안 되겠어, 하나 더 시켜와. 결국 조각 케이크 네 개를 놀라운 속도로 해치웠다. 섭식장애나 애정결핍 있는 사람들처럼 이상하게 많이 먹었다. 숨쉬기 힘들 만큼 많이 먹어본 것은 거의 6개월 만이었다. 결국 카페를 나오자마자 활명수를 두 병 마셔야했다. 황정은 작가의 야만적인 엘리스 씨는 이렇게 끝이 난다. “그것은 천천히 올 것이고 우리는 괴로울 것이다.”요즘 우리의 심정이 소설 같다. 그래서 많이 먹은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요즘 불안해. 사무실에 앉아있으면 불안해.

나의 예민한 불안증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무언가 감지한 것일지도 모른다. 가까운 시일 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 당연히 그건 좋은 일은 아니야. 북유럽인가 서유럽의 한 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지? 오늘이 힘들다고 걱정하지 말아. 내일은 더 나쁠 거니까. 그래서 더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기대가 적으면 만족이 커지는 아이러니. 그러니까 비관주의자가 더 행복하다. 그건 내가  지난해 말 30만 원 때문에 행복했던 일을 떠올리게 했다. 또 며칠 전 우리 세 모녀는 4만 원 만큼의 소고기를 구워먹으며 행복했다.


연필을 샀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두서없이 포스트잇에 적어 페이지마다 붙이다가 책 위에 바로 적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볼펜은 너무  자기주장이 앞서는 느낌이라 작가의 글 곁에 조용히 내 감상을 얹어두려면 연필이 필요했다. 집에도 분명히 연필이 있지만 지금 필요하니까 어쩔 수 없이 몇 자루의 연필과 연필깎이를 샀다. 오른손으로 연필을 깎아 ‘백의 그림자’를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적었다. 서걱서걱. 흑연이 희미하게 번지면서 글자가 퍼진다. 연필도 꾹 눌러쓰면 뒷장에 자국이 남으니까 힘을 빼야지. 하고 어릴 때는 자주 혼났다. 너무 눌러쓰니까 자국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힘을 빼고 써. 너무 힘을 주면 연필도 부러진다. 엄마가 말했다. 하지만 결국 초등학교 6년 내내 힘 빼는 법을 몰랐다. 중학교 때도 몰랐다. 힘 빼는 법을 배우기 전에 샤프로 바꿨기 때문이다. 사는 건 힘 빼는 걸 배우는 과정이다. 

인생에서 힘 빼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연필 쥘 때 힘 빼는 법은 몰랐지만 12살 까지 나는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 책을 읽었다. 위인전도 서너  번씩 읽었다. 지경사에서 나온 초등학생 용 이야기책은 닳도록 읽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서점에 가서 책을  사 왔다. 만화책도 꾸준히 봤다. 보물섬을 매달 사서 봤다. 하나쯤은 기념으로 보관해둘 걸 하는 후회를  종종한다. 


나는 요즘 불안하다. 내 앞날을 내가 결정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 갑자기 뒤통수를 후려 맞을지 모른다는 불안.  지난해 회사 직급별로 직무교육을 받을 때 강사가 그랬다. 효과적인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서는 서로를 불안하게 하면 안 된다. 나는 요즘 불안하다.  


초등학교 때 독후감으로 전국대회 상을 받아본 적이 있다. 덕분에 수상작이 실린 책도 받았다. 황송하게도 우리 학교에선 전교에서 두 명의 어린이가 해당되었고  그중 하나가 나였다. 의도하고 쓴 것이 아니었다. 공문으로 대회 소식을 접한 선생님이 내가 여름방학 숙제로 냈던 독후감을 제출했다. 나중에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리둥절했다. 기쁜 것도 잘 몰랐다. 파리가 냄새를 맡는 방식에 대해 썼던 200매 원고지 7장 분량의 짧은 독후감이었다. 


그 전후로 일기상(매일 일기를 쓴 어린이에게 주는 상)도 몇 번 받아봤고(나는 성실했다.) 종종 독후감상을 받았다. 선생님들은 습관적으로 상을 줬다. 나보다 더 잘 쓴 아이가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고마운 편견 때문에 나는 점점 더 자주 상을 받았다. 학년이 바뀔 때도 전 학년 담임선생님은 다음 학년 담임선생님께 편견을 인계했다. 선생님으로서는 매번 아이들의 글을 다 읽어보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런 것이 분명하다. 어쨌든 졸업하기 전 선생님은 “나중에 글 쓰는 사람이 되어라.”는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말을 해 주었는데, 이제 와서는 그 말을 예언이라 믿고 싶다. 

불안하게 책상에 앉아있는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소심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자주 하던  초등학생은 적당한 인생의 사건들을 겪은 후에 현재 불안하게 책상에 앉아 있게 된다. 부정적이니까, 인생의 기대가 적어서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내가 책상에 앉아있다. 나의 스승과 같은 분은 ‘이름 없이 글을 써도 네 이름이 보여야 대가가 되는 거다. 대가가 되기 위해 수련해라.’라고 했다. 나는 보잘 것 없는 노동꾼인데 대가가 된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그렇지만 대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나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부족한 사람은 되기 싫으니까 노력하고 싶었다. 


지금도 나는 노력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불안하지 않아야 한다. 노력에 집중하려면 불안해선 안 된다. 아니면 노력에 집중하면 불안은 자연히  사그라들까. 어느 쪽이든 내가 선택하기 쉬운 쪽을 먼저 하는 게 좋겠다. 그래서 나는 불안하지만, 내일 노력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매번 일주일을 비장한 마음으로 준비한다. 자주 좋은 시간을 보내는 데 실패하지만 교회에서 오늘도 나는 기도했다. 지난 일주일보다 조금 더 평화롭고 행복해질 수 있게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한다.


“그것은 천천히 올 것이고 우리는 괴로울 것이다.”그런 시간을 오래 견디려면 기대 없이 작은 행복을 긁어모으는 삶의 방식을 알아야 한다. 힘을 빼야 한다. 힘을 빼고 월요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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