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제아였다.

원더티처 강유라

by 원더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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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제아였다. 문제아가 된 계기는 흔했다. 생물학적 나이로 중2가 되었고, 남들보다 세게 중2병에 걸렸다. 그리고는 근묵자흑. 친구를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평준화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던 나는 원하던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하게 되었다. 내가 입학하게 된 인문계 고등학교의 별명은 외고였다. 외국어(영어) 교과서만 5권. 학교의 학습 분위기가 나를 압도했다.


우연히 문제아가 되었던 것처럼 분위기에 휩쓸려 갑자기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운동을 좋아했기에 원래부터 꿈이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체육 교사를 꿈꾸기 시작했다. 뜬구름 같던 체육교육과 진학이라는 목표가 구체화 되었고, 모의고사 영어 과목에서 39점이라는 최저점을 받던 내가 고3 모의고사에서 100점을 기록하는 180° 변한 모습을 지닌 입시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에도 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아예 탈피하진 못해서 반항기 어린 모습이 가득했었는데 그 모습을 기억하는 선생님께서 고3 담임 선생님이 되셨다. 나중에 졸업할 때쯤 말씀하시길 고3 학기 초에 내가 ‘가식’을 부리는 줄로만 알았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그런 생각을 전혀 내색하지 않으셨다. 그 외에도 나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목격한 모든 선생님들은 나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셨다. 어떠한 계기로 갑작스럽게 변한 나처럼, ‘미완성인 미성년의 학생은 언제고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게 해준 그리고 교사라면 ‘그 변화의 의지를 찾고 믿어줘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 에피소드였다.


어쨌든 나는 중학교 시절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고등학교 생활을 마쳤으며 그렇게 체육교육과에 진학했고, 평범한(?) 대학 생활 후 평범하게 체육 교사가 되었다. 경기도 중등 임용 합격을 위한 자기 성장소개서를 작성할 때, 나는 미즈타니 오사무의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라는 책에 대한 글을 제출했었다. 문제아들을 양지로 끌어올려 주는 교사의 이야기였다. 분명 그는 불통의 도사인 문제아들과 소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인간군상의 존재를 이해하고 품겠다는 마음가짐. ‘그럴 수 있지.’라는 수용적 태도. 그 당시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교육청에서 문제아 출신의 교사를 선호한다고 했었다. 문제 학생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내가 오사무 같은 교사는 못되더라도 그의 반의반만이라도 닮은 교사가 되고 싶었다.


세상 모든 곳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피력하지만 나는 진정한 소통을 이루고 있는 사람은 대체 몇이나 되는지에 대해 반문하곤 한다. 소통의 사전적 정의와는 별개로 소통의 시작은 ‘타인 이해(타인 수용)’일 것이다. 학교 안에서도 이의 부재로 갈등이 빚어지는 순간을 무수히 목격했다. 나 역시 좁은 식견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을 틀렸다고 치부하곤 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의 교육은 이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지. 그리고 교사인 나는, 이걸 어떻게 교육 속에서 실천해 나가야 할지 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2022 개정 교육과정에 협력적 소통 역량이 추가된 것은 교육 철학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서는 핵심 역량에 기존에 없던 협력적 소통 역량을 추가하였다. 다른 사람의 관점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가운데 제 생각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며 상호 협력적인 관계에서 공동의 목적을 구현할 수 있는 인재를 기르겠다는 것. 이전의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며 존중하는 의사소통 역량을 핵심 역량으로 꼽았다. 2015 개정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중시했다면 2022 개정에서는 다른 사람의 관점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변화는 교사인 나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나는 정말 학생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가? 또, 나와 다른 세대, 다른 배경을 지닌 이들의 관점을 존중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릴 때, ‘싸우지 말라’는 말만 배웠지, 잘 화해하는 법, 이견 조율을 제대로 하는 법이 무엇인지는 배우지 못했다. 사실 나도 여전히 진정한 소통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고,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머리로는 모두 알고 있다. 다만 그걸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뿐이다. 세상은 리더십과 팔로우십에 대해 끊임없이 교육하지만 그들을 이어줄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사람에 대한 언급은 그 어디에서도 하지 않는다. 각 인간에 대한 공감적 이해를 바탕으로 상호 협력적인 관계에서 공동의 목적을 구현할 수 있는 인재. 이제는 그런 사람들에게 주목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을 그러한 어른으로 길러내려면 교사인 나부터 다른 사람의 관점을 존중하고 경청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상엔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본인의 실수를 사과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너무 많다. 문제아였던 내가 1인분의 몫을 하며 교사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듯 인간은 언제든 변할 수 있고 그 작은 계기와 순간을 큰 나비효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단 1명의 주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어른일 때 원 케어링 어덜트(One Caring Adult)가 되는 것이다.


나와는 다른 세대를 살아가는 학생들과의 차이점을 수용하여
더 나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어른.


나는 그런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고,
학생들이 그런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이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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