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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Jun 06. 2021

여기에서 북극성을 왜 찾아요

잠비아 출장은 이직 후 미디어 크루와 함께 한 첫 출장이었고 선임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채 열흘 휴가를 떠났다. 나는 기안 작성과 스케줄링, 현장과의 커뮤니케이션, 방송팀과의 조율을 짊어지고 연말을 보낸 후 새해가 밝자마자 잠비아로 떠났다. 회사와 팀으로써는 오래 준비한 프로젝트의 시작이라 선발대로 떠나면서 걱정이 많았다. 그 마음을 안다면 (아니 몰라도) 연출을 맡은 PD가 직업의식을 좀 보여주면 좋겠는데 역시 세상이 내 맘 같지 않다. 밤마다 술을 퍼마시는 PD에게 대체 연출 구상은 언제 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술기운 때문인지 원래 그런 건지 매번 형식적인 인터뷰 질문을 하는 통에 나중에 필요하면 잘 골라 쓰길 바라며 내가 궁금한 것들을 질문해야 했다. '계속 이렇게 똑같은 질문인가. 역시 술만 마시고 고민은 안 했다는 거네?'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이번에도 참았다. PD가 아닌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연출의 문법조차 모르는 것 같아서 세상은 넓고 PD는 다양하다는 걸 느꼈다.


PD만 다양한 건 아니었다. 후발대로 온 선임은 오자마자 말도 안 되는 트집으로 PD와 고성을 지르며 싸웠다. 지성인들이, 아니 다 큰 직장인들이 이렇게 자기 목소리가 더 크다고 자랑하며 싸우는 비이성적이고 논리적이지 못한 장면을 본 적이 없는 지라(싸울 때 싸워도 논리는 있어야 하거늘) 다양하게 당황스러웠다. 선임이 문제 삼은 것은 제작팀이 편집 구성안에 쓴 프로그램 가제였다. 가제는 말 그대로 가제일 뿐인데 아무리 말해도 이렇게 제목을 달고 문서가 돌아다니는 걸 참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이 제목은 싫다고 했는데 왜 내 말을 무시하고 가제로 적었느냐는 것이다. 정식 프로그램 명으로 정한 것도 아니고 우리끼리 보자고 편의상 적은 것뿐인데 무얼 그렇게 참을 수가 없는지 모르겠지만, 출장 준비는 안 하고 휴가를 갔다가 후발대로 오자마자 고생한 선발대를 모아놓고 성을 내는 당신을 참을 수가 없는 나를 좀 보라고 말하고 싶은 걸 또 참았다.      

과장님, 가제는 정말 의미가 없어요. 프로그램 시작 전에 정식 타이틀을 정할 거니까 이건 신경 전혀 안 써도 돼요.    


라고 말했다가 나는 학창 시절에도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말을 들었다.      


둥둥 대리, 좀 남아봐요.


PD는 작가 손에 끌려 나갔고 나는 선임 과장에게 뒷덜미를 잡혔다. "자기 지금 누구 편이야?"로 시작되는 잔소리는 아무 의미가 없었고 나는 지난 연말부터 쭉 어이가 없었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촬영 일정이 걱정된 작가와 나는 속을 끓이며 둘을 진정시켰고 그날 밤 PD와 선임은 맥주로 회포(?)를 풀었다. 결국 그날도 PD양반은 술을 마셨다는 말이다. 그리고 늦은 밤 내 방으로 찾아온 작가와 나는 아보카도를 까먹으며 뒤풀이를 했다.


<출처: 영화 '마션'>


시골 마을 바닥에는 손바닥 1/4만 한 비닐들이 널브러진 풍경이 흔했다. 술을 한 병씩 사 먹을 돈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한입거리 술 비닐이라고 했다. 그걸 빨아먹으며 일도 하지 않고 여자에게 모든 살림과 육아를 내던지고 취해서 술 비닐처럼 널브러진 남자들이 한심했는데, '저기 비행기 타고 24시간 날아온 친구에게 인사할래요?'하고 소개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무리 술이 좋아도 촬영 기간 중 PD는 현장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걸로 배웠는데. 내가 잘못 배운건 아닐 텐데.     


그 와중에 성실한 현지 직원들과 없는 살림에도 삶은 카사바를 소담스럽게 바구니에 담아내어 주는 주민들 덕분에 힘을 내고 있었다. 식사 때가 되면 직원들은 먼 곳에서 온 손님들의 동선을 고려하며 마을 회관 같은 곳에 음식을 준비해주었다. 그 와중에 메뉴가 비슷하다며 벌건 국물만 들입다 퍼먹는 PD를 보니 ‘술을 그렇게 퍼먹으니 해장이 하고 싶겠지.’하고 혀 차는 소리를 낼 뻔했지만 역시 참았다.      


이제 두 번째로 이 드넓은 아프리카 대륙을 찾은 나는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사륜구동 차로 언덕을 넘고 있자면 저쪽 언덕 너머 비구름이 몰려와 세찬 비를 내리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같은 마을 안에서 여기는 비, 저기는 맑음인 것이다. 예쁜 무지개는 한국에서만 보기 드문 선물이었다. 밤에도 하늘은 차분히 반짝거렸다. 술을 퍼마시는 PD도 하늘에 별이 예쁜 건 아는 모양인지 별자리를 찾아보자고 했다. 그리고는 취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말했다.     


북극성이 어디 있지?
PD님 여기는 남반구라 북극성 대신 남십자성을 찾으셔야 돼요. (과학을 너무 일찍 등진 나라서 잘난 체할 건 없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거 같아요. PD양반. 내가 OT자료로 성실히 정리해준 기본 정보 하나도 안 읽은 티를 이렇게 내나. 도대체 촬영 준비는 뭘 한 걸까.)      


내 말을 듣고 PD는 당당한 표정으로 아이폰을 꺼냈다.     


아, 여기 아이폰에 별자리 찾아주는 앱이 있는데, 이걸 이렇게 기울이면 북극성이 보일 거예요.
???


PD는 핸드폰을 이리저리 기울였고 조연출은 그 모양을 함께 들여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이 아름다운 하늘 아래 풍경이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남십자성을 처음 본 것은 멜버른에서였다. 멜버른에서 처음 밤 산책을 하는 날이었고 도심 한가운데에 이렇게 맑고 선명한 밤하늘과 별이 있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밤이었다. 곁에 있던 친구들은 우리 다 같이 남십자성을 찾아보자며 한국에선 못 보는 거니까 오늘 네 인생의 첫 번째 남십자성을 만나는 밤이고, 각자 다른 나라에서 모인 우리가 함께 보는 첫 번째 남십자성이라는 의미를 입혀 주었다. 그렇게 의미를 입은 소중한 남십자성을 두 번째로 만나는 밤인데 이게 뭐람. 내가 잠시 멜버른의 밤에 다녀온 후에도 PD는 핸드폰을 기울이며 북극성을 찾고 있었다.  


<남십자성과 남반구 은하수>


까만 밤하늘을 응시하다 보면 그 속으로 빨려 올라가 우주 밖을 유영해보는 상상을 할 때가 있다. 낭만보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사방이 끝 모를 어둠으로 둘러싸인 무한대의 공간 속에 혼자라는 건 싫다. 생각을 우주로 보낸 김에 목성과 화성의 사진을 자세히 찾아보았다. 지구 밖의 세상이 문득 궁금해서 나사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금방 나와버렸다. (역시 한글이 최고야. 네이버 백과사전 칭찬해.)


지구에서 6억 3000만 km나 떨어진 행성의 표면을 이렇게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벌써 경이롭다. 화성과 목성의 대기 구성표를 보다가 인간이 살기에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완벽하게 안전한 지구를 만들고 그 안에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새삼 놀랐다. 이렇게 광활한 우주를 지으신 이유는 아직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인간이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인가 가늠해보길 바라는 마음도 조금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생각이 더 나아가 '이 넓고 넓은 우주 안에 우리 모두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하며 우주적 관점에서 밤마다 술을 먹고 의미 없는 인터뷰를 반복하고 남반구에서 북극성을 찾는 PD를 품으면 좋으련만 내 생각의 품이 아직 모자라다.


일찍이 과학에 등 돌린 것에 대한 부끄러움에 도전의식을 더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기 시작했다. 천천히 언젠가는 다 읽겠지 하는 마음으로 부담 없이 시작했다. <창백한 푸른 점>을 먼저 읽고 싶었지만 동네 서점에 <코스모스> 뿐이라 먼저 시작했다. 아직 조금밖에 읽지 않았지만 칼 세이건은 우주로 철학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전문분야 안에서 철학하는 사람들이 좋다.) 최근에 푹 빠져 읽은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에 이런 구절이 있다.      


보이저 1호의 마지막 관측대상이 타이탄이었던 것은 아니다. 목표했던 모든 천체를 다 방문한 뒤 정처 없는 길을 떠나면서, 보이저는 고개를 돌려 지구를 바라보았다. 그건 위험한 일이었다. 태양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보이저가 보기에는 지구 바로 근처에 태양이 있었다. 지구 사진을 찍으려다 자칫 잘 못해서 카메라의 시야에 태양이 들어온다면 카메라를 못 쓰게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지구와 교신하는 안테나는 탐사선의 뒤쪽에 붙어 있어서, 뒤를 돌아보는 동안은 안테나가 지구 정반대 쪽을 향하므로 신호를 주고받을 수가 없다. 지구 사진을 찍은 뒤 다시 원래의 자세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보이저를 영영 잃게 되는 것이다. 캐럴린 포코와 칼 세이건이 이 기막힌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했을 때, 미 항공우주국의 결정권자들과 보이저 담당 엔지니어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두를 설득하기까지 7-8년이 흘렀고, 그러는 동안 보이저와 지구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마침내 보이저의 모든 과학 탐사가 끝난 후에야 고향을 잠시 돌아보는 위험한 응시가 허락되었다. 너무 멀어지기 직전에 건진 사진 속 단 하나의 픽셀에, 지구라는 '창백한 푸른 점'이 찍혔다.   


<창백한 푸른 점: NASA>


지극히 과학적인 사실로만 받아들였던 장면을 이렇게 따뜻하고 아련하게, 애틋하게 써낸 천문학자 덕분에 ‘창백한 푸른 점’을 빨리 읽고 싶다. 목성으로 날아가는 보이저호의 기분으로 ‘코스모스’를 시작으로 ‘창백한 푸른 점’을 향해 날아가고 싶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천문학에 대해 아는 척을 할 순 없겠지만 '나 왜 이렇게 무식해.'라는 부끄러움은 조금 지울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거대한 우주 속에서 작고 작은 나, 찰나 같은 내 인생. 너무 메이지 말자'는 대인배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아직은 천문학이라고 하면 '별'만 떠올리는 무지한 사람이라 기억 속의 예쁜 밤하늘 몇 개를 꺼내 본다. 잠비아의 밤, 남수단의 밤, 태국 시골마을의 밤, 멜버른의 밤. 그리고 곁에 있었던 사람들. 그립다, 여전히. 언젠가 새로운 의미를 입은 밤하늘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더 깊이 즐기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반짝이는 밤하늘은 아직 애틋함의 정서로만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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