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외과에서의 망상

AI 시대를 살아가며

by 펑예

요즘 고질적인 오른쪽 어깨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정형외과를 다니고 있다.

진료를 기다리며 문득 정형외과 풍경을 가만히 지켜봤다.


진료 접수를 받고 예약과 수납 처리, 각종 서류를 떼주는 원무과 직원들,

엑스레이를 찍는 방사선사,

진료실과 엑스레이, 물리치료실로의 이동을 도와주고 치료를 보조해주는 간호사,

진단을 내리고 치료 방침을 제안하고 인대 쪽 염증을 풀기 위해 신경치료를 진행하는 의사,

수기, 물리치료를 돕는 물리치료사.


먼 미래, 어쩌면 생각보다 금세 올 미래에 이들 자리로 AI가 들어온다?


우선 병원에 들어서면 키오스크 앞으로 가야 한다. 물론 진화된 AI 키오스크다. 지문 인식으로 신분 확인 및 건강 정보, 진료 이력이 접수되고 진료 순번이 정해진다.


진료복을 입고 대기하다가 호명하면 진료실로 들어선다. 거대한 바디 스캔 기계가 있다. 몸을 잘 맞춰 넣고 통증이 있는 부위의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그 부위를 중심으로 스캔이 이뤄지며 엑스레이, 초음파촬영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한꺼번에 진행된다. 화면으로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얼굴이 나와 이렇게 말한다.


"우측 어깨 인대가 장기간 손상되어 생긴 염증이 발견되었습니다. 최소 1~2주간 3번의 신경치료를 받고 어깨를 많이 쓰는 활동을 자제하세요. 첫 번째 신경 주사 치료 시작할게요. 열중쉬어 자세를 취해주세요. 1분 후 주사 바늘이 들어갑니다. 주사 바늘 들어갈 때 살짝 따끔해요."


곧바로 로봇 팔이 나타나 주사를 어깨에 정확하게 놓는다. 이 모든 것이 10분 안에 끝난다.


환복 후 데스크 키오스크로 가면 이미 내 금융 정보 확인 동의로 연결된 스테이블 코인 결제가 완료되어 있다.

폰에 전송된 처방전과 각종 영수증, 다음 진료 일자를 확인한다.


여기서 최소한 누구는 있어야 할까? 죄송하지만 원무과 직원들, 방사선사, 의사 선생님들 탈락. 역시 간호사 선생님은 필요할 것 같다. 기계에서 기계로 이동하는 동선을 무리 없이 이끌어주고 진료받고 치료받는다는 긴장을 풀어줄 사람. 갖가지 이유로 기계 사용에 컴플레인을 곧잘 거는 어르신들(정형외과의 단골층)을 다룰 사람은 간호사 선생님뿐이다.


이런 망상이 끝나고 치료를 받은 후 원무과로 갔다.


"물리치료받을 시간 되시나요?"


원무과 선생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물리치료실로 갔다. 그러고 보니 물리치료실은 일종의 서비스 공간이다. 피부과라면 에스테틱 룸. 그런데 정형외과 가서 물리치료 안 받고 오면 어떤가? 얼굴 레이저로 지지고 마사지 안 받으면?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베드 위에 엎드려 보란다. 타이 마사지 베드처럼 얼굴이 눌러지지 않게 구멍을 뚫어놓은 베드다. 미처 준비 못한 사이 수기 치료가 들어왔다. 뭉친 승모근, 골반, 햄스트링, 종아리를 하박의 뼈로 지그시 눌러주신다.


"몸이 온통 뭉쳤어요. 스트레칭 안 하십니까?"


스트레칭도 않고 되는 대로 운동한다고 뜻밖에 타박을 들었다. 타박을 들었으나 시원하긴 엄청 시원하다.


"1~2주 동안 집중적으로 와서 물리치료 받으세요. 진료 없는 날도 물리치료 받으러 왔다고 해서 오면 됩니다."


마사지 샵 한번 가야 되나 별렀던 것이 거의 2년째인데 세상에 여기 오면 되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물리치료만 받으러 온 어르신들이 여럿 대기 중이다.


"오늘도 종로 가셔?"

"아니 오늘은 시청 뒤편에서 만나기로 했어."

"술은 좀 적게 드셔요."


자주 오는 어르신들과는 거의 아들 친구, 딸 친구처럼 대화 나눈다. 의료 공간에서 저런 대화가 오고 가는 것이 신기했다. 이것이야말로 장기 단골 맞춤형 서비스라는 걸 실감한다. 따듯한 침대에서 어깨를 지지고 전신 물침대 마사지까지 받으며 생각했다. 물리치료사도 대체는 어렵겠다.


그런 의미에서 고객과 친밀한 교류를 나누는 직종은 일단 안전하겠다. 다행히 셰프도 이쪽에 속한다. 특히 오마카세 셰프는 손님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이 서비스 만족도에 직결되는 업이라 아무리 지능형 AI가 와도(고지능과 상관도 없고) 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술도 한잔 같이 마셔야 하는데? 게다가 로봇이 쥐는 스시를 먹고 싶어할 사람은 별로 없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를 J와 한차례 나누다가 배관공, 설비 기사도 안전권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게. 아마존, 쿠팡 등의 물류 일은 AI로봇이 꽤 해내고 있는 듯 하지만 변기에 걸린 걸 뚫어주고 누수를 탐지해 해결하고 줄눈 시공하는 AI, 유연한 피지컬 AI는 상대적으로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올해 CES에서 화제였다는 LG전자의 가사 로봇 클로이드도 집안일 수행을 꽤 하더라만 이것이 로봇 켜느니 내가 하고 말지가 안 될 정도로, 로봇 청소기 들이듯 일반 가정에서 들일 수 있을 정도의 가격대로 낮춰지는 게 금방 가능할까?


여하튼 사람들이 줄줄이 해고되고 신입 채용 더 이상 안 한다고 선언한 기업들이 등장하는 걸 보면 생각보다 산업혁명은 급속히 진행 중이다.

일론 머스크가 최근 토크쇼에서 한국인들이 들으면 좀 불쾌할 소리를 여러 번 했다고 생각되는데 저출산률 보면 답이 딱 나온다는 둥, 북한이 걸어들어가면 된다는 둥, 의대 보내지 말라는 둥... 그리고 이 얘길 했다. 모두가 불로소득자가 될 거라고. 이건 자본을 독식하고 있는 기업가 놈들의 의견이라 장밋빛 꿈의 혜택 역시 소수의 자산가들에게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행히 정치적으로 잘 풀어서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나아진다 쳐도 직업은 가질 수 없고 집안일은 할 필요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사람들 대부분이 은퇴자의 삶 그 비슷한 모습이라면, 그런데 수명은 또 길어?


<은퇴 권하는 사회><일 없는 장수는 공포다><의미 있는 일을 찾아서><시간 과잉><의미 생산 능력> 이런 책들이 도서관 서가를 장식할 것 같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그만 멈춰야겠다. 답도 없고 망했다는 기분만 드니까. 잠이나 한숨 자자.



5752a2f76ca86435605739ade38de469.jpg 존재가 사라졌다는 느낌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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