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독서
중년 이상의 여성들이 다수 포함된 영어회화 동아리 모임의 지난주 주제는 "Gray hair"였다. 자연히 나이가 들었다고 느끼는 순간과 나름의 노력들을 공유했다. 흰머리가 늘고 머리숱이 줄어든다는 것, 팔자 주름, 근력이 쉽게 손실되고 증량되기는 무지막지하게 어렵다는 것. 그 외에도 멘털케어와 불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최근 '지력'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어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영어로 하려니 당연히 잘 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다소 무례하다 싶은 반응을 받기도 했지만 거기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나는 즉흥성, 임기응변이 떨어지는 편이고 말이 바로 나오는 타입이 아니다. 머릿속에는 꽤나 근사하다고 판단되는 생각이 있지만 그것을 말로 유려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꼭 뒤돌아서고 나서야 "이렇게 말할걸"하고 후회하는 쪽이고 내 말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좌중이 더 설득되는 것을 보고서는 억울함 같은 것을 곱씹는 쪽이다. 역시 말하는 인간이기보다 '쓰는 인간'인 모양이다.
쓰는 인간은 아까 말로 하지 못해 뒤늦게 들끓는 생각을 정리하고자 집에 돌아와 얼른 컴퓨터를 켰다.
"나이가 들면서 신체의 힘만큼이나 '지력'도 떨어져 간다는 것을 느낀다. 엄마처럼 물건이 어디 있는지를 한참 찾고, 해야 할 일을 놓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갑자기 당연히 알던 단어나 이름이 기억나지 않기도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뭔가를 잊어버릴 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생각날 때까지 생각해 보는 것이라고 한다. 답답하고 자괴감 들더라도 계속 떠올리려고 노력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가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저자의 말에 대한 의미를 계속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도 유튜브 등의 미디어가 '골라준' 콘텐츠가 아니라 내가 '고른' 콘텐츠라는 것도 귀하다. 입 속으로 떠먹여 주지 않지만 어느 정도는 들여다봐야겠다는 책임감도 든다.
최근엔 전에 읽지 않던 카테고리의 책을 읽어보려 애쓴다. 여전히 테마는 육아나 교육에 대한 것이 많지만 미래나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고망이가 앞으로 살 세상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어려워도 지루해도 끝까지 정독 못해도 내 나름대로 판단해보려 한다. 최재천 선생도 책과 씨름하는 게 독서라며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책을 읽느니 나가 놀라고 하셨다. 사고력을 자극해야 의미 있는 독서란 말이겠다.
최근에는 이 '사고력'에 대한 관심도 크다. 사실 이것은 계엄 사태를 계기로 커졌다. 우리나라 최고 학부를 나온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편향된 사고에 빠져 사리분별을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사고력이 둔해지면 세상을 제대로 읽을 줄 모르고 자기 성찰에 마비가 오면서 양심도 저버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타고난 지능, 학교 성적 좋은 것과도 크게 상관없으며 예전에 책 좀 읽었던 것으로도 부족하다. 지속적으로 좋은 책을 읽으며 좋은 의견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각을 확장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어떤 상황을 맞아도 불합리한 의견에 빠져들지 않고 자신만의 합리적인 소신을 지킬 수 있다. 나에게 적용해본다면 어르신들 잘하는 말로 '총기 있는' 엄마. 맹~하지 않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카리스마 있게 대화를 리드하는 엄마가 될 수도.
"카리스마 있게 리드하는"이라..... 쓰고 보니 그런 욕망이 차오른다. 애초에 나는 글렀다고 피하지 말고 그런 거에 관심 없다고 쿨한 척도 하지 말고 조용히, 계속 지향하다 보면 발전이 있겠지? 집에 돌아와 하는 분노의 키보드질을 줄일 수 있겠지?
*사진 출처_핀터레스트 "Sophia de Mello Breyner Andre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