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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펑예 Mar 26. 2024

생존 운동

살기 위해 할 것인가 재미를 위해 할 것인가

"일주일에 세 번은 운동을 하셔야 돼요. 숨이 찰 정도로."

건강검진 코스를 대부분 끝내고 문진하러 들어간 참이었다. 여의사가 나의 생활습관 내역을 훑으며 차분한 어조로 예상할 만한 잔소리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운동을 얼마나 하십니까?' 라는 문항에 0번이라고 두번도 생각 않고 당당히 표기했으니 예의 그런 말이 나올 만 했다. 그냥 네네, 하고 말려다가 나의 특수한 상황에 맞는 특수한 팁이나 들을 수 있을까 해서 항변을 했다.

"출산한 지 얼마 안돼서요."

하지만 곧바로 괜히 말했다 싶은 대꾸가 돌아왔다. 

"체력을 더 끌어올려야죠. 나는 3개월 만에 복귀해서 뛰어다녔어요."

저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그랬을 수도 있죠, 그리고 혹시 마흔에 낳아보셨어요? 라는 말이 목구멍으로 치밀었지만 뭣도 모르는 환자답게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놀랍도록 시시한 문진을 끝내고 방을 나왔다. 


아이에 관심 한톨없이 살아왔고 모성은 사회가 만들어낸 지배를 위한 허상이라 여겼으며 그래서 지인 열이면 열 "네가 엄마라니. 딩크라면 몰라도."라는 반응을 받았던 나는 뜻하지 않게 '열심히 노력하여' 불혹의 고개에서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네가 엄마라니라는 말에 라임을 맞추듯 독박육아라니. 현재 기세 좋은 아기를 90프로 홀로 뫼시고 있다. 아기는 역시 아들이라선지 나날이 무거워지고 게임 캐릭터가 업그레이드 되듯 눈에 띄게 정기적으로 에너제틱해진다. 나는 그 속도보다는 조금 느리지만 착실히 노쇠해지고. 그러니, 그래 분하지만 그 의사 말대로 '숨이 찰 정도'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수긍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운동의 역사. 


1. 아기띠 메고 활보하기 

아기가 아직 걸음마를 시작하기 전엔 10킬로가 넘어가는 아기를 띠로 안고 동네 한바퀴를 도는 것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무거운 것(?)을 지고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숨이 찰 정도'의 운동이라 생각해서다. 평소 어깨 통증으로 피하던 아기띠지만 운동이라 생각하니 할 만했던 게 신기했다. 하여간 그렇게 10킬로를 어깨에 지고 평지를 걷고 곧이어 나오는 오르막길도 올랐다. 어쩐지 자신이 붙어 가볍게 뛰기도 했다. 뛰면 아기가 좋아해서 더 그랬던 모양이다. 

그후 가끔 동네 육아 동지들을 만날 때도 유모차보다는 아기띠를 이용해 아기를 데리고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노쇠하지 않다고 과시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대게 동지들은 30대였으니까. 그러나 무리하면 꼭 탈이 나기 마련. 어느 순간 10분 이상 걸으면 출산 후 좋지 않던 오른쪽 골반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게다가 날씨도 추워지고 코로나도 창궐해 마스크도 안 쓴 아기를 무방비로 데리고 나가기 께름칙해졌다. 그렇게 나는 몇가지 이유를 붙여 그 운동, '아기띠 메고 활보하기'를 곧 관뒀다. 


2. 똥 씻기 스쿼트

성격, 기세 못지 않게 아기는 활발한 장腸을 가졌다. 그래서 대변을 정말 자주, 많이 봤는데 두돌 전까지는 하루에 적으면 2번 많으면 8번까지도 봤다. 그런데 커 갈수록 누워서 얌전히 기저귀를 갈려들지 않다보니 매번 화장실로 데리고 가 씻기게 되었고 아기 비데(라고 해야 세면기 거치대?)도 써보고 물이 위로 솟는 수전도 이용했지만 여하튼 아기를 들어올리고 내리고 할 일이 많았다. 생활방식을 이용해 운동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나는 이 순간 마다 스쿼트 자세를 접목해 다리를 벌려 앉고 엉덩이, 허벅지 힘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외에도 숱하게 맞는 들어올리기 내리기의 순간에 어깨넓이 만큼 다리를 벌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런 운동이라도 한다고 위안하고 있던 것도 잠시 자세가 잘못된 탓이었는지 무릎까지 시큰해져왔다. 그러자 보다 못한 남편이 오전 일찍 자신이 출근 하기 전에 PT를 다녀오라고 권했다. 고마운 말이었지만 지옥의 PT 훈련 영상이 떠올라 나는 좀 움츠러 들었다. 

"PT? 필라테스는 어떨까...?"

"기초 근육 없으면 필라테스가 더 힘들어. 자기는 기초 근육이 아주~ 없잖아."

허리디스크를 치료하기 위해 매일 곡소리를 내면서 필라테스했던 사람의 말이라 더 말은 안 했다. 다만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곧장, 가볍게 달려서 10분 거리 내에 오전 7시 수업을 시작할 수 있는 PT숍에 등록하게 되었다.


3. 역시 그래도 PT

"선생님, 아기 볼 체력 좀 만들어주세요."

물에 빠진 사람처럼 절박하게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나의 상태를 고려해 수업은 심플했다. 주로 스쿼트와 팔굽혀 펴기였고 때때로 데드리프트 정도를 진행했다. 체력을 끌어올리고 시급히 필요한 근육들을 단련하는 운동이었다. 역시 멱살 잡아 끄는 사람이 있으니 따라갈 만했고 아침잠이 많은 저혈압인인 것도 극복이 되었다. 그렇게 2주쯤 하자 레슨 후 개인 유산소 운동을 이어갈 시간적 여력이 없는 게 아쉬워 집까지 가볍게 뛰어가기도 했다. 확실히 첫 한달 정도는 제대로된 운동을 하는 기분이었다. 텐션이 살짝 오르다보니 뭘 하든 활력이 있었고 아기에게 짜증내는 일도 줄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계약한 석달도 되지 않아 탄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발목을 잡은 건 그 놈에 코로나. 그렇다, 코시국에 출산한 나는 그래서 배로 힘든 육아였다. 주말에 만난 시어머니가 확진이 되는 바람에 나 역시 아기와 함께 일주일을 칩거에 들어갔다. 결국 음성으로 나오긴 했지만 그렇게 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감기 증상이 나와 며칠을 거푸 쉬는 상황이 생겼다. 끝까지 코로나 진단은 음성으로 나왔으나 마치 확진된 것처럼 심신이 지친 상태가 되었고 PT는 나머지 일수만을 겨우 채우고 종지부를 지었다. 


 4. 생존보다 재미

끝날 것 같지 않던 코시국이 마무리될 무렵 아기는 어린이집에 입소했다. 다소간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운동 엔진은 완전히 꺼져버린 후였다. 아시겠지만 무슨 일이든(특히 운동) 한번 시동이 걸리면 생각보다 거침없이 나가다가도 어쩌다 꺼져버리면 다시 걸리기가 무진장 어렵다. 급한 집안일을 끝내면 겨우 하는 건 현대인의 오랜 친구, TV나 켜는 일이었다. 그렇게 더는 절박하지 않고 살 만한 상황이 돼서 푹 퍼져버린 나의 눈에 어느 날 갑자기 의외의 운동이 눈에 들어온다. 예능프로인 '나 혼자 산다'에서 출연자가 테니스 치는 모습, 정확히는 공이 탕탕, 튀는 그 소리에 마음이 동해 급 테니스 수업을 등록하게 된 것이다. 매체 영향 탓인지 테니스는 요즘 가장 핫한 운동이 되어 있었고 가까운 곳에 교습소가 많이 생겨서 입문이 쉬웠다. 

이것이 생존 운동인가?라고 물으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30분 레슨으로도 운동량이 많아 숨이 차긴 하지만 일주일에 겨우 한번이고 그외 머신기로 하는 타격 연습 몇번으로(그마저도 잘 못감;) 체력이 늘 것 같진 않다. 야외 코트로 나가 게임이라도 뛰고 싶으냐?라고 물으면 아니요, 그것도 별 생각없습니다 라고 할 것이다. 그저 여전히 공이 탕탕, 하는 그 경쾌한 소리가 좋아 5개월 넘게 이어가는 중이다. 공을 멀리 쳐내서 내 안에 뿜어져 나올 만한 파워가 있음을 확인하고 랠리로 받아내기라도 하면 내 몸의 반응속도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통통 튀는 레몬색 공이 주는 정신적 활력도 있다. 별 이유없이 재미로 하는 것보다 무서운 게 있을까. 고거 조금했다고 테니스엘보가 와 정형외과를 다니고 있는, 역시나 툭하면 제동걸리는 몹쓸 몸뚱이지만 그것으로 된 거 아닌가 한다.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품자면 장차 가족 운동으로 삼아 아이가 품에서 멀어지는 나이가 되어도 게임으로나마 소통하는 관계를 그려보는 것이다. 기능적 충족이 아닌 정신적 충족도 중요한 거...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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