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엔 부르지 않는 게 국룰이지 않니, 얘야
평생을 글을 안 쓰는 자유를 벗어난 일이 없다. 출산 후부터는 그러니까 3년은 일기도 거의 쓰지 않았지만 결국엔 쓸 것이고 언젠가는 대작을 쓸 거라는 망상을 버리지 못했다. 망상이라고 하면 다소 비관적이고 자조적이지만 현재는 별 노력을 하지도 않고 약간의 성과도 없는 상태니 냉정하게 망상이라고 해야 한다. 나는 객관화하는 걸 즐기는 T니까.
동생은 내가 이따끔 인스타 계정(팔로워도 별로 없는 비공개 계정;)에 올리는 글들에서 감성과 문학성을 느낄 수 있었다며 작가가 되어보라며 응원해줬다. 언니의 글은 픽션보다는 에세이가 좋다며 픽션은 늘 약간은 그로테스크하고 대중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냉혹한 평도 덧붙였다. 내 소설들을 제대로 읽어본 바도 없는 평이지만 여하튼 글을 계속 쓰라는 진심어린 응원에 감화되어 지금도 이렇게 몇 자 쓴다. 이 일기 같은 글이 앞으로 세상의 빛을 볼지 작가의 이름 대로 펑예가 될지는 모르겠다. 나는 내 글이 꽤 재미있으나 다른 사람들도 그러할지는 전혀 예상할 수 없다. 그런 감조차 없이 사회와 단절되어 버렸다.
육아를 탓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그러하다. 출산 후 육아가 본업이 되었고 그것만으로도 삶이 벅차다. 그리고 나머지 여력은 살림과 남편 J 서포트로 흘러갈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직장에 다니거나 가게 일에 풀타임 뛰어들었겠지. 그래도 글 쓰는 데 시간 투자를 했을 것이다.
오늘은 자정에나 자는 부엉이 아기가 두시간이나 일찍 자주었다. 남은 집안 일은 늘상 있는 설거지. 바로 글을 썼다면 좋았겠지만 유튜브와 OTT를 오가며 맥락없이 제공되는 영상물들을 감상하다 12시반을 넘겼다. 마지노선이다 싶어 TV를 끄고 컴을 킨 거다. 최소 30분은 글 쓰는 데 시간을 투자하리라 마음 먹고. 삶을 바꾸려면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기분을 이를 악물고 버티며 오늘도 뭔가를 하는 것이다.
이 글을 한번에 제대로 완성하기는 글렀다.(이 타이밍에 부엉이가 깨버려 다녀옴;) 육아 노동자의 삶은 제대로된 퇴근이라는 것이 없어 힘든 것. 퇴근 중에 다시 일하라 부르면 유쾌할 수가 없다.
지금 아빠가 달래러 갔는데 아빠는 조용히 가고 엄마 오란다. 그리고 들어주기 힘든 진한 떼를 쓴다. 자야할 시간에 불을 키라니 그건 절대 들어줄 수가 없다. 최근 들어 새벽에 깨서 달래기 힘들 정도로 운 일은 드물었는데... 크게 클 모양이네?
앞으로 40대 육아노동자로서 허덕허덕 그리고 이따금 여유만만한 듯 위장하기도 하는 하루하루를 기록해보기로 한다. 읽어주셔서 미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