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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Jul 15. 2021

내안의 조각들

닮는다는 건 신기한 부분까지 장악한다. 엄마의 여자 형제들은 걸음걸이가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 얼마 전에 친구와 안과에 갔는데, 내 다음 차례로 진료실에 들어간 친구에게 선생님께서 "자매는 아니신가 봐요? 시신경이 안 닮았어요."라고 하셨다. 가족끼리는 보통 시신경이 닮는다고 했다.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정보를 읽어내는 특정 직업의 방식은 이번에도 참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가족끼리는 음성도 비슷하다. 가게에 오는 내 친구들이나 동생 친구들이 우리 자매 목소리가 닮았다고 하는데, 그런 말을 듣기 전까지는 의식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는 부분인데 그건 마치 엄마와 이모의 걸음걸이가 닮았다는 사실을 엄마는 모르는 것과 비슷한 거겠지?     


가족이 아니어도 오래 지내다 보면 말투와 사고의 세계(언젠가는 세계관까지도?)가 비슷해지는 것을 종종 느낀다. 모방 능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내가 자주 쓰는 단어와 말투를 통해 내가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지 자각하기도 한다. 지금도 내게는 친구들의 언어습관이 조금씩 물들어 있다. 닮는다는 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의 나는 오직 나 자신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까이 지낸 사람들의 흔적을 모아 붙인 상태인 것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을 통해 오랜시간 넓고 촘촘한 그물망이 만들어지면서 나라는 사람이 그에 맞춰 형태를 갖춰간달까.


의식적으로 흡수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장 열망했던 것은 나만의 철학을 가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동경하는 누군가의 생각을 흡수하려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많이 흡수한 후에 걸러내면 나만의 철학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고 조금은 효과를 본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사고할 것인가를 배웠다. 지금도 인생철학이나 세계관을 확실하게 완성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없던 20대보다는 덜 흐릿한 상태의 내가 된 것은 분명하다. 어릴 때는 색깔도 생각도 흐리멍텅한 사람으로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으니까.     


세계관이 분명하다는 건 피곤한 일일지도 모른다. 기준이 명확하면 생각이 많아지고 그래서 괴로운 일을 더 괴롭게 겪게 되는 걸 봤기 때문이다. 그래도 취향처럼 세계관이 뚜렷한 사람이 좋다. 본인이야 괴로울 수 있지만 민감성이 세상을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뚜렷한 것과 까탈스러운 것은 비슷하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전혀 다르다. 시간이 흐르면서 뚜렷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가끔은 뚜렷한 것은 피곤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취준생 시기까지 좌우명이 뭔지 자주 질문받았다. 그건 마치 초등학교 때 가정환경 조사서에 ‘가훈’을 적어내는 것과 비슷하다. 정말 집집마다 가훈이 있나? 우리 집 가훈은 매년 그 조사서를 받을 때마다 리뉴얼되었고 적어내고 나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일회용이었는데. 좌우명이란 것도 그렇다. 정말 인생의 좌우명을 누구나 늘 가슴에 품고 사나? 명확한 한 문장으로? 적당한 방향성 정도가 아니라?      


철학이 뚜렷해진다는 건 내가 하는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철학이 뚜렷하다면, 중요한 것을 뺀 모든 것을 들쑤시며 답을 찾는 것 같은 답답함을 겪을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부럽다. (대충 내가 지금 질문이 많다는 말이다.) 다시 옛날 방법을 써봐야 하나. 닮고 싶은 사람들을 가까이. 코로나 시국엔 요원하다. 이럴 때 책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지 새삼 느낀다. 나 요즘 사춘기가 맞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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