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티처 서은정
오랜만에 스포츠클럽 업무를 맡아 농구 스포츠클럽의 신청서를 받았다. 여학생들은 스포츠 클럽 수업에 잘 참여하지 않는다는 말을 지겹게 들었지만 반드시 남녀 농구부는 동시에 열어야 한다고 몇 번의 언쟁을 막 끝마친 참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학생들의 신청자는 고작 4명이고 출석한 인원은 2명뿐이었다. 농구 경기를 위해 5명의 인원이 필요한데 백여명이 넘는 초등학생 5-6학년 여학생의 인원을 생각하면 굉장히 초라한 숫자다.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할 필요도 별로 없었다. 당장 나도 평소보다 한 시간 이른 출근에 피곤해하며 8시 수업을 시작하고 있으니까. 학생 시절일 때도 한 번도 체육 수업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승부를 위해 치열하게 뛰어본 적 없는 여학생으로서 아침 8시 수업이 달갑지 않은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위의 이유로 여학생 농구 수업 모집을 반대하는 선생님이 계셨다. 나는 반드시 여학생을 모집해야 했지만 담당 선생님을 설득하려 노력하지는 않고 그저 모집해 달라고 부탁만 드렸다. 그리고 2명이 출석을 하자 5~6학년 담임 선생님에게 부디 여학생들을 꼬셔 달라는 메시지를 드렸다. 참여하는 학생들이 1~2명 뿐일지라도 여학생 농구 수업을 해야 했다. 농구 수업 신청을 위해 나를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주겠노라 공언하였으나 사실 내가 간식을 들고 찾아가는 대상은 농구 수업을 홍보해 주는 담임 선생님에게 사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건 마치 내가 체육 교육을 문해력과 비슷한 수준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글을 못 읽는 사람이 모든 현대 사회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듯, 체력이 약한 사람이 8시간 이상 노동하는 산업화된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 전기, 재화와 같은 자원분배로서 기초교육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체육 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이해할 수 있겠는가? 돈을 예로 들어보자. 금전은 모두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돈에 대한 욕심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장담컨대 부유한 사람들이 훨씬 금품에 대한 욕심과 집착이 강할 것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재화는 필요하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특히 반드시 기본 인권을 위해 필요하다. 타고난 불평등이 실존한다고 인정한다면, 태어날 때 금수저가 있듯이 타고나기를 체력이 약한 아이들도 있다. 키가 작고, 체격이 작으며,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다. 모두 체육을 하기 부적합한 요소들을 빠짐없이 갖춘 학생들에게 체육 교육은 기초수급수당과도 같은 것이다. 무료로, 의무적으로, 주기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건강하고 체력이 좋은 사람들은 다양한 스포츠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농구뿐이겠는가? 축구, 배드민턴, 테니스 각종 다양한 분야에서 빛이 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비슷한 체격, 강인함과 근성을 탑재한 피부에, 끊임없는 노력까지 더해진 거친 손을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수명과 건강이 빈부 격차를 나타낸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는가? 더 부유한 사람들은 질 좋은 식사를 할 수 있고, 더 나은 영양과 건강한 생활을 위해 돈을 쓸 수 있다. 성인이 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라. 무료로 설치된 수많은 공원의 운동기구들보다는 대부분 날씨와 계절에 영향을 받지 않고 운동할 수 있는 실내 체육시설, 횟수당 돈을 지불하는 스포츠 레슨, 스포츠 종목에 알맞은 시설을 빌리기 위한 시설이 필요하다. 우리가 건강을 위해 지불하는 수업료를 생각하지 않고 과연 우리는 건강을 구매할 수 있는가?
그러니 성인 체육을 위해서 이미 산업의 일부로 자리 잡은 스포츠 산업에 대한 보편적 복지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의무교육이 실행되는 교육계에서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하고, 의욕을 느끼지도 못하는 여학생을 위하여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로서 체육 교육을 말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어린 학생들은 운동이 필요 없을 정도로 건강하다. 딱히 잔병치레도 적을 확률이 높다. 오히려 운동이 서툰 여학생들은 달리다가, 공에 맞아서, 친구와 부딪혀서 다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육 교육을 어떻게든 여학생에게 제공해야 한다. 키가 작고, 연약하고, 의욕이 없는 여학생에게 근육이 있다면, 그리고 그걸 올바로 사용할 수 있다면 더 오래 공부할 수 있고, 더 매사에 의욕적으로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줘야 한다. 신선한 채소를 먹어보지 못하는 학생에게 골고루 먹으라고 급식 지도를 하는 것처럼,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보충수업이 제공하는 것처럼, 더 약하고, 더 의욕이 없는 학생에게 더 강해지고, 즐거워지는 힘을 기르게 하는 것은 체육 교육을 교육 복지의 일환으로서 고려하는 것이다.
취업하지 못한 MZ 세대를 향해 더 편한 일자리를 찾기 위한 개인적인 문제라고 주장하는 말과 글에서 어떠한 부조리함을 느꼈는가? 혹시 취업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저성장 사회에 대한 상식을 가지고 있다면 현재 아이들이 얼마나 저활동의 시대를 살아가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학생들은 2~30년 전 학생들과는 성장환경이 다르다. 우선 대부분의 동선을 차량이 함께하며 열심히 야외 활동을 하지 않는다. 실내에서 안전하게 앉아 있으며 스마트폰을 보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현재 교사가 된 사람들이 받았던 교육환경과 달리 체육의 중요성이 전혀 와닿지 않는 교육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운동을 위해 땀 흘려 본 적 없고, 승부를 위해 노력해 본 적이 없고, 공동체 팀원과 협력해보지 않은 학생에게 체육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더하여 어린 시절, 부상을 두려워하며 최소한의 체육 교육 아래 성장한 학생들의 미래 건강 상태를 장기적으로 고려한다면, 여학생을 위한 체육 교육이 보편적 복지정책처럼 더 많은 배려와 기회 속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임을 주장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