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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Mar 31. 2024

병원 순례기

이번에도 병원이야기다. 지긋지긋하게 병원을 전전하고 있다. 알레르기성 비염인이 수시로 겪는 알러지성 결막염이 이번엔 혼자 오지 않고 아토피와 함께 왔다.  지난 11월부터 증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아토피라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다. 처음엔 단순 결막염의 증상인 줄 알고 이비인후과 안과를 여러 곳 순례하듯 돌았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사실 안과에서는 알레르기성 결막염이 맞다고 했다. 흑흑. 선생님도 잘 모르셨던 거겠지. 피부과약은 독하다는 생각에 웬만하면 피부과에 가지 않고 해결하고 싶었지만 안과, 이비인후과에서는 해결을 보지 못했고 눈주위 얇은 피부가 자꾸 벗겨지다 아물다를 반복하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어 결국 피부과에 가기로 했다. 


하필 병원에 가기 이삼일 전부터 증상이 심해져서 병원에 가는 날은 심하게 부은 눈 주위가 벌게져서 커피를 마시고 싶어 카페에 들렀을 때조차 괜한 오해를 살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안 그래도 병원에 가는 길이에요."하고 변명할 수도 없고.


그날 내가 만난 선생님은 우리 지역구에서 오랫동안 권위를 인정받아 여러 지인들의 간증을 들은 바 있는 명의셨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예약 없이 갔다가는 두 시간 대기는 기본인 데다  초진일 경우는 전화예약도 할 수 없고  곳이다. 다행히 나는 기억에도 없는 오래전 초진 기록이 남아있어 전화 예약 후 병원을 찾았다. 


치료와 미용관리 모두 훌륭한 곳이라고 했는데 작년에 동생 친구가 잡티제거차 병원에 갔다가는 선생님과 작은 실랑이가 있었다고 했다. 원체 피부가 좋은 그녀가 레이저 시술을 받겠다고 하자 선생님은 티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가지겠다는 생각엔 반대하신다며 적당한 잡티는 가지고 살라고 하셨다고 했다. 선생님이 "이거 이거 이거 정도는 남겨두고 나머지까지만 해요" 하고 협상안을 제시하자 친구도 굽히지 않고 "그래도 기계 켠 김에 이거 이거 이거까지는 해주세요." 하고 맞섰다. 결국 선생님은 탐탁지 않아 하셨지만 친구는 원하는 바를 얻어냈는데, 끝으로 친구는 이런 말을 남겼다. "그런데 그 선생님 피부를 보면 저절로 신뢰감이 생겨. 나이도 많으신데 피부가 너무 좋아."


최근에 들은 이런 에피소드 덕분에 선생님에 대한 신뢰감을 조금 더 키운 상태였다. 소신 있게 진실한 진료를 하시는 분이구나. 진료 때 선생님은 꾸밈없이 말씀하시는 편이었다. "이 약으로 증상을 뿌리 뽑겠다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증상을 완화시킬 뿐이에요. 약 먹고 일주일 후에 다시 봅시다." 나도 선생님의 생각에 동의했다. 약으로 어떻게 완전히 뿌리 뽑겠어요. 그랬으면 진작 나았겠죠.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갔는데 약사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더 자세한 말씀을 해주셨다. 증상은 얼마나 되었는지, 매년 그런지 물으시더니 약을 먹다가 증상이 나아지면 즉시 복용을 멈추라고 하셨다. 너무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셔서 약에 위험한 거라도 탄듯한 기분이었다. 연고는 간지러운 곳에 콕, 콕 찍어 바르고 넓게 펴 바르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선생님, 콕콕 간지러운 것이 아니라 넓은 곳이 다 간지러워요. 흑흑. 


그리고 아토피인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 인스턴트 음식, 튀긴 것, 매운 것을 자제하라고 하셨고 인상적인 말을 하나 더 하셨다. 잠을 많이 잘 것. "날이 어두워진다 싶으면 바로 잘 준비를 하세요." 미스터리 소설에서 나올법한 대사 같았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밤에 늦게까지 자지 않으면 염증을 자극하는 호르몬이 활성화된다고 했던 것 같다. 은밀한 약사선생님의 지령을 받았고, 결론적으로 일주일은 무의미하게 흘렀다. 그리고 피부과 선생님께 혼이 났다. "연고는 성분이 셀 것 같아서 꾹 참다가 정말 참을 수 없을 때만 두 번 정도 발랐어요." 하고 말했더니 "부작용이 무서워서 안 바르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꾸준히 바르고 증상이 나아지면 약을 떼야지. 다시 처방해 줄 테니까 약 잘 먹고 연고 잘 바르고 2주 후에 봅시다."


일주일 동안 음식에 신경 쓴다고 유난 부렸는데, 다 소용없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끊지 못한 디저트와 과자들이 범인은 아니었기를. 사실 이 얘기는 선생님께 따로 하진 않았는데. 오늘도 벌게진 눈으로 마감을 하고 있다. 


지난 몇 개월동안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해봤는데 다 소용이 없었다. 어릴 때는 아토피로 고생할 때 엄마가 생 알로에를 키우면서 밤마다 손등에 알로에 팩을 해줬었는데 꽤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알로에 크림도 샀는데,  효과가 없었다. 생알로에가 아니라 그런가. 친구가 추천해 준 호호바 오일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포포크림도 열심히 발라봤지만 의미는 없었다. 면역이 문제인가 싶어 무려 300억 유산균도 샀다. 그리고 지금은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올드페리도넛을 참고 있다. 대체 왜 갑자기 심해져서 반년동안 낫질 않는 거니. 내가 뭘 알겠어. 선생님이 시키신 대로 약 잘 먹고 겁내지 말고 연고 잘 발라야지. 


엄마는 집에 먼지가 많아서 그런가 싶어 거의 10년 만에 내방 뒤쪽 베란다의 짐들을 정리했다. 주말 하루를 꼬박 고생했다. 엄마는 볼 때마다 "어휴, 속상해"를 연발한다. 엄마의 정성을 봐서라도 약 잘 먹고 연고 잘 발라서 빨리 나아야지. 2주 후엔 제발 싹 나아라. 꽃가루 날릴 때 더 심해지면 난 못 산다. 벚꽃구경은 편하게 가고 싶다. 다 낫는 날엔 기념 파타라도 할까 봐.


그리고 더 빠르게 소규모작당에서 하기로 한 개인 프로젝트도 구성을 정리해서 글쓰기를 시작해야겠다. 데자뷔 같은 말이지만. 다음번엔 꼭 시작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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