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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펑예 Jul 16. 2024

수족구 간병 9일 차

소제목을 쓸 여유도 없다

9일째다. 9일 동안 고망이와 둘이서 코로나 시국처럼 일과를 중단한 채 칩거를 이어갔다. 고망이가 지난주 수족구 진단을 받아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이 대목에서 "저런~"했을 것이다. 수족구는 그만큼 악명 높은 대유행 전염병이니까.


우리 어릴 때 유행하던 수두처럼 발진이 손, 발, 입안 등에 번지는데, 굉장히 가려워 긁다 보면 피부 껍질이 벗겨지고 손발톱이 빠지는 경우도 있다는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종종 들은 바 있다. 그래서 작년에는 그 이야기만으로도 두려워 사람이 붐비는 물놀이 장소는 아예 찾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시 여름이 왔다. 열이 잠시 올랐고 그 후 열꽃 같은 소프트한 발진이 올라왔다. 그리고 결국 병원을 세 번째 방문했을 때 그 무시무시한 이름을 들었다.


"목에 염증이 보이네요. 수족구예요."


다행히 괴담은 그저 괴담에 불과하다는 듯 독한 증상들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오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계속 컨디션이 좋고 밥도 잘 먹었다.(심지어 이 기간 동안 몸무게가 늘었다;) 다만 평소와 같이 에너제틱한 아기를 집에만 데리고 있다 보니 내가 체력, 정신적으로 털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엄마껌딱지가 한층 강화돼서 하루에 백번쯤 "엄마"를 불렀다. 잠시라도 내가 안 보이면 "엄마"를 외쳤고 이따금 뒤에 "뭐해요?" "어딨어요?" "도와주세요" "찾아주세요"를 돌아가며 붙였다.


개인적인 볼 일은 일체 불가능했다. 잠시 카톡 메시지 나누는 것도 힘들었다. 부르다가 안 되면 직접 데리러 와서 끌고 갔던 것이다. 무시무시한 그놈에 놀이방으로. 그러면 요즘 즐겨하는 보드게임, 클레이 놀이, 시계 놀이, 글씨 쓰기 등을 뱅글뱅글 돌아가며 한다.


다정은 체력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기꺼이 적극적으로 하던 리액션이 오후 3시를 지나가면서 텐션을 잃는다. 그러다 보면 꼭 늦은 오후의 어느 시간 대에 열이 오르는 일이 생긴다.

아이는 졸음이 와 밑도 끝도 없이 떼를 쓰거나 리액션이 시들한 어미에게 심통을 부렸다. 해야 할 모든 것을 "싫어요"로 일관하거나 하지 말라는 행동을 더 하는 식인데, 프레시하지 못한 컨디션의 늙은 어미는 너그럽게 그걸 넘기지 못하고 한 번은 버럭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8일째까지는 담담하게 조금만 힘내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는데 오늘은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폭발했다. 고망이 케어만도 버거운데 미뤄둔 집안일이 나를 옥죄었던 것이다. 급한 건 아버님들이 보낸 과일, 생선들의 처리다. (냉장고가)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과한 사랑이라 얼마는 상해 가고 있었다. 결국 근처 사시는 시어머니에게 sos를 쳐서 도움을 받았다. 하우스키퍼 능력은 여간해선 오르지 않았다. 사실 그리 의지도 없다. 기본 관리 정도할 뿐인데 그것마저도 허덕인다.  


어머님이 잠시 오신 동안 고망이의 관심을 분산시키려 했는데 그것도 대실패였다. 엄껌이 된 이 녀석이 내가 어머니와 잠시 이야기 나누고 있는 것에도 심통을 부렸던 것이다. 결국 할머니도 빨리 돌아가게 만들었다. 게다가 낮잠을 건너뛰어 전혀 쉴 틈 없이 체력 급 저하 시간을 맞았다. 중간중간 TV 시청 시간으로 잠시 휴식을 취하긴 했으나 그나마도 급한 설거지와 빨래에 빼앗겼다. 그러자 나중에는 멘탈이 살짝 나가버렸다. 그래서 동생과 남편에게 전화해 두서없는 하소연과 책망을 퍼부었다. 당연히 눈물을 찔끔 거리며. 남편이 눈앞에 있었으면 등짝을 후드려 팼을 것이다. 왜 너는 내 곁에 없는 것이냐고.


다행한 것은 어제 그제 자정이 되어도 날뛰다 잠들던 고망이가 오늘은 낮잠을 건너뛰어선지(그로 인해 멘털이 후달거렸지만) 10시가 되기 전에 잠들어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망아지의 탈을 벗고 천하에 둘도 없이 사랑스러운 천사로 돌아온 그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긴 기간을 그것도 하루에 장 시간 옆에 붙어 다 보니 그간 성장한 면모가 크게 보였다.

키도 제법 커졌고 집중력도 좋아지고 새로운 놀이를 확장할 줄도 알았다. 맞다, 표현력도 더 좋아졌다. 이제야 내 맘에 평화가 깃든 모양이었다. 그래, 언제까지 내 품에 있겠나. 이 미친 텐션도 그리울 날이 오겠지. 

며칠간 고생한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런저런 감상에 빠졌다. 내일 병원에 들르면 완치서를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정상적인 일과가 시작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가능한 감상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완치서는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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