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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펑예 Jun 18. 2024

이 구역의 최고 반항아

까다로운 기질이의 자기조절 프로젝트1

신생아 시절부터 고망이는 울음소리의 데시벨이 남달랐다. 눈 떠서 냅다 소리를 지르곤 했는데 놀라서 달려가보면 그저 "엄마 어딨어?" 정도의 의미였고, 응급실에 가야 하나 싶게 거세게 우는 대부분의 이유는 그저 배가 좀 고파서였다. 그간 소리 지르고 울 때마다 득음할 듯 목청을 높이니 아기다운 여린 목소리는 이미 허스키하게 변해버렸다.

 

(좋게 말해) 자기 주장이 강하다는 것은 매사에 의견이 있고 의견 피력도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대체 뭘 알아서 의견이 있는 건지 종종 기가 막혔다. 예를 들면 모르는 길을 가는데 왜 자신이 방향을 정하는 건지, 관상 비슷해 보이는 음식인데 왜 어떤 건 먹어보려고도 하지 않는지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일단 감각적으로 예민하다 보니 내가 가늠하기 어려운 감각적 영향이 있을 것 같긴 하다. 시각적으로 불편하거나 매료된다든지, 촉각적으로 너무 좋거나 께름칙하다든지 하는데 내 눈에는 이유가 언뜻 안 보이겠지.


그에 더해 자기 주장이 강한 만큼 남에게 통제되는 것에 대한 반발심이 강하다. 즉 반항이 대단하다는 말이다. 분기별로 반항의 강도는 업그레이드되고 그때마다 일정 기간 씨름을 한다. 내 표현 대로라면 그 기세를 좀 눌러줘야 한동안 수그러드는데, 정말 왜 이런 기질이 있는 걸까 남편을 붙들고 몇 번이나 묻곤 한다.


두 돌 때 즘 썼던 일기를 보면 "안 해요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갑자기 늘상 하던 일을 일일이 거부하고 들었던 것이다. 세수도, 양치도, 물 마시기도, 집에 가는 것도 밖에 나가는 것도 일단 "안 해요"였다. 감정적으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 갖은 묘수를 썼던 나날이었다.

그리고 세 돌 후에는 반항심이 고차원적이고 골치 아픈 양상으로 넘어갔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아침엔 유독 고망이가 아빠한테 퉁명스럽게 굴 때가 있었는데 그날은 뭔가 좀 달랐다.

"아빠한테 뽀뽀해줘~"

"안 해요. 엄마한테만 할 거예요."

엄마한테'만'? 그런 표현은 또 처음이라 유심히 듣고 있었는데 그 다음 말에 우리 둘 다 놀라고 말았다.

"아빠는 핸드폰이나 봐요."

아침에 눈을 뜨면 핸드폰부터 들여다보는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일어났는데 아빠가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어서 토라졌어?"

"네."


그 후로 고망이는 종종 뽀로로의 친구들처럼 팔짱을 끼고 방문을 닫으며 자신이 토라졌음을 알렸다.

그 모습이 처음에는 상당히 귀여워 웃음이 났는데 점점 웃음기는 사라졌다. 우선  그 '토라짐'의 빈도가 급속히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자주도 토라졌다.

부정이나 명령 표현이 들어간다든지, 조금만 단호한 어조로 말해도 토라져서는 삐뚤어지겠다는 듯 떼를 썼다. 집에서야 '무대응'으로 일관하거나 시간을 주고 집행해 버리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 컨트롤했지만, 밖에서는 그럴 수도 없어 훈육이 너무 어려웠고 결국 버럭 하게 되었는데 그러면 수그러들긴커녕 강도가 더 세졌다.

아빠나 방문한 이모한테 토라지는 경우엔 옷을 입고 화장실 뒤처리를 하고 밥을 먹는 모든 도움을 "엄마가 해야 된다"라고 야단이었다. 혹시 이게 고도의 복수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요즘 한층 심화된 모습으로 '반항의 계절'이 돌아와 고초를 겪는 중인데 어제도 참 대단했다.


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남편이 고망이의 옷을 입혔다. 안 입는다고 실랑이하는 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에 어떻게 타협했는지 옷을 다 입고 현관으로 와 신발을 신는 고망이를 봤다. 내가 꺼내놓은 반팔 티셔츠가 아닌 긴팔 실내복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그 반팔 티셔츠는 입기 싫고 저걸 입는대."

"똑같은 면 티셔츠이고 처음 입는 옷도 아닌데 무슨 차이지?"

"그냥 내 말이 듣기 싫었던 거지."

"설마. 저 티셔츠를 평소에 좋아했던 건가."

"처음엔 바지를 가지고 왔었어. 결국 아무 생각도 없었다는 거지."

얘야, 티셔츠, 바지 입으라는 게 뭐가 맘에 안 들 일이니? 


그날 오후에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말도 없이 혼자 밖으로 나가길래 그러면 위험해서 안 된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싫어요를 연발, 결국 동네가 떠나가게 울고불고하다 지 아빠한테 끌려왔다. 나는 먼저 집으로 왔는데 두 블록 전부터 어마어마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집들이 촘촘히 모여있는 주택가, 아마 아는 사람들은 알지 않을까 싶다. 이 구역에 굉장한 반항아가 있다는 걸.


오늘 아침에도 어린이집 갈 시간인데 물감놀이를 한다고 현관에서 한참 대치를 했다. 지난주까지는 "어린이집 갈 시간이라 안돼, 엄마는 먼저 나간다"는 협박이 먹혀서 현관문을 여는 시늉을 하면 쫓아와서 신발을 신던 고망이였다. 하지만 오늘은 현관으로 쫓아 나오긴 해도 끝내 신발 신기를 거부하며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려 했다. 물감 하나만 꺼내서 찍어보고 가자고 타협안을 내놨으나 받아들이는 듯하다 또 결국은 물감을 다 꺼내놓으라고 강짜를 부렸다. 한참 울고불고를 기다리다가 요즘 즐기는 간식인 딸기 우유를 사먹고 가는 것으로 극적 타협을 보았다. 웃긴 건 그러고 나와서는 희희낙락 웃으며 등원한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까다로운 기질의 떼쓰기를 다스리는 원칙을 한번 정리해 보겠다(아마도 전문가들의 정리된 의견과 겹치겠지만).


1. 울고불고는 일정량이 있다. 웬만하면 최대한 다 해버리게 내버려 둔다. 그러면 해소되는 부분이 있어 순한 버전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2. 울고불고가 시작되면 무조건 무반응. 아무리 부드럽게 말해도 안 된다는 내용이면 도발할 뿐이다. 이성적인 설득은 전이나 후에.

3. 선택권을 주거나 본인이 제시하는 다른 제안을 웬만하면 받아들여주는 걸로 해소시켜 준다.

 

내 육아 목표가 매사 합리적인 자기 의견이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돕는다는 점에서 타고난 성정이 '자기 주장이 강한 편이라는 것은 (상당히) 부치는 점이 있더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걸핏하면 켜지고 마는 이 반항 스위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년까지 이어질 최우선 장기 프로젝트 '자기 조절'을 위한 험난하고 긴 여정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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