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펑예 Jun 25. 2024

<금쪽같은 내 새끼>에게 바란다

금쪽이 어른들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금쪽같은 내 새끼>는 일반 가정의 리얼리티 한 일상과 함께 가정을 한순간에 위태롭게 만드는 아이의 문제 상황이 등장한다. 과연 아이는 왜 그럴까. 순식간에 빠져든다. 그리고 아이와 양육자 간에 갈등이 점점 고조되어 정점을 향해 달려가다 이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싶을 때 즘 전지전능한 오은영 박사가 나타나 매직 솔루션을 제시한다. 그리고 해피엔딩.

리얼리티와 극한의 갈등, 문제 상황의 해소와 해피엔딩이라는 드라마의 흥행 공식이 다 갖춰져 있다 보니 남녀노소, 결혼 유무에 상관없이 상당수의 충성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다.


나도 출산 전부터 최근까지 꾸준한 애청자였다. 양육자로서 육아팁이나 자세는 물론 인간 심리에 대한 부분까지 많이 공부할 수 있었다. 금쪽이들은 대체로 부모가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아 죄책감을 느끼고 있고 그로 인해 사랑받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한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그 대목에선 매번 눈물 콧물 쏟으며 생각했다. 세상에 나쁜 아이란 없다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는 게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왜일까. 그 이유를 최근에 한번 생각해 봤다. 일단 드디어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는지 어그로를 끄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는 게 큰 것 같다. 금쪽같은 내 새끼 자동 검색어에 뜨는 '절약 엄마' 편만 봐도 그렇다.

나도 유튜브로 요약 편을 보면서 경악하긴 했었다. 금쪽이가 폭력적이고 시종일관 무력한 눈을 하고 있었던 이유가 다름 아닌 엄마의 지나친 절약과 통제 강박 때문이었는데 그 정도가 마음대로 씻지도 못하게 하고 불도 못 키게 하는 수준이어서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애들을 상처 입히고 있었고 보는 입장에선 자연 욕이 목구멍으로 솟았다. 역시나 그 엄마는 게시판 여기저기서 신나게 두들겨 맞고 있다.

자신의 문제로 아이가 위태로운 지경이었으니 망신을 당하는 것도 어쩔 수 없긴 한데 그걸 유튜브나 여타 sns 등 제재가 약한 공간의 특성에 맞게 편집본을 올려, 말하자면 어느 저녁의 좋은 안주감으로 던져주는 것이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혐오를 조장해서 시청률 올리기라는 생각만 들었다. 가뜩이나 미혼과 기혼 사이의 혐오, 아이에 대한 혐오들로 가끔 아슬아슬한데.

 

악마의 편집 등으로 어그로를 끌어 시청률을 견인하는 방송국놈들의 행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한 가정을 구원해 준다는 선한 의지를 전면에 내세운 프로로서 실망감이 컸다.

게다가 절박해서 온 사람들 아닌가. 매직솔루션 하나 받기 위해 자신과 아이의 인권, 사생활 등을 내놓은 사람들이다. 어른이다 보니 자신의 문제로 아이들이 해를 입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질타도 감수해야겠지만 이 사람들도 말하자면 도움이 필요한 금쪽이들인데 물어뜯으라고 걸어 놓는 것은 좀 너무하다 싶다. 그리고 이들이, 특히 아이들이 수년 후에도 정신적 타격 없이 생활할 수 있을지 가끔 의문스럽기도 하다.    


절약 엄마를 욕하는 댓글 중에 이런 말이 눈에 들어왔다. 금쪽같은 내 새끼가 폐지돼야 출산율이 오를 거라고. 특히 요즘처럼 풀영상을 보지 않고 요약본 특히 자극적인 문제 상황의 숏츠만 본, 이 프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악마 같은 아이들, 육아라는 지옥에 빠진 부모 혹은 개념 없는 아동 학대범이 된 부모들만 보인다. 행복한 가정이라는 이상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각자의 상황과 환경에 의한 프레임으로 세상들을 보겠지만 한 사람의 양육자로서 지옥에 빠져 있기도 하고 아동 학대범이 돼버리기도 하는 양육자들을 한번 대변해 보겠다.


우리는 육아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tv나 유튜브만 틀면 저명한 인사들이 나와 육아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많은 맘카페에서는 자기계발서에나 나올 법한 (에너지 넘치고 유능한)엄마들이 육아팁을 전한다. 큰 단위의 가족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육아 상식이 없어 불안한 엄마들에게 이들의 이야기는 바이블이다. 참고해서 나쁠 게 없는, 도움이 되는 말이겠지만 불안도가 큰 엄마에게는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게 하는 독 아닌가 싶기도 하다.

특히 '부모가 저 좋자고' '부모가 게을러서'라는 말죄책감에 불이 켜지는 스위치다. 내가 게을러 더 똑똑해질 수 있는 아이 두뇌를 망쳐버릴 것 같고, 내가 기분 대로 화를 냈다가 아이가 씻지 못할 트라우마를 안고 금쪽이가 될 것 같다. 아이 하나, 둘 이 금쪽들을 위해 뭐든 무리해서라도 제일 좋다는 것을 해주는 게 이상적인 부모로 인식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케케묵은 조언을 들으면 화가 날뿐이다.

엄마가 쉽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이 분위기를 소신으로 이겨내고, 미디어 속에서 우리 아이의 특수성에 맞는 의견만 적절히 참고하며 자신의 감정을 성숙하게 컨트롤해서 행복감을 느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특히 발달 과제가 있는 경우엔 더 하지. 육아 불안도는 더 높고 사회적 눈치, 비교와 압박은 더 고 그 불안을 이용한 비즈니스에 희생양이 되기도 쉽고 말이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법에도 있는 개념인데 유독 부모의 행복 추구권은 쉽게 욕을 먹는다. 아이한테 신경 안 쓴다. 방치한다. 자기 편하고자 애를 망친다. 이런 시선에 자신을 검열하고 재단하는 스트레스, 이건 누구한테 갈까. 결국 나와 가족, 아이에게 갈 수밖에 없다. 울분이 솟네 갑자기?


하여간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는 않은 건지 요즘 나오는 육아서에는 육아에 대한 높은 수준의 책임의식과 죄책감을 내려놓으라는 쪽으로 말한다. 방치까지는 곤란하겠지만 자녀보다 자신의 감정과 일에 대해 더 신경 쓰는 쪽이 해를 안 미친다고 한다. 오박사 님도 그러지 않았나? 도움이 될 생각하지 말고 해나 미치지 말자고.


그래도 여전히 <금쪽같은 내 새끼>는 미덕이 있는 프로다. 지옥 속에 있던 많은 가정을 구했고, 무엇보다 불가능해 보이는 어른 금쪽이들을 변하게 해 아이들을 구했다. 부모가 오박사의 말에 대오각성해 엄청난 노력을 보여주고 변화가 실제로 아이의 바람직한 성장으로 이어진다든지, 아이를 키우는 데는 마을이 필요하다는 그대로 학교 전체가 나서서 도움을 주는 프로젝트라든지, 금쪽이의 학교 적응을 돕기 위해 같은 반 학부모들이 배척하지 않고 적극 나서는 장면들은 가슴 뭉클했고 선한 영향력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제발, 어그로는 집어치워주길.



작가의 이전글 이 구역의 최고 반항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