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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Aug 31. 2022

취소해, 말어.

주기적으로 유튜브 구독 목록을 정리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구독을 시작했다가 원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인 것 같을 때 구독을 취소한다. 가끔은 그 채널에서 내가 보고 싶은 이야기와 조회수가 나오는 이야기가 다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구독하지 않게 된 여행 유튜버, 일상 브이로그 채널 몇 개가 있다.     


얼마 전 아주 오래전 잠시 친했던 사람이 떠올랐는데 남은 기억은 그 사람이 했던 내가 싫어하는 행동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미화될 기억 없이 이런 것만 남았으니까 우리가 헤어졌구나 싶었다. 며칠 전에는 오랜만에 친구와 통화를 했는데 내가 원하지 않는 질문을 연달아하는 바람에 긴 통화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싶어서 대화를 마쳤다. 가끔은 누군가를 싫어하지 않기 위해 대화를 더 잇지 않고 잠시 거리를 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냥 가만히 버티면서 관계가 비틀어지도록 두는 것보다는 그쪽이 현명하다. 누군가와 늘 가까워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나려고 노력 중이다.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흔들흔들하면서 그때에 알맞은 거리를 조절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관계를 오래 지속하기위해 상대가 좋아하는 걸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게 더 낫다는 쪽에 공감한다. 가끔은 내가 싫어하는 게 꽤나 많은 것 같아서 한숨이 나긴 하는데 남들 모르게 혼자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이길 바랄 뿐이다. 벌써 눈치채고 있는 건 아니겠지.      


최근 낯설지 않은 낯선 사람들을 만났다. 가게를 시작한 후 내 인간관계는 확장을 멈추었기 때문에 그런 자리가 오랜만이었다. 몇 시간 동안 차를 마시고(정말로 차를 마셨다. 건강검진 결과 위염인 것으로 밝혀져 커피를 끊으라는 권고를 받았다. 하루 한 잔 뿐이었는데 세상에.) 밥을 먹었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적당히 부드럽게 피상적이지 않고 선을 넘지도 않지만 가볍지만도 않은 질문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20대부터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질문을 잘하는 사람은 분위기와 대화의 깊이를 만들고 이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낯선 이를 만난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질문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세계가 얼마나 괜찮은지 보여주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피곤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만나는 사람도 고정되고 관심사도 늘  그대로인 채 고인물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어 유튜브의 은총에 감사하며, 언제든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취향과 어긋나는 어떤 것을 즐겨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구독 취소 버튼을 누르려다 좀 더 들어보자. 하고 둔다. 아차, 잘못 골랐다 싶은 책도 더 읽어 본다. 혼자라면 가보지 않을 것 같은 곳도 망설이면서 끌려가 본다. 대개는 첫 느낌대로 실패로 끝나지만 운 좋게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누리기도 하니까. 그렇게 고인물이 되지 않으려고 뒤척거려 본다. 그렇지만 지금 내 유튜브 알고리즘을 오염시키는 낚시 영상들은 영 손이 가질 않는다. 갑오징어 낚시 기술이나 감성돔 낚시 스폿은 아직도 전혀 궁금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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