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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펑예 Nov 19. 2024

성공한 삶이란

음악이라 쓰고 정신적 자양강장제라 읽는다

일요일 저녁 예술의 전당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무심히 고개를 돌리다 차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공연이 성황리에 진행 중이겠구나 싶은 생각과 함께 문득, 일요일에 공연을 즐기는 삶이야말로 성공한 삶이 아니겠나 싶어졌다. 그러면서 50대의 어느 날엔 저런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요일마다 공연을 보러 다니려면 취미 비용으로 한 달에 적게는 30만 원, 많게는 50만 원 정도를 거뜬히 쓸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할 것이니 그 정도의 재력이 있는 삶이기를 바라는 것도 물론 맞다. 하지만 포장을 좀 하자면  '음악을 향유하는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릴 때 우리 집엔 엄마 사촌에게 선물 받은, 파이어니어 사社에서 나온 전축이 있었다. 기억 속에 나는 친구들과 밖에서 놀기보다는 집에서 조용히 노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는데, 심심할 때면 종종 이 전축으로 음악을 들었다. 엄마가 전축을 들이고 처음 산 '한국인이 좋아하는 클래식 넘버' 전집은 꽤 들었던 것 같다. 수납장 한구 구석에 있던 작은 수첩에 곡 별로 감상평을 쓰기도 했는데 가장 좋아하는 곡은 <파헬벨의 캐논>이라고 썼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베토벤의 생애를 그린 영화 <불멸의 연인>을 보고는 베토벤 소나타 곡들에 반해 처음으로 레코드 가게에 가서 그라모폰에서 나온 노란 라벨이 붙은 정식 클래식 음반을 샀다. 내돈내산 CD를 처음으로 틀었을 때의 설렘을 기억한다. 무명의 레코드 음반과는 차원이 다른 사운드의 월광, 비창을 듣고 있으려니 내가 더 이상 소심하고 쭈글한 중학생이 아니라 근사한 예술가나 된 기분이었다.


물론 클래식만 들었던 건 아니다. 파이어니어 음악 감상실이 사랑한 곡 중엔 이승환의 천일동안,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패닉의 내 서랍 속의 바다, 보이즈투멘의 엔드오브로드, 오아시스의 스탠바이미, 넥스트의 날아라 병아리 등도 있다. 모두 볼륨을 크게 올렸을 때 감동 두 배인 곡들이다. 중2병을 난 이 감상실에서 치료했다.


하지만 감상 이상으로 음악을 향유하지 못한 채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때는 밴드 붐으로 너 나 할 것 없이 기타를 두드리고 있었고 피아노 연주에 열정적인 친구도 있었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로만 생각됐다. 단순히 학업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 각성하며 생각했다. 왜 지금껏 악기 하나 두드려볼 생각을 안 했는지를 말이다.


그 이후 적극적인 음악 향유 활동이 시작되었다. 드럼에 도전했고 배우다 보니 재즈 드럼 쪽에 재미를 느껴 동호회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아마추어 재즈밴드에서 활동하게 되었고 공연도 했다. 악기를 연주하고 앙상블을 이루어 공연을 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이 다른 차원의 행복감을 주었다.  

그 후에는 방향을 틀어 관악기인 플루트에 도전했다. 그리고 활동 확장 경력자로서 자연스럽게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입단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세종문화회관에 서보는 일도 있었다. 악기 연주 실력이 뛰어났던 것은 물론 아니고 뜻이 있으니 길이 열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돌이켜보니 한바탕 꿈같다.


출산과 함께 음악 활동은 감상으로 축소되었다. 이제는 파이어니어도 없고 유튜브에 의지해 블루투스 스피커나 헤드폰을 이용하는 게 다다. 그래도 코시국 독박육아의 괴로움을 달래주었던 순간순간에는 음악이 늘 함께했다. 오전에 잠이 덜 깨 듣던 KBS 클래식 채널, 유튜브 공연 실황, 특히 더 클레이번 최종 라운드 곡인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고망이의 열띤 호응(?)까지 힘 입어 100번은 넘게 봤다. 저녁나절 맘마 먹이며 멍하니 듣던 혼네 리플리도 기억에 남는다.  


요즘은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과 고망님의 동요 리퀘스트만 가득해 저녁에 가게에서 BGM으로 틀어둔 음악을 가만가만 듣고 있을 때가 그나마 감상하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작은 가게이고 기본적으로 조용한 무드다 보니 음악의 역할이 너무 중요하다. 가사가 없는 재즈곡을 주로 트는데 달그닥거리는 소리만 가득하던 느낌 없던 업장이 음악을 ON 하는 순간 공기가 싹 바뀐다. 그렇게 분위기 있을 수 없다.


그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삶이다. 우리 가족 건강한 것, 아이가 착착 성장해 나가는 것, 가게가 별문제 없이 운영돼 가끔 맛있는 것 먹고 여행 갈 만한 여력이 있는 것.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브런치스토리 연재를 시작해 100회를 써본다는 목표가 생겼고 그날 저녁 그곳을 지나가다 문득 성공한 삶의 모습을 그려봤다.

올해 목표는 뭐냐? 내년 목표를 세워봐라. 당신 미래의 인생을 그려봐라, 숱한 조언들을 들으며 살아왔지만 한 번도 마음이 동해서 실행한 적은 없다. 그것이 없으면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없고 도태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만 가질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것은 내 속에 쌓이고 쌓였다 운명처럼 등장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저 음악이나 감상하는 삶도 괜찮지 했지만 마음은 더 적극적인 향유를 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실제 음악가가 될 것도 아닌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순식간에 공기를 바꿔버리는 존재이니 내게 분명 살아갈 힘을 주리란 거다. 좀 더 나아가 아이와 함께 향유하는 삶이라면...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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