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와 나는 여전히 홍이 이야기를 한다. 홍이가 어린 시절, 우리는 꽤 친밀했다. P 남편이 출장을 가면 홍이를 보려고 P네 집으로 조르르 달려가서 며칠씩 머물기도 했고, P가 지방으로 이사한 후에도 일 년에 몇 번씩 휴가를 내고 5~7시간씩 버스를 탔다. 홍이가 붙잡고 우는 바람에 버스를 취소하고 하루 더 머문 적도 많았고, 홍이를 데리고 둘이 놀러 다닌 일도 많았다. 홍이가 찍어준 사진도 있고 내가 찍은 홍이 사진이 수백 장이다.
여전히 귀여운 어린이 시절 기억이 생생한데, 홍이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P 부부의 걱정도 무거워졌다. 사소한 듯 무시할 수 없는 걱정거리는 그 시절 어느 부모나 하는 걱정이기도 하다. 어제도 P부부와 만나서 홍이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러다 P의 남편이 말했다. “가족 얘기하니까 자꾸 욕만 하게 되나 봐. 남 얘기 해. 남 얘기.” 미안하다. 홍이야.
홍이만 자란 게 아니다. P와 앉아 있으면 아직 14살 시절에서 멀지 않은 느낌인데 이제 P는 14살보다도 훌쩍 큰 홍이를 키우고 있다. 그 시절 P와 홍이를 나란히 보게 된다.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얘기는 “그때 우리 진짜 많이 먹었다.”라는 점도 지금 홍이와 비슷하다. 14살에서 마흔 중반이 되기까지, 느슨하게 혹은 정신 못 차리게 빨리, 시간은 불규칙하게 흘렀다. 일주일은 더디 가는데 일 년은 빨리 간다.
어제 한 친구는 또 한해가 시작되는 게 무섭다고 했다. 나는 차라리 시간이 더 빠르게 흘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뭐든 애매한 지금을 견디느니 시간이 빨리 가길 바라는 게 낫다. 불규칙하게 흐르는 시간이 이번엔 속도를 내면 좋겠다. 뭐 이 나이에 어울리는 생각은 아니다. 얼마 전, 0살부터 100살까지 각 나이를 표현한 문학 작품 속 구절을 모은 책이 있다기에 내 나이는 누가 어떻게 썼을지 궁금해서 일부러 서점에 갔다.
“그는 마흔다섯 살이었다. 마흔다섯이라니! 5년만 있으면 쉰이 된다. 그 다음엔 예순, 다음엔 일흔. 그러고는 끝이다. 맙소사. 그런데도 여전히 이토록 자리를 잡지 못하다니!”
- D.H. 로런스 「무지개」
20세기 초반에도, 21세기 초반에도, 마흔다섯은 자리 잡지 못한 애매한 나이다. 마냥 걱정 없이 도전하기엔 너무 많고, 다 내려놓기엔 아직 어린 나이인데 안정감 있는 자리를 찾지 못한 마흔다섯이 나 하나가 아니라면 좀 다행일까. 그렇게 안도해도 되는 걸까. 아직도 이렇게 갈팡질팡하고 있으니 17살 홍이가 헤매는 것도 당연하다. 가끔 성가대 어른들을 보면서 ‘좀 더 나이를 먹으면 적당히 자리 잡고 적당히 즐기면서 살게 될까.’하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세상에 보내기 전, 애매함을 주성분으로 만드셨을지도 모른다.
가급적 좋은 방향으로 또렷해지기 위해 태도를 익히는 중이다. 유머, 적당한 거리감 유지하는 법, 말을 참는 법. 익힌다고 했지 실행한다고는 안 했다. 쩝. 어제도 P 부부랑 대화하는 동안 유머를 익혔다. 올해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P인 것, 많이 웃으면서 유머를 익힌 것. 한해 마무리로 적당하다.
개인적으로 한해를 돌아보는 시간은 가지지 않을 생각이고, 여전히 새해 계획은 없다. 생각하지 않고 계획하지 않고 어제 하던 대로 일하고, 일주일에 서 너번은 실내 자전거를 타고, 새로 산 이북 리더기 잘 쓰면서, 유머를 익히고 적당히 거리 두는 법과 말 참는 방법을 배우면서 유난 떨지 않으면서 덤덤하게 새해로 넘어갈 뿐이다. 애매한 사람에서 점점 멀어지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