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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Nov 14. 2022

습관처럼 기대하기

지난 토요일 아침  버섯머리가 가게에 왔다. 일찍 잠이 깬 김에 들르겠다고 전화가 왔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 이번 주말엔 버섯머리가 가게로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딱 찾아온 것이다. 일찌감치 오픈 준비를 마치고 같이 파블로바를 만들어 먹었다.      


그날은 종일 귀여운 손님들이 많이 왔다. 오후에 방문한 중년 부부는 카운터 앞에서 서로 존대하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화하시기에 다정한 부부구나 싶어 마스크 속으로 씨익 웃고 있었는데 주문을 마치고 여자분이 "책 읽어보고 왔어요."라고 수줍게 인사하셨다. 가끔 이렇게 책을 읽었다고 말하는 손님이 오면 나는 뚝딱이가 된다. 동생이 스몰토크 잘하라고 몇 번 단속했지만 뚝딱거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해 질 녘 찾아왔던 젊은 커플은 다 먹은 음료 빨대 위에 티슈로 만든 귀여운 토끼를 씌워주었다. 말투가 예쁜 손님들도 유독 많은 날이었다.     


잔잔하게 조금씩 기분이 좋아지는 하루였고 아침에 눈을 뜰 땐 전혀 기대하지 않은 일들이었다. 최근 읽은 칼럼의 문장이 생각났다.     


"기대하세요. 내일의 날씨, 이따가의 점심메뉴, 오랜만의 시내 외출, 개봉할 영화와 새로운 드라마.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실패에도 다시 일어나는 힘은, 지치지 않는 기대에서 나옵니다. 오늘 점심으로 먹은 달걀 샌드위치가 형편없었대도, 저녁으로 먹을 소고기덮밥은 괜찮을 수 있습니다. 이번 학기의 학점이 개판이었대도, 내일 보기로 한 영화는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취미는 '기대하는 것'. 백 번을 실망한대도. "     


칼럼 전체를 구구절절 마음에 새기고 싶을 만큼 좋았지만 특히 이 구절이 좋았다. 전문가가 자신의 전문성에 따뜻한 감성을 얹어 말하면 나는 저항 없이 무너진다. 그런 글을 만나는 건 짜릿하다. 서정적 전문성에 대한 동경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지 오래되었는데, 얼마 전에는 OTT채널에서 '연애시대'를 다시 봤다. 극 중 "연애는 어른들의 장래희망"이란 대사가 나온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어른들에겐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어제와 오늘, 내일이 다르지 않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는 어른들은 연애를 하면 비로소 기대를 품게 된다고 했다. 기대한다는 건 용기 있는 일이다. 기대하기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뭔가를 기대했던 게 언제였지? 꽤 오래 기억을 더듬어야 한다. 별로 떠오르는 게 없다. 기대한다는 건 상당한 의지가 필요한 일인 걸까. 매일 달리기를 하거나 규칙적으로 산책하는 것처럼. 그렇지 않으면 기대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못하고 지내게 되는 때가 온다. 지금처럼.     

 

그렇다고 기대 없는 삶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나라 이름을 까먹어 버렸지만 북유럽 어느 나라엔 무언가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서 행복 지수가 높은 정서가 있다고 한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고 기대하지 않은 좋은 일을 덤덤히 즐길 수 있으니까. 기대를 하건, 하지 않건 어떤 식으로 마음을 다루는지가 중요하겠지.      


기대하는 건 의지가 필요하듯 훈련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칼럼에서처럼, 내일의 날씨를, 점심 메뉴를, 며칠 후에 있을 만남을. 실망하더라도 다른 일을 다시 기대하고, 끝없이 기대하는 훈련을 해볼까. 그럼 근육이 붙듯이 내 영혼에도 힘이 붙는 거 아닐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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