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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Sep 29. 2017

마지막 골목 세대

둥둥아, 말 타러 가자.


어제 아침과 같은 시간에 버섯머리가 나를 불렀다. 엄마는 스뎅 밥그릇을 꺼내 밥을 넣고 간장을 조르륵 붓고 마가린을 살짝 더해 슥슥 비빈 후 깨를 한 줌 뿌려 섞었다. 밥이 준비되 이불을 휘감고 바닥에 젖은 수건처럼 붙어있는 4살 딸내미를 흔들어 깨운다.


둥둥아, 버섯머리 왔다. 말 타러 가. 아저씨 가기 전에 얼른 일어나.


게슴츠레한 눈으로 밥그릇과 100원을 쥐고 내복 바람 대문을 나선다. 골목 끝까지 걸어가면 리어카 위에는 벌써 신나게 말을 타는 동네 애들이 까르르 웃고 있다. 우리 골목 애들도 몇 명 보인다. 새치기 조심하라는 버섯머리의 단속을 받으며 밥을 한 숟가락씩 퍼 먹다 보면 어느새 내 차. 밥그릇을 소중히 받쳐 들고 말 위에 올라타자 잠시 멈췄던 동요가 다시 울린다. 녹슨 용수철이 팽팽해지도록 힘차게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말을 타는 동안 잠이 홀딱 깬다. 힘찬 숟가락질로 엄마가 비벼준 밥도 먹는다. 제발  오래오래 태워주면 좋겠는데 아저씨는 요만큼도 더하지 않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혹은 그보다 빨리) 카세트 플레이어를 띡 꺼버리고 아이들을 재촉한다.


빨리 내려. 빨리빨리!


좀 더 태워달라고 조르는 애들더 크게 호통을 친다. 나는 가장 먼저 겁을 먹고 내리는 그룹에 섞여있다. 오늘도 활기찬 말 타기 운동으로 아침을 열었다. 윤기가 샤르르 도는 빈 밥그릇을 들고 집으로 간다. 앞섶을 홀딱 적시는 양치와 세수를 하면 비로소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이다. 버섯머리와 다시 만나 골목을 걷기 하자마자 담벼락에 붙은 화 걸음을 잡는다. 꽃잎에 앉은 빨갛고 귀여운 무당벌레를 조심스레 손바닥에 옮겨 빤히 쳐다본다. 잠깐 사이 녀석이 노란 오줌을 싸고 파드닥 날아간다. 오줌은 더럽지만 무당벌레 오줌은 괜찮은 거 같다. 골목 반대편으로 돌아가면 나와 친구들의 단골 샐비어 꽃 화단이 있다. 아이들이랑 땅따먹기 하다가 내 차례를 기다리기 심심하면 샐비어를 꺾어 달달한 꿀을 빨아먹곤 했다. (엄청나게 오래된 것 같은데 엄청나게 오래된 것이 맞다. 80년대 중반이다.) 나는 땅따먹기나 망까기 등의 놀이에 특히 약했다. 일찍 죽고 선 밖에 서서 버섯머리의 승리를 응원하는 일이 익숙했다. 응원하다 지루하면 샐비어를 남들보다 더 많이 따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동네엔 화단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 동네에는 꽃마을이란 애칭이 붙었다. 우리 집 앞에는 주먹만 한 장미가 자랐고, 바로 옆집으로 가면 버섯머리가 심은 수박이 자라고 있었다.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 소꿉놀이를 하는 계집애들 사이에서도 나는 분별력이 부족했다. 이번에도 버섯머리가 나를 주시하며 단속하곤 했다.


둥둥아. 화단에 가서 풀 좀 따와. 내가 수박 심은 거 있으니까 조심해서 따와. 수박 따면 안 돼. 응? 알았지? 수박잎이 어떻게 생겼냐면....


버섯머리가 유치원 선생님처럼 진지하게 말해서 나는 긴장했다. ‘수박 따지 말고, 풀 따기. 풀 따고 수박 따지 말기. 조심해서.’ 속으로 되새김질을 한 후에 풀을 한 줌 따와 내밀었다.


수박 안 따왔지?
응.


돌멩이로 내가 따온 풀을 빻아서 반찬을 만들었다. 깨진 돌가루가 손가락에 허옇게 묻어나는 게 싫으면서도 소꿉놀이가 재미있었다. 풀을 빻을 때 봉숭아 반죽처럼 초록물이 나는 덩어리가 생기면 왠지 어른스러운 놀이를 한 것 같았다. 돌로 빻는 일도 버섯머리가 주도하고 나는 안전하게 버섯머리의 주의사항을 지키며 따랐다. 안타깝게도 그날 곱게 빻은 것은 버섯머리가 애지중지 키우던 수박 잎이었다. 분명히 골라서 뽑았는데 그렇게 되었다. 버섯머리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 그 풀이 수박잎이라는 걸 나는 모르고 10년을 넘게 살았다.


우리 골목에는 또래 친구가 열 명쯤 있었다. 골목 입구의 라면머리 형제는 소방차 춤을 연습하느라 한동안 골목에 나오질 않았다. 버섯머리와 우리 집엔 각각 한 집씩 세 들어 사는 가족이 있었고 남자애가 하나씩 있었다. 앞집엔 표씨 성을 가진 여자애가 살았고 그 옆집엔 딸 부잣집 세 자매가  살았다. 그 옆집엔 앞니 빠진 동갑내기 남자애가 살았다. 버섯머리와 버섯머리의 동생 꿀꿀이까지 애들이 바글바글한 골목이었다. 아침엔 말 타기, 저녁엔 슈퍼맨 놀이하느라 밥은 모두 골목에서 먹었다. 집에 있는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엄마가 비벼준 밥그릇을 들고 골목으로 나가면 이미 보자기 두른 꼬맹이들이 와글와글했다.


골목에서 우리의 첫 번째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땅따먹기를 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로 편을 가르고, 술래잡기를 하며 엄마들이 함께 만든 호박 빵을 나눠 먹었다. A면 1번 노래가 메칸더 브이 주제곡이었던 동요테이프를 리어카에서 단체로 사고 조립 로봇을 만들었고 가을무렵엔 잠자리 싸움을 했다. 본격적인 세상으로 나가기 전 아직은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골목은 아이들을 품고 키우는 공동의 공간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마지막 골목 세대로 자랐다. 9살 무렵 꽃마을이 있던 주택지역 반대쪽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우리 반에도 그 아파트에 사는 애들이 많아졌다. 종례시간엔 선생님의 당부가 더해졌다.


우성 아파트로 가는 친구들은 찻길 조심하세요. 파란불 꼭 확인하고 뛰면 안돼요. 횡단보도에서 친구랑 장난치면 안 돼요.


전국 건설 붐의 시기였다. 전두환이 헬기를 띄워 가리킨 손끝에 부지 7만 평 규모 술의 전당이 들어서고 올림픽대교가 완공되고 분당신도시 계획이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전국 노래자랑 단골 레퍼토리인 윤수일의 아파트에서는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면 아파트가 나온다고 하는데, 우리 학교에서는 쌩쌩 달리는 승용차 숲을 가로질러야 아파트단지가 나왔다. 당연히 아이들의 크고 작은 교통사고 소식도 늘었다.


아파트 “단지”라는 개념은 새롭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련되고 낯설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갈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낯설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소풍이나 견학이 아니라 집에 갈 때도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니. 아파트 사는 친구 집에 갈 때 가장 어색한 것은 골목이 없다는 것이었다. 화단과 야트막한 담장으로 이어진 골목 대신 쭉 뻗은 직사각형 건물들이 둘러싸고 내려다보는 곳엔 주차장이 있었다. 위세 좋은 새 아파트는 위압적이고 삭막했다. 아침이면 학교까지 가는 길에 등장하는 골목에서 하나둘 아이들이 걸어 나와 행렬을 이루는 모습도 그곳엔 없었다. 골목을 지나는 동안 덜 깬 잠도 쫓아내고 아는 친구들을 만나 종알거리는 여유가 사라진 곳. 아파트 입구 바로 앞은 주차장, 그리고 큰 도로였다.


 변화는 이후 나의 출근길까지 이어진다. 사적인 공간에서 서서히 벗어나 마음을 다잡고 준비할 공간 없이 바로 광장이다. 고층 아파트가 내려다보는 주차장에 선 것처럼. 갑작스럽게, 나의 방을 나서면 광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공격적인 아침이다. 준비 없이 내몰리는 도시의 하루가 반복된다. 철학을 갖춘 공간 구성이나 건축, 도시계획이 없었던 탓에 나는 골목 없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한다. 골목에 대한 향수는 그만큼 짙어졌다. 연남동, 연희동, 망원동, 익선동. 비슷한 향수 때문에 사람들은 골목을 찾아다니는 것 아닐까.


가려진 틈, 비밀이 남겨진 곳. 적나라함이 없는 곳. 아이들의 함성이 몰려다니고  대문단속이 엄격하지 않은 곳. 시간이 꼬리를 빼고 느리게 기우는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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