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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펑예 Oct 29. 2024

외아들과 해피엔딩

해피엔딩을 향한 머나먼 길 

우리는 일찍감치 외동을 확정했다. 나로서는 나이도 그렇고 고망이가 난이도 있는 케어가 필요한 아이다 보니 동생은 엄두가 안 났다. 게다가 이미 고망이에게 온 사랑이 다 갔는데 어떻게 또 다른 존재에게 그만큼을 줄 수 있을까. 언뜻 이해가 안 간다. 혹자는 그런다. 험난한 세상 외로워서 안된다고, 좋은 친구 만들어줘야 한다고도 한다. 그럼 둘째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가치를 얻는 게 맞나? 심지어는 이런 말도 들었다. 좀 순하고 발달도 빠르고 무난한 아이 한번 키우고 싶어 나으려고 한다고. 이건 조건부 사랑 아닌가. 그렇지 못한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큰일은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르는 거랬다고 나이 어릴 때 결혼하고 출산했으면 별 생각없이 둘째, 셋째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이 많아져 버린 중년이라 외동 확정에 흔들림이 없다.


그러고 나서 보니 이제는 고민 지점이 '아이와 해피엔딩'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외아들과 해피엔딩'. 어떻게 하나뿐인 아들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 숨을 거두느냐는 것이다. 지금은 더 없이 좋다. 매일같이 서로 사랑한다 말하고 아이는 늘상 엄마와 같이 있고 싶어한다. 그런데 이것이 시한부라는 걸 종종 생각한다. 네돌도 안 된 아이를 두고 벌써 그런 걱정을 하느냐고들 할지도 모르겠지만. 


얼마전 가게에 세 가족이 손님으로 왔다. 아들은 전에도 몇번 방문한 적 있는 사람이었고 대학교수 임용을 앞두고 있었다. 그날은 어머니의 생신 기념으로 온 것이었다. 어머니는 모처럼 갖는 외아들과의 식사가 행복해 죽겠다는 눈치였다.


"대전으로 가기 전에 우리 이런 시간 많이 많이 가지자~"


처음에는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고 좋았다. 그런데 점점 어머니의 말은 잔소리로 바뀌기 시작했다.


"와인셀러를 왜 사니?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실 거야? 연구하고 더 바빠질텐데 건강관리 해야지."

"시켜먹고 그러지 마. 얼마나 비위생적으로 만드는 줄 아니?"


여기까지만 해도 이해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점점 아들의 표정이 굳어지는 말들도 등장했다.


"좀 괜찮은 여자애들 좀 만나. 저번에 그 애는 수준 이하였어."

"내 말을 들었으면 서울대에 갔지. 니가 그때 선택을 잘못해가지고."


잔소리와 비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그 후에도 길게 이어졌고 유일하게 중재할 만한 사람인 아버지는 들리지 않는듯 식사에만 열중했다. 식사가 거의 마무리 될 무렵 아들이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식사를 끝내고 남은 부부는 잠시 침묵하다가 화장실 간 모양이라며 계산을 하고 소지품을 챙겨 나갔다.


아들이 그 시간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나가버린 것이라는 추측은 좀 지나친 것일까. 어쨌든 나는 갑자기, 고망이가 나와 식사하는 것도 불편해지는 날이 오면 어떨까 라는 생각과 함께 온전히 사랑을 주고도 해피엔딩을 맞는 것이 어쩌면 녹록치 않은 일이구나 싶어졌다. 


아들과 나는 어찌할 수 없는 뚜렷한 간극이 존재한다. 가장 큰 것은 성별과 성향 차이다. 왜 그런 말을 하고 행동하고 무엇보다 그런 생각을 갖는지 점점 이해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날이 갈수록 공고해지는 잣대로 그 이해하기 힘든 면을 괴상하다고, 나쁘게는 '잘못됐다'고 규정짓고 교정하고 싶을 것이다. 특히 인생의 길을 만들어 주려는 '위험한 일'을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자식이 멋진 어른이 되길 바라는 거야 인지상정이지만 그 자식이 하나뿐이기 때문에 더 욕심을 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든 것을 쏟아붓게 되는데... 이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다. 


쏟아부은 정도가 심해질수록 이것은 부모로서 사랑으로 해주는 일이 아닌 투자 대비 실적을 기대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적은 높은 확률로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를 낳아 분노와 허탈감을 안겨준다. 그러면 분명 여전히 내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믿을 만한 놈은 못되는 것이다. 번번히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망해서 돌아올 것 같은, 그래서 엄마의 마음 속엔 영원히 관여가 필요한 미성년이다. 그리고 기대와 실망 세례를 받고 자존감이 너덜너덜해진 아들은 그렇게 사랑했던 유아 시절의 기억을 모두 잊고 엄마만 보면 피로가 몰려오는 기분을 느낀다. 


그러니 공룡들처럼, 날아오르고 먹이를 찾아내고 잡는 법을 알려준 후에는 지체없이 떠나야 할 것이다. 등을 떠밀어 광야로 정글로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고 아무 기대도 없이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든 평가하지 않고 받아줘야겠지.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온 게 어디냐며. 그러면 아이에게 부모와의 식사는 언제나 즐거운 시간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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