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화를 좋아한다. 정확히는 좋아하게 되었고 그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과거에는 대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숨을 쉬듯 쉽게 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면 룸메이트가 있어서 자연히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했고 회사를 가면 동료들과 차를 마시고 밥이나 술을 먹으며 공적인 대화부터 사적인 대화를 수시로 했다. 그러고도 여가 시간엔 친구와 만나거나 문자, 전화로 안부를 묻고 고민거리를 나눴다. 그러니까 작정하고 주말에 잠수 타지 않는 이상 대화가 마를 날이 없었다.
그때의 나는 대화를 주도하기보다는 응하는 편이었다. 관심사에 한 해서는 신나게 떠들고 좌중을 웃기기도 했지만 사람을 대하는 데 에너지를 많이 뺏기는 타입이어선지 시간이 길어지면 집중이 되지 않고 졸렸다. 그래서 종종 집에 가서 귀와 입을 닫고 쉬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출산 후 육아 노동자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으며 드디어 대화가 마를 날이 왔다. 말 못 하는 아기와 단둘이 하루 종일 있다 보니 그야말로 입에서 단내가 나는 지경이라(이건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밤에 남편이 오면 반가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이건 뭐 맥락도 없고 횡설수설한 하소연뿐이었다. 남편은 고생했다며 듣고는 있어줬지만 그것으로는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육아는 함께하는 거라지만 본업으로 하는 입장과 본업이 따로 있는 입장은 천지 차이다 보니 감정이 격할수록 충분히 공감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커졌고 점점 영혼 없어 보이는 리액션이 나를 답답하게 했다. 그나마 일주일에 한 번씩 고망이를 같이 봐주러 오는 여동생(나에겐 다행히 여동생이 있다!)과의 대화가 대화다운 것이라 할 만했지만 그나마도 아이가 방해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떠오른 것이 동네 육아 동지들이었다. 나는 역시나 그놈에 코로나로 흔히들 말하는 '조동(조리원 동기)'이 없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 커뮤니티를 뒤져서 찾아냈다. MBTI의 I 성향이 강해 낯가림 있고 TMI를 꺼리는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전우애'라는 단어가 왜 있겠나. 힘이 들수록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만큼 위로가 되는 게 없다는 인지상정이 추진력이 되었던 것 같다.
내 이야기를 충분히 공감하며 들어줄 소중한 친구들은 안타깝게도 먼 거리에 있었고 각자의 사정으로 통화 시간을 한번 맞추는 것도 힘들었지만, 이들은 유모차 끌고 밖으로 나가면 언제든 잠깐이라도 만날 수 있는 이웃이라는 점과 동갑내기 아이를 키운다는 강력한 공감대가 있어 순식간에 내 일상의 중요한 인물들로 떠올랐다.
아이들 각양각색의 귀여움과 특기, 엄마를 힘들게 하는 점들로 처음부터 대화는 공백이 없었고, 첫째가 있는 선배님들의 리드로 유아를 데리고 가기 좋은 인근의 키카와 공원, 놀이터 등을 섭렵하게 되었다. 그런 곳에 가는 것도 함께하니 말할 것도 없이 훨씬 즐거웠다. 처음엔 사실 '내 이야기 좀 들어보소' 식으로 어떻게든 틈을 노려 고망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하지만 점점 방정맞은 입을 닫고 귀를 열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바쁘게 입을 열고 있을 때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준 선배님들처럼.
어린이집 입소 후, 내가 제일 먼저 한 것도 등하원 때 한 번씩 마주치는 엄마들과 단톡방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등원 후 티타임'을 정기적으로 주최했다. 주최했다고 거창하게 말하기엔 그저 요 앞 카페에서 시간 되시는 분들끼리 만나자고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먼저 단톡방을 만들고 티타임 자리를 매번 만드는 것을 두고 동생은 언제 그렇게 E성향이 되었냐고 놀라 했다. 동네 육아 동지들과 어린이집이 갈리면서 예전처럼 만나기가 쉽지 않아 새로운 동지들이 절실한 입장에선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역시나 만나면 나를 웃게 하는 아이의 면면-육아의 중노동-남편 험담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코스가 있다 보니 어색할 것도 없었고.
이제는 고망이와 잘 맞는 어린이집 덕분에 여유 시간이 늘어, 나는 정기적으로 전화를 돌려 지인들과 약속을 '마음껏' 잡는다. 처음엔 분위기 좋은 곳에서 브런치나 먹는 호사를 누리려는 심산이 컸지만 이제는 육아 외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욕구가 크다. 예전에는 먼저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응하는 편이었지만 이제는 주로 내가 먼저 한다. 나만 그렇게 대화가 아쉽나?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만나고 싶으면 만나자고 하는 편이 이제 편하다.
어느 날은 초등학교 학부모가 된 친구를 만나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를 듣고 교육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어느 날은 비혼 친구를 만나 채식 생활과 썸남 이야기를 듣기도 하며 또 어느 날은 옛 동료와 전시회를 보며 잊고 있던 예술적 관심사를 논하기도 한다. 본업이 각자 다른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1순위를 듣는 것이 신문을 읽는 듯 다채롭고 재미가 있다.
그리고 대화의 즐거움에 있어 상대가 아이도 예외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제 조금씩 티키타카가 되는 고망이가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한 줄 해줄 때, 갑자기 잘 가던 놀이터에 안 간다고 떼쓴 이유를 잠자리에서 말해줄 때 나는 어느 때보다 즐겁고 귀가 번쩍 뜨인다.
육아를 시작하고서는 아이 자체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아이들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눌 때도 흥미진진하다. 조그마한 머릿속에 들어있는, 짐작할 수 없는 생각과 감정들은 늘 신기하고 대견하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고서 나이 들었다는 체감이 하루가 다르게 훅훅 쨉쨉으로 들어와 무력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아이를 통해 전과 다른 시각과 마인드로 전환되고 그것으로 새로운 감정들(다행히 긍정적인)이 급격히 채워지고 있는 건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다. 이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잘 정리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또 전화를 돌려 약속을 잡아봐야겠다.
*예고: 다음 편은 최근에 읽은 육아서 <도시의 양육자>에 대한 리뷰를 중심으로 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