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유난히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 같다. 그 느낌과 더불어 묻는 말에 대답도 안 나온다. 피하거나 딴 소리를 하거나 생각이 안 난다고 한다. 고망이 안의 그 사회성이란 놈이 겨울잠을 잘 시기가 와선가. 요 며칠 저녁마다 출근하느라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그런가. 미디어 시청이 너무 잦았나. 성장의 침체기인가.
침대에 같이 누워서는 그런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울적한 기분이 되어 그저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요녀석 샐쭉한 표정으로 뭐라 중얼거리다가 내 목을 끌어안고 볼을 부비며 그런다.
"생각이 안 나요. 재촉하지 마세요."
재촉? 고급진 표현을 쓰네. 여전히 눈을 마주치려 들진 않지만 적절한 말이긴 하다.
그래서 오늘 있었던 일을 듣는 걸 포기하고 내가 오후에 했던 일을 들려주었다.
"청이(자동차)가 아파서 병원에 갔었어. 바퀴에 바람이 빠졌거든. 심한 건 아니고. 바람이 풍선처럼 빠지면 납작해져서 사고가 날 수도 있거든. 그래서 금방 바람 넣고 고치고 왔어. 그리고 점심때 카레 만들어서 아빠랑 먹었어."
물론 딴 소리도 하고 별로 열심히 듣는 눈치가 아니다. 그래도 어쨌든 엄마가 더 이상 재촉하지 않는다는 건 알아주겠지.
걱정과 불안의 마수에 너무 쉽게 휘어 잡힌다. 정말 아무 소용없는 건데. 아이들은 신비한 존재라 그날그날이 너무 다른 건데 혼자 검은 연기를 피어올려 이상한 그림들을 그려내고는 거기에 사로잡혀 덜덜 떤다. 안다, 안다고.
요즘 한국소설을 즐겨 읽는데 공현진 작가의 단편 <권능>에 이런 대목을 봤다.
"예상을 벗어난다는 것은 해명되지 않는 꼬리의 잔상과도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뱀, 누군가에게는 쥐, 곡선으로 사라지는 꼬리들. 본 것이 분명하지 않아도 소름 끼치는 감각만은 우리를 파고든다."
저자의 의도와는 다를지 모르지만 나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이미지화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본 것이 분명하지 않은데도, 어쩌면 그래서 더욱 소름 끼치는 감각.
불안은 애초에 생명에 대한 위협에서 나온 감정이고 그래서 많은 심리, 행동 문제의 핵심 기제기도 하다. 나는 고망이 연구자이므로 아이들이 겪는 불가사의한 불편함과 행동도 따지고 보면 상당수 불안이라는 정서 때문이라는 걸 듣고 배우고 확인했다. 그래서 우리 어른들은 엄마 자궁처럼 따뜻하게 자꾸 안아주며 괜찮다고 해줘야 한다. 부모의 위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다? 세상이 얼마나 전쟁터 같을까.
평소 좀 느긋하고 낙천적인 편이라 생각했는데 고망이를 품고부터는 이 '불안'이라는 꼬리의 잔상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던 것 같다. 임신 기간 내내 심장소리가 갑자기 안 들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을 시작으로 선천적으로 문제를 안고 태어나면 어쩌나, 발달 문제를 안고부터는 제대로 성장 못하면 어쩌나 친구들과 소통하지 못하면 어쩌나. 위에서처럼 다짐을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이젠 나의 분신과 같은 존재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초등학교라는 정글을 잘 헤쳐나가 적응할지에 대한 불안을 뱃속 저 아래 묻어둔 채 새로 시작한 태권도장에서 잘 놀다 안전하게 귀가할까 하는 등의 일상의 불안들을 안고 일희일비하는 중이다. 형체는 희미하지만 덩치는 더 큰 불안으로는 AI 시대를 잘 살아나갈 수 있을까. 성인으로서 이 혹독한 세상을 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것도 있다. 세상이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하고 위안을 주는 요소들은 사라져 가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실체 없는 불안으로 종종 예민한 고망이지만 요즘 실체 있는 불안 하나가 생겼다. 바로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다. 지난달 시이모부님 상으로 우리가 새벽에 장례식을 다녀와서 한 이야기가 발단이 되었다. 얼굴도 본 일 없는 이모할아버지지만 "하늘나라로 가셨다. 너무 먼 곳이라 한번 가면 이젠 한참 보기 힘들어"라는 말이 강렬하게 남았던 모양이다. 그다음 날 고망이는 골똘한 얼굴로 물었다.
"엄마 아빠도 하늘나라 가요? 나도 가요?"
"응, 한~참 후에."
"우리 같이 가요?"
"일단 우리부터 가고 고망이는 한참 후에 와야지." 이 말은 실수였다. 고망이의 불안을 단단히 자극해버린 것이다. 금세 울상이 되어서는 "왜 같이 안 가요?? 왜요??" 눈물 바람. 나는 황급히 실제로 그러길 원하지는 않지만 달램용으로 말했다.
"그래 같이 가자. 같이 가지 뭐."
그제야 안심한 눈치다. 하지만 하루에 한 번은 "몇 밤 자고 가요?"라고 물었고 나는 그럴 때마다 "한참 남았어. 오조오억오천 밤."라고 말해주고 있다. 수에 밝은 아이라 실제+대충 카운트하여 현재는 오조오억사천구백팔십일곱 밤쯤까지 왔다.
그런데 말이야. 언제까지 카운트하게 될까. 언제까지 같이 하늘나라에 가고 싶을까. 그때는 너의 불안이 많이 사라져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불안이 그 자리를 차지할까. 어찌 됐건 그걸로 불안해할 건 없다. 대신 많이, 꼬~옥 안아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