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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소울 May 21. 2021

연애란 무엇인가

- 사실은 연애보다 더 어려운, 사랑에 대한 개인적 고찰 -

요즘 내 최대 관심사는 연애다. 특이한 점은 파이팅이 넘치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 봤을 때 지금껏 내가 누구를 사랑해본 적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선 연애에 관심이 없었던 시기가 길었다. 내 사춘기는 대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왔는데 그 때 처음 관심 있는 남학생이 생겼다. 같은 학과 동기로 키가 크고 까무잡잡하고 농구를 잘했다. 지나가다가 그 친구와 마주치기를 마음속으로 내내 바라면서 캠퍼스를 열심히 걸어 다니기도 했고, 처음 갔던 학과 MT에선 그 친구 옆자리만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나름대로 그 친구 근처를 맴돌다가 어느 날엔가 결국 그 친구한테 “나는 너를 좋게 생각하는데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내용의 문자 메세지를, 고백 비슷한 걸 받게 되었는데……. 즉시 거절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린 나이였는데 웃기게도 나는 그와의 미래가 두려웠다.     


그는 술자리와 노래방을 좋아하고 수업시간에 지각을 일삼는 남자로 내 머릿속엔 매일 아침 그에게 모닝콜을 바치고, 오늘까지 꼭 과제를 해야 한다고 엄마처럼 닦달하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스무 살 밖에 안됐던 나에게 어쩐지 사랑은 무력할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때 우리가 가진 사랑의 힘을 믿을 수 없었다.     


취직을 한 후에서야 생활에 안정감이 들었다. 주변에 소개팅을 해달라고 부탁하고 소개팅을 하러 다녔다. 아주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사람은 다 만나보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엔 그 중에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면서, 내가 싫어하는 면이 없는 사람과 연애를 했다.


맨 처음 잔소리를 안 해도 될 것 같은 남자를 겨우 찾아냈을 때가 기억난다. 갈수록 그가 나보다 더 앞서가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어느 날 그가 본인의 마음보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적게 느껴져서 서운하다고 말했다.


“나는 계속 사랑을 보여주고 있었어. 네가 보고 배울거라고 생각했어.”

“미안해, 그치만 내 딴에는 열심히 하고 있는거야.”     


뭘 더 열심히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내가 그를 더 사랑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장면처럼 그에게 첫 눈에 반하지 않은 탓인 것 같기도 하고, 사랑에 빠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사랑을 과하게 포장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그가 나를 사랑해주는 일이 신기하고 고마웠지만 잘 이해되지는 않았다. 나를 많이 사랑해주는 사람 덕분에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했다. 내가 나를 충분하게 믿고 사랑하는 습관과 태도가 배어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주는 사랑만으로 사랑이 넉넉한 사람이 되기는 어렵다는 걸 지금은 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현실적으로 변해서 어릴 때처럼 사랑에 빠지기가 더욱 어렵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 큰일이 났구나’ 싶어 덜컥 불안해진다.


얼마 전에 갑자기 소개팅을 하게 됐다. 소개팅남은 내 말에 세심하게 귀 기울여주고,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나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지금까지 해 본 소개팅 중에서 가장 깊고 충만한 대화가 오갔고, 남녀노소를 떠나 좋은 대화상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만 일방적으로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매너 없는 태도이니 주의해야겠지만, 내 이야기에 진심으로 관심 가져주고 나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 경험이었다. 나의 사랑이 샘솟는 버튼이 어딘지 알게 된 것이다.     


행운은 여기까지였는지 그와는 결국 잘되지 못했지만 작은 희망이 생겼다. 내 사랑은 온 마음을 다해 풍덩 빠져버리는 종류의 사랑은 아닐테지만,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궁금해 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하루하루 적립식으로 착착 쌓여갈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어쩌면 어렸을 때 내게는 나만의 이야기가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정확히 몰랐고,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듣고 보았던 다른 사람들 삶의 단편 속에서 부유할 뿐 내 이야기들이 전혀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불안함 속에서 스스로를 믿지 못했고, 사랑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진짜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내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들려줄 수 없으니 예전에 만났던 그들은 나와 더불어 사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라고 해두겠다. 물론 그 당시의 미숙한 나를 좋아해 준 것, 나도 모르고 있던 좋은 점을 알아봐 준 것에는 너무나 감사하지만.     


언젠가 내 이야기를 궁금해해 줄, 내가 하루 하루 더 사랑할 그 사람을 위해서도 그동안 마음속에 간직해왔던 나라는 사람의 생각과 경험한 이야기들을 이렇게 글을 쓰며 하나씩 정리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나를 믿고 사랑하는 이야기가 쌓여가는 만큼 누군가를 향한 내 사랑도 점점 쌓일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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