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 교육의 우선순위를 생각하며
출판계에 몸 담았을 시절, 새로운 플랫폼으로 재밌고 쉽게 효과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것을 구닥다리 종이책으로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있겠냐는 이야기가 한창이었을 때. 그때 뭐라고 바로 반박할 수 없었던 탓인지 오랫동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다녔다.
아날로그가 주는 감성? 상상력의 확장? 정서적 고양? 같은 걸로는 마치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는 위대한 것이니 소중히 보존해야 한다는 교과서식의 설득력으로밖에 안 느껴졌다. 그러다 가장 와닿는 효용성을 찾아냈다. 책을 효과적인 툴인가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다. 읽는 행위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는 것이니까.
서서 돌아다니면서는 할 수 없고 앉아서, 글자를 좇아가며 머릿속 근육 세포들을 종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의미를 해독하고 상상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이 떠먹여 주지 않는 자발적인 행위고 인내심도 필요하다.
자기 절제 훈련이면서 생각하는 근력을 키우는 일종의 운동이다. 그러고 보면 이것이 공부하는 행위의 에센스 아닌가 싶다.
영유아 교육 콘텐츠 중 가장 많은 논쟁을 부르는 것이 있다면 바로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것이 가치 있느냐?'인데, 영어유치원을 다니며 겪은 영어적 환경이 이후에 이어지기 힘들다는 것이 회의론자들의 공통 의견이다. 그리하여 집안에서 영어적 환경을 만들어주거나 유학을 갈 것이 아니라면 일찌감치 영어 교육을 강화하는 사립초등학교에 보내려고들 한다.
그런데 모 교육 관련 인터뷰를 보니, 사립초등학교에 오래 재직한 선생님이 그러신다. "초등 1, 2학년 때는 확실히 영유 출신들이 분위기를 주도하는데 3학년 올라가면 결국 독서 체력 좋은 친구들이 따라잡습니다."
사실 그 어떤 교육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도 결론은 깔때기다. <생로병사의 비밀>의 왕도가 '운동하라!'인 것처럼 공부의 왕도는 결국 '독서하라!'다. 몸을 움직여 필요한 근육들을 강화시키고 그래서 웬만한 외부적 충격과 질병에도 버틸 능력을 만드는 것처럼 독서 역시 그런 것이다.
그리하여.. 고망이에게 가장 길러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로 독서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책을 고르고 펼쳐 가만히 집중해 읽어내고 의미를 파악하고 자신의 생각을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기까지 하다면 그걸로 학문 교육은 충분할 것 같다. 결국은 리터러시가 핵심인 셈이다.
고망이는 현재 어떤가? 책에 대한 관심은 있는 편이라 생각된다. TV라는 세계를 만난 후에는 확실히 줄긴 했지만 그래도 즐겨 읽는 책이 있고 도서관 가는 것도 좋아한다.
어린이집에서는 더 잘 읽는 모양이다. 상담 때마다 선생님이 독서를 좋아한다고 평하는데 내가 보기엔 친구들하고 어울리기 어려우면 그냥 책이나 읽자 싶어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좀 짠하지만 독서를 하는 욕구에는 어딘가의 결핍이 동기 부여가 된다고 본다.
다만 식성처럼 독서도 편식이 심하다. 쉽사리 새로운 책을 펼치려 들지 않고 자신의 관심사나 어떠한 이유(확실히 알 수 없는)로 강렬히 호감을 느낀 책만 되풀이해 본다. 좋아하는 몇몇 책은 정말 너덜너덜해졌고 애착 인형처럼 껴안고 자기도 한다. 나의 책 영업은 번번이 실패한다. 특히 도서관에 가면 운명적인 만남이 없을까 열심히 뒤져서 들이밀지만 너무하다 싶게 퇴짜를 놓는다. 그래서 이제 포기했다.
가아끔 영업에 성공한 책은 내가 모노드라마 수준으로 연기해서 웃기는 경우다. 그리고 배를 깔고 어깨를 서로 기댄 채 도란도란 읽거나 연극하듯 주거니 받거니 읽는(하도 읽어서 대화 같은 건 대충 외움) 등. 생각해 보니 엄마와 따뜻하고 즐거운 시간이 녹아 있는 책이라면 그 편협하고 좁은 틈을 내어주었던 것 같다.
답은 나왔다. 나는 앞으로 몇 년간은 광대가 되는 걸 불사하고 책으로 놀아줄 생각이다. 그러면서 절대 다양하게 많이 읽는 것을 종용하지 않으며(굉장히 어려움) 책 읽는 모습도 종종 보여주려 한다. 마음 좋은 지인이 폰 중독 J를 위해 책 읽는 것을 위장해 볼 수 있는 핸드폰 커버 장치를 선물로 주기도 했으니 난독증 J에겐 적극 이용하게 해야지. 언젠가 카페에서 각자의 책을 읽으며 차 한잔 하는 달콤한 시간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