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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재희 Dec 10. 2018

호주여행잡담기

‘주머니 속 마트영수증’ 에서는 하지 못한 진짜 여행이야기.

진짜 호주여행잡담기.


‘주머니 속 마트영수증’이라는 호주여행잡담기 책을 만들었다. 매일 주머니 속에 쌓인 마트 영수증이 모여 호주 여행이 되었다. 주머니 속 영수증 일기가 아닌, 진짜 호주 여행기를 이곳에 써보려 한다.


책에 표지로 사용된 호주 동쪽 선샤인 코스트에 위치한 누사 해변을 다녀온 여행기로 진짜 호주여행잡담기를 시작한다.



‘주머니 속 마트영수증’ 표지


‘주머니 속 마트영수증’ 표지에 사용된 사진은 브리즈번에서 3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하는 ‘누사 해변(Noosa)’이다. 호주 동쪽 ‘선샤인 코스트’라는 곳에 위치한 해변이다. 이곳에 가기 전 ‘바이런베이’와 ‘누사’를 두고 고심했지만, 사촌동생도 가보지 않았고 검색 창에 나오는 -때 묻지 않은 아름다운 해변-이라는 소개가 마음에 들어 이곳을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원래가 해변을 잘 아는 편이 아니다. 생각해보니 해외여행 중엔 해변을 가본 적도 없을뿐더러 한국에서도 많은 해변을 다녀온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해변 이름이 고작 광안리, 해운대, 안목해변, 경포대, 을왕리 정도였다. 최소 20년 전, 입을 모아 부르던 동요 속 초록빛 바닷물은 태어나서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파랗지 않은 바닷물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부터 의심이 가는 시간들을 보냈는데 익숙한 해변 이름들 사이로 ‘누사’가 들어서는 순간 왠지 모를 확신이 들었다. 이번에는 초록빛 바닷물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 이미 ‘누사’라는 이국적인 이름만으로 충분히 기대가 컸다.
 
출발하기 전 사촌동생이 보여준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커다란 바위 사이 자연스레 생겨난 수영장 사진이었다. 그 속에서 유유자적 발장구를 치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그 속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에 빠질 준비를 단단히 하고 차에 올라탔다. 물에 빠질 단단한 준비라고는 머리를 감지 않고, 크록스를 신고 가는 것이었다.
 
3시간 정도 가는 길 중간에 ‘몬트빌(Montville)’에 들렸다. 부드러운 초록빛 능선들을 바라보며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호주식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뭉게구름이 순간순간 만들어내는 구름 그림자가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했다.
 

제라드 전망대에서



호주식 아이스커피! 아이스크림이 올라가있다.


굽이굽이 능선들을 타고 가다 보니 어느덧 지평선이 끝나고 수평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과 맞닿은 바닷물 색이 초록빛으로 반짝였다. 선글라스를 벗고 눈부신 바닷물을 바라봤다. 두 손을 담그면 정말 초록빛으로 물들 것 같았다.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은 후 수건을 챙겨 크록스에 발을 끼워 넣고, 가볍게 차에서 뛰어내렸다. 동생이 보여준 사진 속 그 장소로 가기 위해 구글맵을 켰더니 해안산책로로 들어서야 했다. 생각보다 한참을 가야 한다며 사촌동생은 죽상이 되어, 나의 눈치를 살폈다. 나도 눈치를 살피긴 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가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가기로 결정했고 기나 긴 산책로 입구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길은 점점 산책로에서 그냥 산으로 변했고 날씨는 점점 더 뜨거워졌다. 감지 않은 내 머리는 점점 떡을 만들어냈으며 가볍던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이 길은 애초에 크록스로는 말도 안 되는 길이었다. 글을 쓰면서도 땀이 날 것 같은 길이었지만, 멈출 수 없던 이유가 있는데 왼쪽으로 보이는 길게 늘어진 ‘누사’의 아름다운 해변 때문이었다. 날씨도 좋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았더라도 매우 아름다웠을 해변이었다. 옛날에 천국을 상상하면 떠올릴만한 그런 이미지였다. 사진을 많이 찍지 않는 내가 그 힘든 길을 다니는 와중에 참 많은 사진을 찍었었다. 찍으면서도 담기지 않는 자연의 자연스러움이 아쉬웠다. 가는 길이 꽤 길었고, 돌아가야 할 것이 암담하기도 했는데 이런 풍경을 한번 더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꽤 많이 좋았다.
 

초록빛 물에 두손을 담그면~



이글거리며 타 들어갈 것 같은 검은 돌 위를 맨발로 내려가서야 사진 속 자연 수영장을 발견했다. 우리 동네 약수탕의 온탕 정도 크기였다. 이미 사람도 많았고, 옆에 조신하게 앉아 5분여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다시 돌아가기 위해 수영장에서 산책로로 올라오는 길, 발바닥이 너무 뜨거워서 고개를 들었을 때 찍은 사진이 ‘주머니 속 마트영수증’의 표지가 됐다. 칼라인쇄를 할까도 심히 고려할 만큼 그 순간의 색이 예뻤는데, 여기가 어디냐는 질문을 받기 위해서라도 흑백으로 인쇄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그 질문은 많이 받지 못했다. 책이 그 질문을 받을 만큼 인기가 없어서.)
 
다시 차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사촌동생에게 장난으로 “우리는 오늘 해변을 온 것이 아니라 산을 온 거지?”라고 했는데, 소심한 사촌동생은 장난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다. 눈치가 부족한 나는 “그러게, 미안해”라는 소리를 듣고서야 사촌동생은 장난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내 책의 표지에 ‘누사 해변’을 넣어놓을 정도로 그곳이 좋았다.
 

‘주머니 속 마트영수증’ 표지 원본





브리즈번에서 누사 가는 길.
 
1. 제라드 전망대(Gerrards Lookout)에 들려 탁 트인 풍경을 맞이한다.
2. 몬트빌(Montville; 산 위의 마을) 정말 산 위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기념품 가게가 굉장히 많다. 기념품을 사는 것보다는 전망이 좋은 카페에서 음료를 한잔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3. 누사로 가는 길은 고불고불 산을 몇 번 오르내린다. 개인여행자는 가기 어려우니 투어사에서 단체로 진행되는 여행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아니면 차를 렌트해서 움직이자.
4. 누사 국립공원 주차장에서 1시간여를 걷다 보면 페어리 풀(Fairy Pool Noosa Head)에 도착한다. 누사에서 인기 만점 스폿이지만 그곳을 가는 1시간의 산책로가 더 기억 남는다. 가는 길 왼편으로 보이는 바다와 산과 모래의 기억이 그날의 태양빛만큼 쨍! 하다.
5. 날이 좋은 날에는 주근깨가 올라올 정도로 정말 태양이 진하니 자외선 차단 지수가 높은 선크림은 필수이고, 선글라스나 모자도 챙겨주면 좋다. 호주의 태양은 상상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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