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집

by WonderPaul

가족들이 함께 쓰는 물건에 대해서는 서로 간 합의 하에 마지막을 정한다.


동생아. 이 수건은 보내주자. 이것 봐. 너무 심해.
안 돼. 엄마가 새 수건 안 꺼내 준단 말이야.
이렇게 심한데?


수건 1/5 지점이 완전히 갈라져 수건이 두 조각 나기 직전인데도 보내줄 수 없다니 수건에게도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 4개나 보내줬단 말이야. 4개 보내주고 3개밖에 못 받아서 부족해.



엄마에게 새 수건을 받을 때 동생이는 오랜 협상 과정을 거쳐야 했다. 매일 우리 가족이 쓰는 수건의 양과 세탁 횟수 등을 구구절절 늘어놓자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서랍 깊은 곳에 손을 넣었다. 마지막으로 동생 이를 보며 멈칫할 때는 ‘정말 이 소중한 수건을 지금 꺼내야 네 속이 시원하겠냐?’는 말이 표정에서 읽혔다. 그러나 매일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을 때 직면하게 되는 수건 부족 현상을 모르지 않는 바, 결국 동생이에게 수건 3개를 꺼내 줄 수밖에 없었다.


아휴. 이거 너네 시집갈 때 주려고 아껴둔 건데.


(네? 어머니? 수건을 아껴두다뇨. 수건에 순금 술이라도 달렸어요? 거기 보이는 것은 순금 장식이 아니라 “국민연금공단”이란 파란 글씨뿐인데요.) 이걸? 왜? 수건이 비싸서 못 살까 봐?
아니 그게 아니라. 이 수건이 엄청 좋단 말이야.


결국 엄마가 언제일지 모를 자녀들의 결혼을 위해 아껴둔 수건은 욕실 수납장에 안착했다. 그게 불과 일주일 전이라니, 다시 새 수건을 달라고 하는 건 시가기 좋지 않다. 결국 두 동강 나기 직전의 수건을 보내주지 못하고 세 번 접기를 해서 수납장에 잘 넣었다.



엄마는 뭐든 안 버리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수건에 대한 의견 충돌은 일도 아니다. 지금 거실 TV 아래 선반에는 대, 중, 소 늙은 호박 3 덩이가 정말 늙, 아니 썩어 죽어가고 있다. 호박 욕심이 남다른 엄마는 곧잘 호박을 얻어온다. 현관에 들어서면 동생이 의 환영사가 시작된다.


어휴! 또 가져왔어!
호박죽 끓여 먹을 거야!
저번에도 그렇게 말했으면서. 결국 썩혀서 버렸잖아.
이번엔 진짜야. 그땐 시간이 없어서 그랬지.


퍽이나. 에잉. 썩힐 거면 안 보이는데 두란 말이야. 보기 싫게 거실에 두지 마.


TV 아래 호박 삼 형제가 있다는 것은 엄마가 이겼다는 뜻이지. 냉장고에는 더 유서 깊은 그것들이 있다. '그것들'이라는 지시대명사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그것들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냉장고 1층에 있는 것들은 좀 심하지 않냐. 우리가 이사 온 날부터 거기에 늘 있었던 것 같은데, 유물인가? 엄마 몰래 조금씩 버려야겠어.


아냐. 오래 살면 신이 된다고 하잖아. 거기 있는 애들은 신이 되었어. 건드리지 마.



엄마의 습관은 자주 재앙을 가져온다. 표현하고 싶지 않은 곤란한 상황이 닥치면 엄마는 진심으로 자기 탓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화살은 당연하게도 나에게 향한다. 내가? 갑자기? 엄마의 익숙한 무논리를 방어하기 위해 우리는 꼼꼼하게 증거를 수집한다.


엄마는 공간이란 비어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60이 넘는 인생을 꾸려왔다. 엄마의 가방을 보자. 평소 재난대비 Quick Run Bag을 꾸려 다니는 사람처럼 묵직한 가방을 메고 다니는데 그 안에서는 심지어 주택거래와 관련된 문서가 나온 적도 있다.


엄마 우리 몰래 집 팔고 도망갈 거야?


여름이면 엄마 가방 안에서 녹아내린 초콜릿이 소지품에 질척거리는 꼴을 반드시 보게 된다. 우리 집엔 엄마가 사들이고 버리지 않은 양말이 서랍장 3개만큼 있다. 서랍장이 꾸엑! 하고 양말을 뱉어내는 모양을 볼 때마다 혹시 살아 있는 거 아냐? 하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서랍장 근처엔 가고 싶지 않다. 오래 살면 신이 된다고 했어 동생이가. 우리 집은 아미 신들의 집인지도 몰라. 아. 성스러워라.



언젠가 이 집의 모든 허물을 벗고, 이사 가는 날을 상상한다. 살림의 절반을 기필코 덜어내리라 다짐해본다. 엄마의 천벌 동굴 속 옷과 신이 된 양말. 냉장고 1층, 신들의 영역을 포함해서 무한대로 쌓아 올려지는 화장대 무엇 무엇들(정말 무엇들인지 알 수 없다.). 여기저기에서 엄마가 주워모은 쿠폰과 명함들(명함 주인들은 이미 이직을 해도 두세 번은 족히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제발 좀 버려요 어머니!), 어느 식당에서 챙긴 이쑤시개 뭉치(제발 이불 위에 흘려놓고 모른 척하지 말자구요.), 친구가 한 줌 챙겨주었다는 녹아서 흐물흐물해진 커피 사탕. 짝을 잃고 휑한 속을 드러내고 있는 반찬통들, 숟가락, 젓가락들. 경품으로 받은 지 수년째 본래의 역할을 해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쟁반들. (좋은데 보내주면 누군가 유용하게 쓸 텐데요. 어머니?) 녹은 초콜릿과 커피 사탕, 이쑤시개, 명함들의 무덤이 되어버린 핸드백. 모든 것을 버리는 날 우리 가족 역사의 기념일로 정할 것이다.


지금은 그저 몰래몰래 조금씩 모아 버리는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엄마의 기억력이 좋았다면 우리는 숨 쉴 틈도 없는 물건들 속에서 흐느껴야 했겠지만 하나님은 역시 하나의 문이 닫힐 때 다른 쪽 문을 열어두셨다. 엄마의 기억력을 자녀들보다 조금 낮게 하시어 탈출구를 찾게 하셨다.



엄마의 수집벽(최대한 점잖게 표현해본다.)에는 경계가 없다. 나에게도 수시로 던져준 두툼한 잠옷이 대여섯 세트 있다. 옷장이 잠옷을 토해내기 직전이다. 과하다. 버리지 못하는 엄마와 몰래 버리는 우리 사이의 은밀한 알력싸움이 오늘 신들의 집이라 불릴 우리 집에서 벌어진다.


어젯밤, 거실에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심상치 않은 소리에 깼다. 범인을 찾을 필요도 없다.


엄마! 이거 뭐야! 또 흘렸잖아!!!
뭐가!


엄마는 큰 소리를 쳐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이미 한번 밀봉이 덜된 채로 바닥에 엎어져 대참사를 불렀던 그것. 자세한 묘사는 좋지 않은 기억을 불러오기 때문에 생략하는 것이 좋겠다. 결론적으로 개복숭아 1차 사건이 있던 날 엄마는 최근 몇 년 사이 처음으로 동생이에게 여러 차례 겸손한 사과를 해야 했고 '우리 딸'이라는 다정한 어휘를 사용하기까지 했다. 나는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동생이를 카페로 불러 커피와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을 바쳤었다. 그렇게 무사히 마무리된 줄 알았던 개복숭아 사건이었는데. 이렇게 역습이 찾아오 것이다.


이게 뭐야!
몰라! 친구가 준 건데 어떻게 알아!
뭔지도 모르는 걸 왜 얻어왔어!
개복숭아 진액 이랬어!



바닥에 찐득하게 흐른 진액에 벌레가 꼬이지 않을 수 없지. 동생이의 여름철 위생관리 시스템이 가동 중인 예민한 시기에 엄마가 큰 실수를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는 엄마 때문에 동생이는 분을 참지 못하고 둘의 한 밤중 말싸움이 진행 중인 것이었다. 잠이 깨지 않을 수 없는 소리였지만 계속 자는 척을 했다. 뒤척이지도 않고 가만히. 자고 있어서 다행이다.


벌써 두 번째 재앙의 원흉이 된 개복숭아 진액은 아무래도 곧 동생이 손에 쫓겨나겠지? 다행이다. 헤헤.


조금만 더 눈을 감고 있자. 엄마가 뒤처리를 끝낼 때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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