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이후, 독박육아가 시작되면서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를 맺었다.
바로 미디어와.
뇌 발달을 위해 최소 두 돌까지는 참아야 한다고 한다. 나는 이 1차 관문도 버텨내지 못했다. 하필 코로나 시절이었고 독박이었고 고망이는 기고 걷기 시작하자 너무나 적극적으로 집안 이곳저곳을 탐색했다. 바깥을 나가야 피가 도는 나는 그즈음 종종 폭발 직전이 되곤 했다. 그래서 늘 곁에 있고 언제든 나와주는 뽀선생(뽀로로)을 찾았다. 뽀선생은 괜히 뽀통령이 아니라 단박에 고망이를 달래주고 시선을 빼앗아주었고 나에게 진정할 기회를 주었다.
지금도 그렇게 발을 들인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감정 주체를 못 해 아이에게 해를 끼치고 우울증에 빠지는 것보단 나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미디어 차단하고 있다!"라며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지인이 있다면 속으로 구시렁거린다. 한 번도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긴 일 없냐고. 남편, 부모님, 혹은 여유가 있어서 베이비시터한테라도 맡기고 그러니 이렇게 여기 나온 거잖아? 그런데 그들을 백 프로 믿을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을 어떻게 강제하겠느냐는 말이다.
"어제 와이프가 여행 가서 애들 보는데 오전까지는 어떻게든 버티다 도저히 안 돼서 점심 먹을 때부터 그냥 TV 틀어줬어."
"그걸 왜 참아? 나는 와이프 공항 떠나는 순간 돌아오는 길로 바로 보여줘. 야, 누가 우리 키웠냐? TV가 키웠잖아, 안 그래?"
가게에 온 남자 손님들의 대화에서도 나는 확인했다. 그 유혹을 누가 견뎌내겠나, 엄마도 힘든데.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맡길 때는 마음을 비우고 그런다.
"TV 틀어줘요. 대신 핸드폰은 보여주지 말고요. 아무거나 깔아서 고장내니까."
핸드폰이라도 안 보여주면 다행이다.
이것은 굉장한 합리화인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 손님의 말처럼 나도 TV 많이 봤다.(그런 기억이 있다) 그런데 별 이상 없이 자랐잖아? 미디어 많이 보는 친구 아들내미들도 기관 생활 잘하고 사회성도 좋아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원하게 보여주기엔 무서운 면이 많은 것은 확실하다.
유아기에는 특히 상호작용할 시간을 빼앗아 버린다는 게 문제가 된다. 10분 보여준다는 게 30분이 되고 1시간이 되는 건 아주 금방이다. 상호작용 이슈가 있는 고망이는 그래서 보여주게 되면 시간을 제한하려고 애를 많이 썼고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취학을 앞두고 심각하게 다가오는 점은 '잘 못 견디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미디어가 한껏 도파민을 자극해놓았기 때문에 그 외의 상황엔 쉽게 지루함을 느끼고 그걸 견뎌내질 못한다.
최근 화제가 된, 블라인드에 현직 초등 교사가 올린 '핸드폰과의 전쟁을 선포한다!'라는 글을 보면 미디어에 방치된 아이들은 미디어와 관련된 한정된 주제 외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 공부가 아닌 게임을 하자고 해도 관심이 없다고 한다. 교사 입장에서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싶다.
미디어 고자극이 오래 쌓인 단계를 넘어서면 이제는 외출도 거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밖에 나가서 같이 놀아준다고 해도 싫고 운동도 싫단다. 그제야 놀라서 미디어를 차단하려 들면 칭얼을 넘어 분노로 바뀐다. 특히 게임은 격한 감정을 유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 게임 차단한다고 부모한테 욕하고 폭력까지 휘두르는 심각한 케이스가 왕왕 보이는데 그건 정말이지 참담하다.
요 며칠 독감에 연이은 바이러스들로 칩거하며(또!) 매일이 미디어 실랑이였다. 실랑이를 벌여 이길 때도 있었지만 지고 말 때도 많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 기회를 이용해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간 견디는 연습을 해보고 있다.
별 거는 아니고 예를 들어 TV를 보여달라고 하면 10분 후에 보여준다고 하는 것이다. 10분만 참으면 되는 일이지만 TV를 보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혔을 때는 그 잠깐이 너무나 길게 느껴진다. 떼쓰지 않고 짜증 내지 않고 참아내면 마구 칭찬해주면서 리모콘을 넘긴다.
그리고 요즘은 말 길을 좀 알아들으니 왜 쉽게 못 보게 하는지를 계속 설명한다. 오래 보면 눈이 멀고 머리도 나빠져 숫자도 다 잊어버리게 된다고 무서운 이야기를 해준다.
눈 뜨자마자 TV 생각이 나서 칭얼거린다면 아예 시간을 정해주기도 한다. 오늘 두 번 볼 기회가 있다. 바로 9시, 18시라면서. 그리고 그 사이엔 아직 약속한 시간이 안 됐다며 그 시간까지 잘 버티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무한 설득.
아예 볼 수 없다, 씨알도 안 먹힌다고 생각하면 그제야 책을 뒤적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독서, 문해력 관련 유명 인사인 나민애 교수가 "책 읽히고 싶으면 핸드폰 사주지 말라" 더니.
Miguel Porlan <How to Break up With Your Phone>
@ The New York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