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는 일상적으로 하는 잠 재우고 깨우기, 먹이기, 양치시키기, 목욕하기 등의 일일 프로젝트와 함께 걷기, 컵으로 물 마시기, 수저 쓰기 등 적절한 때가 오면 해야 하는, 하지만 시간이 좀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가 있다. 그중 영아 시기에 중요한 프로젝트 하나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바로 자조의 끝판왕, 배변 훈련이다.
배변 훈련은 두돌부터 세돌 시기 동안에 내려진 주요 발달 과제 중 하나다. 내 주변 사정을 보면, 두돌 전에 끝냈다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만 4세까지도 "아직 진행 중이다"라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아이한테 스트레스 주지 말자는 분위기라 예전보다는 과제 이행 시기가 늦어지는 것 같다.
우리의 경우 18개월부터 아기 변기를 들여 분위기를 잡았으나 거의 36개월즈음에야 안팎, 밤낮으로 실수가 거의 없는 훈련 수료를 맞았다.
처음엔 변기에 앉아보기도 하고 그 위에서 책을 읽거나 변기에 스티커를 붙이는 등의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게 했고 그 후엔 앉아서 소변볼 수 있도록 유도해보았다. 하지만 실수로라도 변기에 쉬하는 일이 쉽게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두돌이 지났다.
27개월, 어린이집 입소 후 서서히 과제에 대한 압박이 오기 시작했다. 그 전엔 세돌 전까지만 마무리하면 되지, 하는 여유만만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30개월이 가까워오니 같은 반 친구들 중 기저귀를 뗀 친구들이 꽤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리 아이는 일단 12월 생이라 늦는 것은 아니라고 위안했는데 어느 날 생일이 하루 늦은 친구도 훈련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국민육아멘토인 오박사께서 30개월에 85%, 36개월에 98%가 (낮에)대소변 가리기에 성공한다고 통계치를 알려주는 걸 봤다.
수치가 주는 위력이란 게 그렇다. 85%라니... 이건 마치 100명 중 85 등 이하라는 성적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엄마에게 있다는 무언의 압박이 나를 내리눌렀다. 그 압박은 32개월을 맞은 여름, 극에 달했다.
옷이 얇아 세탁이 용이하고 거의 벗겨 놔도 되는 여름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여름 골든타임설'에 휘말린 엄마는 집에서는 팬티 입혀 생활하게 하고 하루에 너댓번은 변기에 앉아보자 강권하게 된다. 하지만 강권해선지 역효과가 났다. 아이가 변기에 앉기를 아예 거부하는 것이다. 상황이 그렇게 되니 실갱이를 벌이다 여름을 보내고 부쩍 노쇠해진 엄마는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손놓아 버리기에 이른다.
그러던 34개월의 어느 날, 아이가 스스로 기저귀를 차기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돌이켜보면 이것이 적극적인 신호였던 것 같다. 그날도 기저귀를 거부해 하의를 벗겨놓은 채였는데 놀이방에서 놀던 아이가 엉거주춤한 포즈를 취했다. 소변을 보고 싶다는 사인으로 읽은 나는 "우리 변기로 가보자"라고 했다. 그건 내가 숱하게 실패했던 권유여서 이제는 자동 반사적으로 나왔던 말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순순히 변기로 가서 '진짜' 소변을 본 것이다. 배운 것을 보태 찐으로 나온 나의 리액션은 실로 요란했다. 기대치가 낮다보니 환희가 너무 컸다. 그때부터 다시 팬티만 입힌 채 일정한 시간마다 혹은 기색이 보일 때마다 변기로 데려갔고 성공횟수가 점점 늘어갔다.
낮기저귀를 떼고도 밤기저귀는 바로 떼지 않는 경우들이 많았지만 시기가 이른 편도 아니고 밤 기저귀가 젖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바로 팬티만 입힌 채 취침시키기 시작했다. 첫 몇 번은 성공적이라 늦어도 한번에 떼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우리 아이도 그런 경우라고 자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숱하게 실수를 했다. 그나마 배변용 팬티에 방수 패드로 이불 빨래의 고생을 좀 덜었을 뿐이다. 어느 날은 예전처럼 기색도 없이 그냥 싸버리고 나서 우는 것으로 알렸으며 어느 날은 그냥 쭈그리고 앉아 옷에 당당히 싸버리기도 해서 리셋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 그런 케이스도 많이 들어봐서다. 그럴 때면 실수한 것을 두고 나도 모르게 아이한테 화를 낼 때도 있었다.
"변기에 싸는 거 몰라? 왜 그냥 싸버려?!"
왜 그러냐니? 서툴러서 그런 거지. 노력한 것이 허사가 될까 전전긍긍하는 엄마의 한심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서서히 실수가 사라졌고 이제는 어린이집에서도 소변보기를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즈음에는 밤중에도 일어나서 변기에서 쉬를 하는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우리의 경우는 밤기저귀 떼기, 대변 기저귀 떼기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던 것이 외출했을 때 배변보기다. 평소에도 외출시 화장실로 순순히 가는 녀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고망이의 사전엔 '순순히'라는 부사는 없다) 낯선 화장실, 신나게 놀고 있는 상황이라면 데려가는 것이 더 힘들었다. 나는 이런 저런 곤란한 상황들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만일 가까운 곳에 화장실이 없다면? 들쳐안고 뛰어야 하나?(실제 그랬던 경우도 많다) 선배들은 남자아이니까 소변은 전통적인 이동식 소변기 '페트병'으로, 대변일 경우는 급히 기저귀를 채워서 해결하면 된다고 팁을 주시기도 했는데 우리 아이는 일단 '병'을 쓴다는 걸 엄청나게 끔찍해했다; 떠올려보면 아이들이 많은 곳에 있을 때 딱히 대소변 실수를 해 곤란을 겪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는데 그렇게 다들 꼼꼼 깔끔한가 싶고 왠지 나만 할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아이에게 혼란을 주지 않도록 외출할 때도 밀어부쳐야 한다고들 했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집에선 기저귀를 완전히 떼고서도 외출할 때는 좀더 길게 채웠던 것 같다.
지나고보니 수료로 가는 마지막 키워드는 '신뢰와 자신감'이었다. 배변에 점점 자신감이 생긴 아이는 정확하게 때에 맞춰 표현했고 가지 않으려고 울고불고 하던 낯선 화장실 변기에도 순순히 앉았다. 그간의 과정으로 아이보다 아이의 뇨의를 더 잘 알게된 나 역시 두려움이 차츰 사라졌다. 실수를 해도 별로 당황하지 않고 처리할 수 있었고 그러다보니 더더욱 자신감 있게 기저귀를 우리 생활에서 날려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어린이집에서도 실수 없이 표현한다는 피드백을 받았고 세돌을 맞았다.
개인적인 마지노선으로 볼 때도 그렇지만 담임 선생님과 얘기 나눈 목표(5세반 가기전 수료)를 달성한 성공적인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이 수료기가 배변훈련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되지는 않는다. 나 역시 그 시절 어떤 글과 영상을 뒤져봐도 크게 와닿는 팁이나 의견을 얻지 못했다. 다만 알게 된 것은 아이마다 기질과 성격 모든 것이 다르니 저마다의 적절한 방식이 있을 것이라는 거다.
우리 아이는 까다로운 기질에 뭐든 자기가 주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보니 어떤 사안에서든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어야 실행에 옮긴다. 따지고 보면 배변훈련도 실행 시점은 아이가 정했다. 분위기는 만들어주되 끌고 가려고 하면 안됐던 것이고 안달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 하나 있다. 믿고 기다려주면 결국은 해낼 것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