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봄

by WonderPaul

대대적인 방청소를 했다. 엄마의 방이 빗장을 풀고 무언가를 내보냈다는 것은 우리 가족 역사에 있어 기록할만한 사건이다. 대체로 버릴 것뿐인 엄마의 짐을 요-맨-큼 덜어내는데 7년 걸렸다. 엄마와 동생이 몇 번을 들락거리며 내다 버렸지만 천벌 동굴 같은 엄마의 방은 여전히 옷이 주인이다. 그 옷이란, 엄마가 스무살 시절부터 끌어 모은 것들로 지난 10년 동안 단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을 뿐러 20년 간 빛을 보지 못해 삭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옷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리자는 말만 꺼내면 불같이 화를 내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엄마에겐 그것들이 확장된 자아이기 때문에 함부로 버릴 수 없는, 그러니까 아바타 주인공의 꼬리같은 의미라고 짐작해봤지만 엄마는 ‘언젠가 입을 거야.’라고 말했다. 의미가 아니라 효용이라면 더더욱 버려야 할 텐데.


우리 자매에겐 손댈 수 없는 동산 중앙의 선악과와 던 엄 방이 오늘 7년 만에 정리를 허락한 이유는 새 침대가 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자매님과 일년 전부터 침대를 사자고 모의한 후 가격과 품질을 고려하여 맘에 쏙 드는(그러니까 오래오래오래오래 쓸 만한) 물건을 찾아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지난 설 연휴 우리의 열린 마음에 꼭 맞는 침대가 들어왔고 오늘 드디어 배송일이다.



남의 시선을 삶의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로 생각하는 엄마에게 배송 기사님의 방문은 거부할 수 없는 신의 음성처럼 방을 치워야만 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아저씨에게 더러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치운다 한들 하룻밤 사이에 엄마 인생 흔적을 말끔히 정리할 수 있을 리가. 나는 두 모녀가 종일 정리한 방을 둘러보며

대단한 변화다. 깨끗해졌다는 것과는 달라.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침대 아래에선 정말 오래된 것들이 나왔다. 동생의 통지표와 오래된 사진들. 나의 ‘엄마 사랑해요’ 편지들. 심지어 유럽여행때 스위스 우체국에서 부쳤던 편지도 나왔다. 몇 개의 편지를 열어보았는데 너무 오글거려서 다 읽을 수가 없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 그리고 스무 살이 넘어가면서 딸의 편지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였다. 편지는 뜻밖에도 나의 성장사를 움켜쥐고있었다. 어버이날에도 편지를 쓰지 않은 지 10년은 됐다. 손 편지 쓰길 꽤나 좋아하는 편인데 엄마에게 손편지는 오글거린다.


내 방은 침대 맞이를 위해 빼낼 물건이 거의 없었다. 이미 수시로 버리기 때문에 오히려 버릴 것이 없어 아쉬웠다. 다만 오랫동안 들추지 않은 침대 아래 켜켜이 붙은 먼지들을 치워 내고 나니 몇 개월만의 때 목욕처럼 시원한 기분이었다.



토요일 아침, 배송기사님이 오기로 한 시간이 되자 엄마는 미처 눈 가리고 아웅에 실패한 물건들을 수건으로 가리고 아웅 하기로 했다. 엄마의 품위는 겨우 수건으로 가려질 수 있는 것이었나.


갑자기 들이닥칠까 봐 어젯밤에 잠도 못 잤어.


엄마의 '남의 눈 의식'과 '소심함'은 이런 부조화를 이루며 60년 간 엄마를 괴롭혀왔다. 정리 후에도 너저분한 방과 엄마의 초조함의 간극에 코를 벌름 거리며 웃음을 참고 있는데 드디어 그이 등장했다. 기사님은 목소리만큼 신사적으로 신속하게 설치를 마치셨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열심히 일하시느라 엄마의 급조한 품위 같은 건 전혀 둘러볼 여유가다. 엄마는 기사님께 며칠 전 받은 고로쇠 물을 한잔 가득 따라드리는 것으로 최소한(혹은 최대한의) 품위를 어필했다. 고로쇠 물을 가득 따른 컵을 들고 엄마가 다급하게 부엌 선반을 둘러보다가 꽃무늬 플라스틱 냄비받침을 잡아 컵 아래 받쳐주었다.


맙소사! 엄마는 찻잔과 접시의 세트 구성을 흉내 내려고 했던 것이다. 수건으로 물건을 덮는 품위와 냄비받침으로 흉내 내는 품위라니. 엄마의 위장술에 당황했지만 나만큼 당항했을 냄비받침을 신속하게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기사님께 고로쇠 물을 건네드렸다. 웃음과 당황이 손 끝에 모여 컵이 흔들리는 바람에 조금 바닥에 쏟고 말았다. 기사님은 고로쇠 물 한잔에 담긴 엄마의 허례허식을 전혀 모른 채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켜고 침대 설치를 마무리해주셨다.



드디어, 침대가 들어왔다.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게 매트리스와 다리로 구성된 호두나무 침대. 환영한다! 침대야. 동생은 벌써 엄마가 침대 아래 무엇을 욱여넣을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가구 하나 바꾸는데 버릴 것이 이렇게 많구나. 새삼스럽다. 새 침대를 들이느라 먼지 좀 풀썩거렸더니 저녁 내내 재채기가 난다. 그래도 훨씬 상쾌하다.

봄맞이 대청소는 기습적이었다. 침대를 들이고 보니 이것이 바로 봄맞이 대청소였구나. 그 어느 해보다 대대적으로, 실제적으로, 의미 있게 해냈다. 앞으로 버릴 것이 더 많은 엄마 방의 빗장을 드디어 열었다는 것이 최근 북미대화처럼 상징적이었다. 고작 가구 하나 바꾸는 일인데 뭐가 그렇게 뿌듯하고 시원스러운지. 침대 머리맡에 헌 침대 헤드 모양의 경계가 또렷하다. 우리 가족이 이 집에 살게 된 후 벽에 뭍은 시간의 때. 예쁜 포스터를 사서 붙여야겠다. 어떤 시간은 예쁘게 가리고 싶다. 엄마가 수건으로 덮은 물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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