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되고 싶은 어른이 되는 건 아니야.”

by WonderPaul

영화 속 대사는 “나도! 나도!” 하고 손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매년 아이들에게 강박적으로 장래희망에 대한 글을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해마다 다른 걸 적어 냈는데 문방구 주인, 분식집 주인, 간호사, 변호사, 디자이너, 놀이동산 주인, 선생님 등등이었다. 아무도 네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써보라는 숙제를 내주지는 않았다. (‘대리’ 나 ‘사원’이라는 꿈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


나름의 교육철학을 가진 엄마는 성장기 딸내미를 키워내며 몇 가지를 강조했다. 절대 지각이나 결석은 안 된다는 것. 아무나 따라가지 말라는 것. 남들 앞에서 울면 안 된다는 것. 싫은 것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이런 대원칙 아래 폐렴에 걸린 날도 결석 없이 학교에 갔고, 오전 수업 후 조퇴를 했다. 링거를 맞고 집으로 가는 줄 알았지만 엄마는 나를 다시 학교로 데려다 놓았다. 위 4가지 중 남들 앞에서 울면 안 된다는 말을 특히 자주 했다. “울면 우습게 보인다고 했다.”하면, 친구사이에 그런 게 어디 있어 라고 생각했는데 엄마 말이 맞나 뒤늦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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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뭔지 감도 못 잡던 그때, 내가 되고 싶었던 어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막연히 ‘어른스럽다’는 말이 떠오른다. 대충 의연하고 여유 있는 모습쯤이려나. 작은 파도에 일렁이지 않는 모습을 바랐는데. 그런 건 신기루일 뿐이었다. 어떤 날은 지하철에서 무심하게 어깨를 툭 치고 사과 없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순간 화가 치솟아 한동안 분을 삭여야 한다. (심지어 이런 날이 자주 찾아오기도 한다.) 작은 물결 하나 놓치지 않고 반응하는 어른이 될 줄은 몰랐다.


환절기를 맞아 다시 발동 걸린 비염 때문에 머릿속에 콧물을 채워 넣은 것처럼 정신이 무겁고 몽롱한 일주일이었다. 매일 퇴근 후 그대로 거실 전기장판 위에 누워 잠들었다. 새벽녘 동생이 깨우면 좀비처럼 일어나 세수하고 다시 침대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어제도 거실 바닥에 누운 채 잠들었는데 동생이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반쯤 깨어났다.


언니, 세수했어?
으... 응...(쿨쿨, 우선 잠이 덜 깬 척해보자.)
안 한 거 같은데.
......
엄마, 언니 세수 안 했지?
응. 안 했어.
(귀신같기는! 망했네.)


할 수 없이 일어나 세수를 하고 침대로 들어갔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날이 좀 흐렸지만 며칠 동안 매서웠던 추위가 잠시 물러간 것 같았다. 날이 풀렸으니 오늘은 겨울 외투 없어도 괜찮겠다 싶어 서둘러 양치를 시작하자, 어제 잠들기 전까지 곱씹었던 생각이 다시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생각한들 매듭지어지지 않는데 떨쳐 낼 수도 없어서 자꾸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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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목사님은 이런 설교를 하셨다. “그날 싸움이 있거나 화가 쌓이면 반드시 잠들기 전에 푸세요.” 몸과 마음과 영혼이 건강하려면 그날의 찌꺼기를 새 날이 오기 전에 털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끔 그 설교가 생각이 나면 실천하기 위해 제법 노력했다. 그런데 어젯밤엔 그러질 못했고 결국 오늘 아침부터 부지런히 곱씹게 된 것이다. 13년 전에 지넬 할머니는 또 이런 말을 했다.


둥둥, 어른이 되었다고 상처받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마. 어른이 되어도 상처받는 건 똑같아. 같은 일을 반복해서 겪어도 매번 똑같이 상처받는 법이야. 그러니까 상처받았다고 당당히 말해. 일을 해결하려고 들기 전에 네 마음을 잘 만져야 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고 괜히 식탁보를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특별한 디저트와 차 맛이 ‘참 달콤하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도 달고 눈빛도 달고. 지금도 기억에 남을 좋은 저녁이었다. 어젯밤 다시 생각난 지넬 할머니의 말은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지 못한 죄책감에서 나를 살짝 풀어주었다. 이제 그 말은 ‘되고 싶었던 어른이 어떤 모습인지 신경 쓰지 말고 지금 네 모습에나 신경 쓰는 게 훨씬 좋을 텐데.’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그 말은 오늘 아침 ‘너 자신을 좀 더 자연스럽게 인정하도록 해.’와 같은 의미가 되었다. 생각해보니 고작 스물 남짓이었는데, 그때도 너무 조심스러웠다. 어른이 뭔지도 모를 나이에 벌써 되고 싶은 어른이 아니라는 섣부른 생각을 하고 말이다. 주제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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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내가 되고 싶었던 어른에 대해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나를 사랑하는 어른, 나와 친밀한 어른’이 되었어야 했다. 10년 내에라도 그럴 수 있다면 성공적인데. 거울 앞에 서는 것이 싫은 날이 있다. 내가 꼴도 보기 싫은 날. 그럴 때는 아직도 내가 나와 사이가 별로라는 사실에 어깨가 툭 떨어진다. 거울에 나를 두고 돌아선 뒤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시간을 보내면서 언제쯤 나와 사이가 좋아지게 될지, 알 수 없는 시간을 헤아려 본다. 니체는 내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그 심연도 나를 들여다볼 것이라는 무서운 말을 했는데 내 심연을 너무 자주 들여다본 탓에 거울로도 나를 보고 싶지 않아진 걸까.


내가 되고 싶었던 어른은 이제 그만 생각하자. 지금의 내가 어떤 모습인지 거리낌 없이 들여다볼 수 있을 때까지 당분간은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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