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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May 23. 2021

취향의 n가지 그림자

유튜브 세계는 무한대에 가깝다. 원하는 것은 거의 모두가 준비된 취향의 섬이다.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고 끝없이 유영할 수 있다. 요즘은 피아노 연주에 빠졌는데 시작은 오페라였다. 오페라에서 피아노까지 이어지는 알고리즘은 어렵지 않았다. 어느 주말 우연히(나에겐 우연이지만 유튜브의 의도대로 흘러간 거겠지.) 한 피아니스트의 라이브 방송에 들어가게 됐다. 주제를 정해 두 시간 동안 연주를 해 주는 라이브 방송이었고 200명 남짓한 사람들이 시청 중이었다. 피아노 라이브 연주는 포근했고 채팅창은 화기애애 다정했다. 연주자 분이 채팅창에 올라오는 신청곡을 즉흥으로 연주해 주기도 했는데 나도 듣고 싶은 곡이 있어 무심결에 메시지를 남겼다. 그런데 그 피아니스트 분께서     


둥둥 님, 마녀 배달부 키키 OST 중 바다가 보이는 마을 듣고 싶어요.라고 해 주셨어요.


라며 내 메시지를 읽더니 헤드셋을 쓰는 게 아닌가. ‘정말? 정말로 연주를 해 주는 건가? 예상치 못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순간 두근거렸다. 연주는 늦은 밤에 어울리게 부드럽고 밤바다 위 바람결처럼 일렁거렸다. 우연히 들어와 남긴 신청곡을 실시간으로 듣는 행운을 누렸으니 앞으로 매주 방송을 듣겠구나 싶었다.     



말이 너무 많지 않은 것도 좋았다. 친구 중에 가끔 국악방송을 듣는 애가 있다. 국악 좋아해?라고 물었더니 말이 많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긴 곡은 10분이나 돼서 얼마나 좋은데.” 얼마 전에 버섯머리 차를 타고 화원에 다녀왔는데 라디오 93.9 채널을 틀면서 비슷한 말을 했다.      


여기가 말이 없어서 좋아. 음악이 가끔 취향이 안 맞을 때가 있긴 한데, 그래도 들을 만 해.      


왜 말이 많으면 듣기 싫은 지 각자 이유가 다를 것이다. 어쩌면 같을지도 모른다. 내가 피아노 연주를 찾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 수도 있다. 가사를 비우고 연주로만 듣는 음악은 듣는 사람이 안에 새로운 해석을 입힐 있다는 매력이 있었다. 연주자의 해석 위에 듣는 사람의 해석이 더해지는 경험. 유튜브 피아노 연주 영상 중에는 손만 부감으로 찍어 올린 영상들도 있는데 손가락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보게 된다. 피아노 연주는 어떤 면에서 과격한 손가락 노동으로 보인다. 연주를 하고 나면 손가락이 얼얼할 것처럼 열렬히 도 움직인다. 하나의 세계를 능숙하게 지배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경지에 오르기까지의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과 훈련을 존경한다. 그 세계가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에 있는 것 같아 경외심마저 든다.  음악적 소양이 전혀 없는 입장에서  전문가들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도 흥미롭고. 적당히 아는 것도 아니고 아예 모르는 것이 때론 좋을 수도 있다는 걸 요즘 낀다. 장사를 하면서 무엇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는데, 피아노 연주를 찾아들으면서 '전혀 모르는 세계'에 대한 즐거움을 경험한다.



최근에 피아노 연주에 빠져있기도 하고, 악보 보는 법이 거의 희미해져서 완전히 잊기 전에 뚱땅뚱땅이라도 해보고 싶어서 피아노를 사볼까 생각했다. 요즘 디지털 피아노가 그렇게 잘 나오는 줄 몰랐지 뭐야. 마음은 이해하지만 먼지 뒤집어쓰고 있는 우쿨렐레를 생각하면 좀 더 신중할 필요는 있겠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기에 피아노는 크기도 가격도 만만치 않으니. 지난주 성가대 연습 시간에 오랜만에 첼로 연주를 들었다. 새삼 묵직하게 울리는 첼로 소리를 내가 참 좋아했다는 걸 떠올리고 오랜만에 피아졸라를 꺼내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첼로에서 피아졸라로 이어지는  알고리즘 역시 쉽다.)     

교회에서 가끔 나이 지긋한 집사님들이 바이올린이나 플루트를 연주하실 때가 있다 전공자가 아닌 경우 더 멋져 보인다. 오랜 취미로 악기를 즐기는 사람들 말이다. 내 평생의 몇 가지 동경은 결국 예술적 능력에 대한 것이다. 타고나지 않은 사람들이 오랜 애정과 꾸준한 연습으로 연주하는 모습은 더 사랑스럽지. 타고난 재능 위에 오랜 노력을 더 한 사람은 경이롭고. 그 사랑스럽고 경이로운 능력을 타인을 위해 쓴다는 건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사람의 사연은 읽고 들려주는 즉흥연주에 매혹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 사람을 위한 그림, 시, 음악, 연주, 노래. 그중에 한 사람을 위한 ‘글’은 가장 희소한 것 같다. 김영하 작가님은 부인을 위한 소설을 썼다가 결국 출간을 하셨지만 정말 한 사람을 위한 글을 쓰는 작가들은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물론 소설 서문에 ooo에게 바칩니다.라고 하는 경우야 많지만.) 그날 밤에 <바다가 보이는 마을>이 마치 나 한 사람을 위한 연주 같아서 설렜던 것처럼 대상이 누구든 한 사람만을 위해 쓴 글을 본다면 똑같이 설렐 것 같다.



해외에 있는 친구에게 나중에 한국에 오면 나를 위해 한 곡 연주해달라고 말했다. 재능 있는 친구들을 적극 활용하며 ‘한 사람을 위한 무엇’을 경험하는 것도 좋다. 나를 위한 시, 나를 위한 연주, 나를 위한 노래, 나를 위한 요리. 전혀 새로운 나를 위한 무엇을 경험하고 싶다.      


오늘은 다시 라이브 연주 방송이 있는 밤이다. 몇 주 만에 푹  빠져들어서 이제 일주일 동안 기다린다.  그 연주를 마음 편히 듣고자 일주일 동안 해야 할 일들을 부지런히 해놔야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생각만, 해야 할 일 아직 다 못했다. 맙소사.) 피아니스트 분께서 그걸 아신다면 기분이 좋아질지도 모른다. 자신의 연주가 누군가의 생활에 파장을 만들고 있다는 거. 사연을 써 말어.      


<이미지 출처: 영화 '피아노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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