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의 책들
지난주에 유방암 검진을 받으러 전문 병원에 다녀왔다. 지난해 초, 그러니까 1년 전에 양성 종양을 제거한 전력이 있어서 종합검진 외로 정기 검진을 받는 중이다. 아는 사람은 아는, 극히 유쾌하지 않은 엑스레이 촬영을 거치고(드라마 '질투의 화신'을 참조해주세요) 초음파 검진기를 여러 번 같은 위치에 문지르는 의사 쌤을 예의주시하다 "다행히 별 이상은 없습니다"라는 말을 듣기까지 그 초조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별일 있을 확률이 극히 적어도 그렇다.)
다음은 오른쪽 어깨. 몇 주 전까지 주사치료 받아 겨우 통증이 걷힌 오른쪽 어깨가 또 아파온다. 마지막에 의사쌤이 그러셨다. 통증이 사라진 후에도 한 2주간은 조심해야 좋아질 거라고. 그래서 한 2주는 다니던 운동(요가, 발레 등 실내 운동 클래스)도 쉬었다. 그럼 뭐 하나. 집안일하고 운전하고 고망이 데리고 다니고 가게 일 보면서 오른 어깨를 안 쓸 수가 있어야지. 괜히 '내 오른팔'이라는 말이 있겠나. 그 와중엔 새끼손가락 중간 마디도 어딘가에 부딪혀 욱신 거리고 오른쪽 엄지 손가락 쪽도 뻐근. 정형외과가 왜 잘 되는지 알겠다. 동시에 체력도 급감하는지 고망이를 겨우 침대로 몬 후에는 그대로 기절 각이다. 소싯적 만취하고 기절해 잤던 모양으로 이도 못 닦고 자는 일이 생긴다.
중년에게 새해라는 것은 힘찬 도약 같은 거라기보다 스스로의 쇠함을, 더 쇠해졌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일인 걸까. 게다가 할 일은 많고 힘내서 버텨내야 할 시간이 구만리. 특히나 나이 든 엄마 티 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교차한다. 이렇게 울적해지려 할 때는 딴생각 말고 책 쇼핑이나 해야 한다.
한스 로슬링 <팩트풀니스>
빌 게이츠는 자신의 인생 책이라고 했고 내가 신뢰하는 작가 중 하나인 이동진은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해주면서 드물게 감동까지 주는 인문교양서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격이 있다면 그것은 팩트로 조지기라서 끌리기도 했다.
우리는 언론을 통해 모르는 세계를 간접 경험하게 되는데 언론이 비추는 현실이라는 것은 대게 부정적인 쪽이라는 걸 꼬집는다. 바이러스가 창궐한다는 뉴스는 관심을 받지만 말라리아가 퇴치되었다는 소식엔 댓글도 없다. 돈이 되는 기사는 부정적인 것이다. 통계학자인 저자는 통계라는 명확한 데이터를 근거로 편견과 왜곡에 치우치기 쉬운 본능과 환경을 명확히 인지하고 세계를 보라고 권하고 있다.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는 책은 늘 흥미롭다. 하지만 세상이 실제로는 좋아지고 있어, 비관하지 마! 라는 게 감동적으로 다가올는지는 모르겠다. 움베르토 에코 선생은 "Always Be skeptical!"이라고 하셔서 말이다. 하여간 끝까지 읽고 보고 판단할 계획.
공현진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순전히 제목이랑 표지 그림만 보고 충동 구매한 단편 소설집. 이건 다 봤는데 결과는 3루 안타. 23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젊은 작가 작품인데 최근 1년 내 읽은 한국 소설 중에 제일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 라이트노벨 같은 제목과 달리 대체로 KBS 단막극장 느낌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개인적으로 단막극장을 좋아했음) 신인 작가라 그런가 작품 별로 톤이 다양하고, 관계가 흥미롭고 설득력 있어서 다소 매끄럽지 못한 문장이나 흐름을 커버해주었다.
김지연 <조금 망한 사랑>
나는 망한 이야기(이야기가 망했다는 게 아니라 망한 것에 관련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이 소설도 제목 때문에 끌려 구입. 근데 작품 활동도 많이 했고 수상도 많이 한 유명 작가였다. '반려빚' '경기 지역 밖에서 사망' '유자차를 마시고 나는 쓰네' 등 수록된 단편들의 제목이, 이미 재밌다.
'포기'라는 첫 수록작만 읽었는데 한예종 출신인가? 그 언저리 동네 풍경이 나와서 옛날 생각도 나고 한예종 다닌 친구가 생각나 갑자기 안부 문자도 했다. 모두의 돈을 빌려 갑자기 잠적한 전 남자 친구에 대한 약간은 쓸쓸한 감정을 그리고 있다. 정기적으로 빚을 갚기로 하면서 그나마 안부를 확인했는데 결국은 그마저도 끊어진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말할 수 없는 그 사정은 나아졌는지를. 혹시 2000년대 초반 학번인가. 정서적, 분위기적으로 공감되는 게 있음.
최강록 <요리를 한다는 것>
흑백요리사의 빅팬은 아니지만 최강록 요리사가 매력적이라는 것은 확실히 안다. 내가 짬짬이 본 그는 외식 경영보다는 진짜 요리 자체에 감각과 센스가 있는 사람이고 최현석과 결이 다른 쪽으로 찐 방송인이다. 내향인적 호감, 그러니까 겸손하고 진솔한 듯한 애티튜드와 언변. 그리고 그 언변에서 문학적 감수성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마지막 결승편을 보지도 않았지만 책은 냅다 구입.
스즈키 유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최연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이동진 평론가 왈, "이 작가를 오랜 세월 따라다니며 읽고 싶다"
홍차를 마시던 괴테 전문 노교수가 홍차 티백 택에서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라는 괴테의 격언이라는 문장을 보게 되면서 그것의 진위 여부를 탐구하는 과정이라는데 분명히 어려울 것 같으면서도 발상이 참 흥미로워서 카트에 실었다. 이미 베스트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