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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펑예 Jun 11. 2024

슬기로운 초등생활을 위하여

<도시의 양육자>를 읽고

사실 나는 뭔가를 리뷰하는 게 힘들다. 완전히 솔직하게 쓰기 어려운 데다 잘 쓰고 싶은 욕심이 과한 건지 자기 검열이 강한 건지 어째 쓸 엄두가 안나 차일피일 미루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굳이' 예고를 한 것이다. 좀 더 의견이 생생할 때 쓰고자. 그리고 여기선 우리 아들이 요즘 자주 하는 말처럼 '내 맘대로' 써버리겠다.

이 책은 뭐랄까 내가 골랐다기보다 내게 다가온 책이었다. 구체적인 상황을 이야기해 보겠다. 친구와 한참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대한 비판과 고민을 한 차례 나누고 돌아온 날이었다. 그날 말미에 우리가 했던 이야기가 뭐였냐면, 캐나다로 이민 가자였다. 아시다시피 현실이 힘들고 타계책이 안 보이니 도피하고 싶다는, 쉽게 내지르기 좋은 레퍼토리다. 그런데 그날 밤 우연히 알라딘 사이트에 접속한 내 눈에 이 책이 들어온 거다. 양육서답지 않게 포근한 만화풍의 일러스트도 눈길을 끌었지만 제목도 바로 들어왔다. 도시의 양육자라니 내 이야기잖아? 게다가 이래라저래라는 투나 어떻게 하기로 했다는 투의 문장 형보다는 심플하게 떨어지는 제목이 또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대통령상, 시장 표창 등 화려한 상을 많이 받았다네? kind한데 soft하지는 않은 책이라는 느낌도 한몫해 더 자세히 보지도 않고 구매를 결정했다.


다음 날 책을 받아 서문을 보는데(나는 일단 서문만 먼저 보는 습관이 있다. 서문만 보고 결국 안 읽은 책도 물론 많다;) 이 구절이 눈에 뙇 들어왔다.


"많은 사람이 기존의 양육방식과 경쟁교육 해법에 지쳐 있다. 그러나 새로운 대응책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아 더욱 지친다. 아이와 함께 혹독한 경쟁에서 살아남겠다는 선택지나 행복을 찾아 먼 나라로 떠나는 극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도 작은 실천만으로 아이는 더 행복해질 수는 없는 걸까?"


뭐야, 내가 어제 한 이야기 아냐? 그래서 내게 다가온 책이라고 한 거다. 캐나다 안 가도 방법이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한데 그 아래를 보면 100%로 삶의 방식을 바꾸자는 게 아니라 5%로만 바꿔보잰다. 학교 교육을 갈아엎을 수 없으니 방과 후에라도, 주말이라도, 방학 기간만이라도 아이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경험과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수능을 폐지하지 않아도 진짜 방법이 있다고? 일단 반신반의지만 서문이 확실히 내가 고민하던 지점을 정확히 때리고 있어서 곧장 본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늘날 부모들은 뿔뿔이 흩어져 원자화되어 있다. 예전에는 부모가 아니라도 조부모, 삼촌, 이모, 그도 아니면 이웃공백을 메워주었지만 이제는 부모가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물러나야 할) 신자유주의 장막 속에 사는 우리 부모들이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양육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이다. 하교가 이른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많은 수의 엄마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학원 라이더가 되는 것은 익히 들어 아는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조차 좋은 대학에 가는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가성비 높은 교육 서비스를 요구하고 제공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이것이 저자의 현실 분석이다. 여기서부터 학교는 학교 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곳으로 전락하고, 부모는 본인들이 경제적으로 부족해 아이들을 완벽하게 키우지 못한다고 자책하고, 그 사이에서 아이들은 열패감부터 먼저 배우며 자신의 생각 한 줄 쓸 수 없는 불행에 빠져있다.


환대, 자주, 연대


저자가 이 불행의 고리를 끊기 위해 강조하는 세 가지다.

우선 환대는 무엇이냐. 저자의 말에 따르면 평가에 시달리지 않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학교와 부모, 나아가 사회가 아이에게 해줘야 한다. 그 편안함 속에서야 말로 옆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가능하고 무엇이든 깊이 소통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리고 아이 스스로의 힘을 믿고 기회를 주고 스스로 돌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핵심 메시지가 아닌가 한다. 부모의 뜻대로 대학과 학과를 정하는 것도 모자라 대학에 가서도 부모가 수강신청을 대신해 주고 취업한 회사에 클레임까지 넣어준다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저자는 초등학교 4학년, 11세가 되면 이미 어른 수준의 인지가 갖춰지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돌보는 위치에서 벗어나 자신과 동등한 입장으로 자녀를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만히 보면 그 시기가 사춘기다. 사춘기는 부모에게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폭발한다. 그때 그 자연스러운 방황을 지켜봐 주며 뭐든 스스로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전과 같이 통제 하에 두면 사이가 나빠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무력한 어린이로 자라게 된다는 것.


그렇다면 어떤 도움을 줘야 할까. 가정과 학교 밖에서 건강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도와야 한다. 그래서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변 이웃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라는 것인데 여기서 저자의 직업이 드러난다. 저자는 공릉청소년문화센터의 설립자이자 운영자로 이 센터를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본 에피소드를 펼쳐내고 있다.

이곳은 초등부터 고등까지의 청소년들이 놀고 공부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여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우선 연령층이 다양하다 보니, 가면 또래는 물론 형, 누나, 동생들과 만나서 교류할 수 있고 그들과 다양한 주제로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특장점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유기견이나 환경 문제 등의 주제를 정해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고 마을 잔치나 청소년 축제를 열기도 한단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지만 자신들이 기획하고 활동한 것이다 보니 그 과정에서 공부하고 얻는 것이 많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해결하고 이뤄낸 성공은 엄청난 유능감으로 다가온다.

듣기만 해도 '자발성' '자기주도력'이라는 것이 폭발할 것 같다. 아이들의 즐거운 활동은 마을의 활동이 되어 이웃끼리 소통하고 연대하는 기회를 만들어준다고 한다. 자기 주도, 리더십 이런 것들... 다들 길러주고 싶어 안달인 영역 아닌가.


다음은 인상적인 구절이다.


보통 교육은 아이의 강점보다 약점에 집중한다. '영어가 부족하다' '국어가 아쉽다' '수학은 실수를 줄여야 한다'는 둥 약점을 끌어올려 점수를 얻어야 한다는 논리로 이런 이야기를 주로 한다. 하지만 사람은 강점을 발견할 때 새로워진다. 작은 성공을 스스로 만들어본 아이는 부족했던 부분까지 자연스럽게 채우는 힘을 얻게 된다. 집안일이나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는 일에서도 성공의 경험이 가능하다. 맡기고 기다리고 격려해 주자.


공부도 해야 하는 모티베이션이 중요하다. 자발적으로 즐겁게 하는 것만큼 강력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난민을 주제로 한 캠프에 다녀온 주연이가 난민에게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 공부를 할 거라는 이야기를 한 대목을 봤다. 어떤 친구를 제치기 위해서라거나 1등급에 들기 위해서라는 목표는 연약하다. 하지만 경험에서 오는 '선한' 목표는 단단하다. 멋지기도 하고.


아쉬운 건, 이런 청소년 센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통령, 시장 같은 결정권자가 상을 줬다면서 왜 이러한 공간이 마련되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공공기관에 양육자 모임이라도 만들어달라고 적극적으로 제안해보라는데 이게 현실성 있는 이야긴지도 모르겠다. 동네 놀이터 관리 좀 잘해달라고 민원을 넣어도 별 변화가 없는데 말이죠. 이 책을 다들 돌려 읽고 대대적인 각성을 해서 작은 지역 사회부터 변화가 있어야 되는 건데 원자화된 개인으로서 엄두가 안 나는 일이다. 지은이 같은 분들이 많이 나와 활발히 활동하고 그런 공간이 많이 생기길 그저 기대할 수밖에 없다. 물론 개인적으로 양육에 대한 시각과 자세를 점검하는 데는 의미가 있지만.

공릉으로 이사 가야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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