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펑예 Jul 02. 2024

도서관 데이트

지금은 비록 책을 제대로 읽지 않더라도 

고망이가 드디어 도서관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하원 후, 주말에 다른 스케줄 없이 무료할 때 곧잘 찾는 곳이 되었다. 게다가 바로 집 앞에 도서관이 있다. 그리고 차로 5분 정도 거리에도 하나 있다. 너무 좋아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하하하.


해가 길어 하원 후에도 놀이터 가면 땀범벅을 감수해야 하는 시즌이다. 키카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이제 내가 좀 질렸다. 하원 후 절대 바로 집에 들어가는 법은 없는 놈이라 어쩌나 하고 있었는데, 혹시나 물어봤더니 흔쾌히 간다는 거 아닌가. 마지막으로 갔던 때가 내 기억에 두 돌 무렵이었다. 코로나 등으로 줄기차게 집콕만 하다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입장했던 기억이 난다. 유아도서 쪽으로 데리고 갔더니 책장에 있는 책들을 한두 권 빼길래 기쁘게 읽어주려 했었다. 그런데 상황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세 권, 네 권... 책을 보려고 빼낸 것이 아니라 책 빼내기 놀이를 시작한 것이었다. 못하게 하자 난동을 부리길래 그 길로 도서관은 멀었구나 하며 쓸쓸히 돌아왔었다.


그러다 요즘 다시 도전해보자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 데이트할 수 있는 초등학생으로 키우고 싶다는 구체적인 로망이 생기기도 했고 EBS 다큐 프로그램에서 아들을 도서관에 데리고 다니는 아빠의 모습에 자극받았다. 그분의 말이 처음엔 무조건 즐거운 곳이라는 인상만 주라고 했다. 가서 제대로 책을 보는 게 아니라 돌아다니고 장난만 치고 나오더라도 절대 나무라지 말고 돌아올 때는 좋아하는 간식을 같이 먹으며 '도서관 가는 것은 즐겁다'는 인상을 계속 심어주라는 것이었다.

여러 차례 드나들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에 관련한 책부터 스스로 보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나름대로 깊어져서 지금은 그 주제에 대해 자신보다 더 아는 게 많다고 했다. 

  

마지막 방문이 꽤 오래전이었지만 고망이는 낯설어하는 기색도 없이 유리문을 힘껏 당겼다. 그리고 2층에 있는 어린이, 유아 도서 코너로 씩씩하게 향했다. 역시 첫날은 공간을 마구마구 돌아다니다 돌아왔다. 유아 코너의 작은 룸을 둘보고 룸 구석에 있던 쿠션에 앉아보고 아는 책을 괜히 꺼내서 펼쳤다가 그대로 내버려 두고 다른 곳으로 뛰어갔다. 알록달록한 색깔 의자에 앉았다가 계단 소파에 앉았다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반복했다.

그럭저럭 한 시간 정도 있다 나와서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를 먹었다. 그러면서 내가 살짝 물어봤다.


"도서관 재밌어? 또 가고 싶어?"

"네, 또 가고 싶어요."


오예~ 그 후로 집 앞 도서관과 5분 거리의 좀 더 큰 도서관을 번갈아 방문하는 것이 주요 일과가 되었다.


공간 탐색이 끝나자 드디어 책을 꺼내보기 시작했다. 워낙에 숫자를 좋아하는 아이라 숫자를 실마리로 책이 선택되었다. 처음에는 숫자를 동물이나 채소 캐릭터로 연결한 책을 주로 보았고 그러다 <이상한 나라의 숫자들><숫자 전쟁>처럼 숫자가 의인화된 책들도 재밌게 보았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가 한글과 모양으로 확장되기도 했다.

5분 거리에 있는 좀 더 큰 도서관은 소소한 독후 활동 공간도 있었다. 그래서 책 읽는 것이 시들해지면 그림을 그리거나 종이 접기도 할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에 큰 관심 없는 고망이지만 색색깔의 사인펜과 색연필, 크래용에 매료돼 그것들로 숫자 쓰기 연습에 푹 빠지기도 했다. 그날도 책 좀 읽다 그림을 그리던 고망이가 나에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말했다


"도서관에는 재미있는 것이 많아요."


듣고 싶던 바로 그 말! 가뜩이나 속마음을 먼저 말해주는 일도 적은데 이렇게 흐뭇할 수가. 게다가 이곳은 내가 결혼 전에도 종종 오던, 좋아하는 도서관 중 하나라 감개무량한 기분마저 들었다.


종종 유아 도서 코너 한쪽의 책상에서 엄마와 자녀가 각자의 책을 읽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스스로 책을 보고 비치된 활동지에 독후감 같은 것을 쓰는 모습이 보였다. 몇몇은 고망이와 나이 차이가 커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우리의 롤모델이야.

고망이가 책을 뒤적거리는 동안 옆에서 나도 눈길을 끄는 책을 골라서 본다. 그림책들은 볼 때마다 느끼지만 훌륭한 그림과 스토리가 어우러져 한 권 자체로 훌륭한 예술작품 같다. 보다가 너무 좋은 책인 것 같으면 고망이에게 들이밀어본다.


"그림 너무 멋있다. 내용도 재밌고. 한번 볼래?"


하지만 누군가 들이미는 것에 인색한 반응을 보이기 일쑤인 고망이 녀석. 손으로 냉정히 밀쳐낸다.


"싫어요."


안다. 알지만 참 어렵다. 내가 아는 좋은 것을 푸시하지 않는 것. 사춘기 전까지 함께 즐겁게 오려면  빈정 상하는 것도 참아내야지. 엄마여, 참을성을 가지고 지켜보자.

고망이 옆에서 읽었던 훌륭한 그림책 리뷰를 언제 한번 모아서 해보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