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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Mar 14. 2021

2인 독서단

2년 간 꾸준히 독서 모임을 했었다. 독서 모임이라고 하기엔 둘이 모이는 소규모 중에서도 소규모였지만 2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 달 한 권의 책을 함께 읽었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는 때라도 모임을 빼먹지 않은 것이 무엇보다 자랑스러웠다. 누구도 한 번도 핑계를 대면서 모임을 취소하거나 미루거나 책을 읽지 않은 적이 없었다. 우리가 서로 그 모임을 얼마나 아끼고 좋아했는지 서로가 증명한 것이다.      


2인 독서단을 하기 오래전부터 독서 모임에 관심이 있어 인터넷 동호회를 찾아봤다. 지역별로 제법 체계적인 독서 모임을 꾸리는 몇몇 카페들이 있었고 당연히 우리 지역에서도 매달 모임이 열렸다. 대략 열댓 명 정도가 모이는 것 같았는데 몇 달을 눈팅하다 결국은 포기했다. 사진과 후기 글을 보면 꾸준히 모임에 나오는 사람을 빼면 신규회원이 두세 명 씩 붙었다 바뀌는 북클럽이었는데 나만 빼고 다 친한 낯선 자리에 굳이 내 발로 찾아가서 책을 읽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모임 후 이어지는 술자리가 결정적이었다. 뒤풀이 인증샷들을 보고 마음을 굳힌 것이다. 회사에서도 최선을 다해 회식을 피해 다니던 내가 그런 2차 모임을 스스로 찾아갈 이유가 없지. (회식 정말 싫어. 회식에서 오가는 의미 없는 대화야말로 기를 쪽 빨아간다.) 그러니 친구와 하는 2인 독서단은 나와 가장 잘 맞는 소규모였던 것이다. 독서 모임에서 낯선 것은 새로운 책 하나로 족했다.     

 


소규모 북클럽이지만 책은 최대한 다양하게 골라 읽었다. 장르가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했고 혼자 읽기보단 같이 읽어낼 동력이 필요한 책, 같이 읽으면 더 풍성해질 것 같은 책들을 선택했다. 적당한 취향의 반영과 확장을 고려했다. 그렇게 골라서 아프리카 문학(그분의 책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을 때 괜히 응원했지 뭐야), 철학 인문 서적도 함께 읽었다. 혼자였다면 완독 하지 못했을 책을 읽으면서 성취감도 느꼈고 흐지부지 넘겼을지 모를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다. 처음엔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게 10분을 넘기기 어려웠다. 읽을 때 감동이나 생각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정리도 안 되고 말은 더 안 풀려서 결국 책 얘기는 잠깐 하고 사담을 한 참 나누다 헤어졌다. ‘내가 고작 이 정도라니, 책을 어떻게 읽은 건가.’ 초등교육부터 잘못된 것 같은 자책이 들었다.      


다행히 몇 번 모임을 이어가면서 슬슬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실력이 늘었다.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사이에 굳이 있어 보이는 척 책에 대해 말할 필요는 없었다. 읽기 어렵거나 이해가 안 되는 책, 억지로 읽어야 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가리지 않고 말했다. 모든 책의 모든 페이지를 즐겁게만 읽을 수 없는 건 당연한 말 아닌가. 조금씩 독서토론에 익숙해지면서 우리가 같이 600페이지짜리 소설을 한 달 만에 읽어냈을 때는 손뼉을 쳤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책에 대해 오래도록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뿌듯한 경험이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모임 시간이 길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근황을 이야기하고 책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세 시간쯤은 훌쩍 가버렸다. 먼저 독서 모임을 권해 준 친구에게 두고두고 고마워할 일이었다. 



내 인생의 책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 이런 문장이 있다.     


장모님은 글을 읽는 게 아니라 삼켜버리잖아요. 글이란 음미해야 하는 거예요. 입 안에서 스르르 녹게 해야죠. 


친구와 북클럽을 하는 동안 입 안에서 글이 스르르 녹는 경험을 한 것이 분명하다. 북클럽이란 게 참 다정한 모임이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건 우리 삶의 이야기와 고민에 얽힌 것이었고 우리가 그것에 대응하는 방식과 미래를 보는 시선도 교환했다. 우리가 살아본 적 없는 인생과 세계에 대해 읽는 것은 혼자 읽을 때보다 더 다채로운 방식으로 책을 즐기게 해주었다. 책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고 발화하는 방식을 통해 생각을 단정하게 정리했고 책을 읽고 후에 내 안에 더 많은 흔적이 남았다. 이야기를 제대로 즐기는 또 다른 방식을 경험한 것이다.      


어떤 책은 정말 꾸역꾸역 읽어야 했지만 그 역시도 혼자였다면 완독 하지 않았을 테니 우리는 읽어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둘이 하는 독서단은 좋은 선택이었다. 북클럽이 처음인 사람들이니까, 서툴지만 함께 책 읽는 법을 익혀가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그 모임은 친구의 결혼과 출산으로 멈췄는데, 올봄 다시 모임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 사이 우리 신변에도 변화가 생겼고 책 읽는 마음도 달라졌겠지. 만나서 우리가 읽은 책에 대해 서로 어떤 말을 하게 될지 기대된다. 할 일이 많다고 핑계 대지 않고 바쁘다고 핑계 대지 않고 이번에도 즐겁게 책을 읽어볼 테다. 


<이미지 출처: Neflix '나의 눈부신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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