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업계 꿈나무에게
"더 좋은 곳에서 오라는 연락을 받아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숙취에 눈을 뜬 J가 이른 오전에 확인한 문자 한 통. 바로 사흘 전에 입사한 막내 직원이 보낸 것이었다. 우리는 잠시 망연자실했지만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이렇게 문자라도 보내면 다행이지. 아예 잠수 타버리거나 심지어 가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연락 두절되는 경우도 있었다.
J는 다른 지원자 이력서를 좀 봐야겠다고 했고 나는 어머니에게 고망이를 맡기고 런치에 가봐야겠구나 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제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랬나? 어젠 사수로 있던 서브 셰프가 휴무인 관계로 주방에서 혼비백산하는 일이 많긴 했다. J도 그렇고 대신 온 다른 셰프랑 나도 그가 더 당황하지 않게 실수를 혼내기보다는 격려해주었다.
"쉽지 않죠? 이겨내야 합니다. 할 수 있어요."
"처음이라 정신 하나도 없는 게 당연해요. 계속해나가다 보면 금방 능숙해질 거예요."
특히 J는 예전이라면 불호령을 낼 만한 상황에서도 꾹 참고 그 직원을 달랬다. 시대가 바뀌었고 우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떠났다.
입사를 해놓고 이직을 통보한다니 다른 업계에서 보기엔 황당하다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쪽은 그렇게 된 지 오래다. 이 필드로 진출하려는 구직자들이 확 줄다 보니 업장에서는 웬만하면 일단 채용해야 하는 입장이고 그들은 금방 그만둬도 아쉬울 게 없다. 면접을 보고 합격 통보를 하는 중에도 그들은 당당하게 말한다.
"다른 면접 본 곳도 있어서 결과 나오면 결정해서 말씀드릴게요."
그러니까 '더 좋은 곳'이라는 묘하게 디스 섞인 멘트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고 상황이 바뀌었다는 건 알았지만 여전히 그들의 마인드는 해독 불가다. 어쩌면 어제 완전히 동상이몽 상태였구나 싶기도 하다. 여기서 어떻게든 일해서 배우고 자리 잡아야겠다는 입장이 아니라 수많은 업장 중에서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와 봤다면, 괜찮다, 이겨내 보라는 말이 격려라기보다는 채찍질이나 해대는 소리로 생각되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면 그 '더 좋은 곳'은 직원들이 넉넉히 있어서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 없으며 이도 저도 아니라면 보수나 워라밸, 인지도가 더 좋은 곳일 것이다. 씁쓸하지만 그곳에서 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어제의 그 상황이 진짜 일 못할 조건이라고 생각했다면 그 요식업계 꿈나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꼰대 업주라는 것을 감안하고 들어주길 바란다.
편하게 갈 생각 하지 마.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요식업계에서 뿌리를 내리려면 좀 더 편하게 일하는 게 그리 도움이 안 된다고. 결국 자기 가게를 운영하고 싶어서 발 들이는 거 아냐? 혼자서 가게를 돌릴 수 있을 정도로 일 머리와 근육이 단련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힘든 상황을 경험해서 체화하는 수밖에 없지.
J 주변을 가만히 보면, 20~30대를 자기 요리, 자기 가게 할 그날만 바라보며 미친 워라밸을 견뎌냈던 곰들은 지금 괜찮은 업장들을 속속들이 오픈하고 있고 그 곰들을 약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던 호랑이들은 별볼 일 없는 월급쟁이로 살고 있단다.(인생 자체로 본다면 누가 낫고 못하다 할 수 없지만 현재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맞춰본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인생 금방이야. 시간을 잘 써야 돼.
마지막으로, 뭔가를 해내는 데는 번뜩이고 영리한 호랑이보다 진득하게 버틸 줄 아는 곰이 웃게 된다는 걸 잊지 말길! 존버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