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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펑예 Apr 09. 2024

때때로 가출하자

홀로 오롯할 수 있어야 같이 있어도 즐겁지 

"아이가 태어나서 행복해진 건지 모르겠어."


고망이가 돌쯤 되었을 때 남편, J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 마디였다. 황달도 사라져 뽀얗고 통통한 얼굴로 뒤뚱뒤뚱 걷기 시작하던 이 예쁜 아이를 두고 이 무슨 망발인가. 물론 망발이 맥락없이 나온 건 아니었다. 그즘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싸웠고 그날도 냉랭하게 대화를 이어가다 무심코 내 입에서 "그래, 이렇게 우리는 점점 멀어지겠지."라는 말이 튀어나왔던 것이 발단이 되었을 것이다.


아이는 예쁜 꼬물이긴 한데 기동성이 생겼다고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니며 장차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될 떡잎을 보이고 있었고, 이유식을 해먹이고 치우는 게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이 모든 게 상당 부분 내 몫이었다. 일이란 건 혼자만 한다고 생각되면 두배 세배는 힘들어지는 법이다. 귀가를 늦게하고 일주일에 한번 쉬는 직업상의 이유는 그래, 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휴무일의 J는 내 눈에 주말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얄미운 동서처럼 보였다. 육아의 주요 업무-밥해서 먹이고 치우기, 대소변 치우기, 목욕하기, 옷 갈아입히고 재우기, 놀아주기-에서 나를 기민하게 팔로우하는 것은커녕 소극적으로 뒷짐을 지고 있다가 내가 구체적으로 시키는 지시만을 '겨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자거나 핸드폰을 보는 등 자신만의 휴식 시간을 야무지게 챙겼다.

일주일 동안 의 휴무만을 기다리다가 이런 꼴을 맞딱뜨리게 된 나는 공정하지 못하다는 억울함과 가사와 육아는 여성의 전유물인가 하는 페미니즘적 분노에 휩싸인다. 그러다 결국 이런 생각에 다다른다.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고생한다고? 말은 잘하네. 고생하고 있는 꼴을 그냥 보고만 있으면서!!'


그래서 참고 참다 불길에 뚜껑이 열려 "으르렁" 사자후를 날렸다. 나는 전형적으로 화가 나면 손해보는 스타일인데 상대가 잘잘못을 인정할 수 있게 정연하게 이야기하기보다는 감정이 그 모든 것을 삼켜버려 이야기의 논점도 잃고 조음 능력도 잃어버린다. J는 왠만해선 간단한 응수 정도 후 입을 닫아버리는 타입이었고 나는 일단 내지르고 난 후에는 나의 과격함과 논리없음에 실망하기 일쑤라 싸움이 피터지게 길어지진 않았다.(그리고 한편으로는 불길이 일단 사라져 속이 후련해지기도;) 하지만 풀어지지 않는 상대에 대한 서운함으로 관계가 냉랭해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그런 망발을 주고 받게 된 것이다. 나는 지쳤고 J가 변할 것 같은 조짐도 안 보여 정말 관계가 이대로 멀어지겠구나 했었다. 출산 후 관계가 소원해진 부부를 실제 많이 보기도 했고.

그러다 이 냉전기를 해빙 무드로 전환한 건 용케도 J였다.  

"나 쉬는 날 반나절 정도는 밖에서 자기 시간 가지다가 와요."

처음엔 그 제안을 거절했다. 본인이 내가 말한 대로 노력할 생각은 않고 나를 피하려 한다고 생각됐고 이 어설픈 시터에게 아기를 어떻게 맡기나 불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하루 있는 휴일, 가족끼리 함께 보내야 마땅하지 않나 싶어 망설였다. 지금보면 출산 후 한번도 아기를 누구에게 맡기고 내 시간을 가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육아 노동자 노예 근성이 생긴 것 아닌가 싶다. 그러다 아기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좀 더러운 옷을 입고 방치되어서 놀더라도 그것이 엄마 스트레스 튀는 것보단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 2~3시간씩 가출을 했다. 외출이라기보다 가출이 어울린다. 행선지도 말하지 않았다. 그냥 아기가 보지 않는 틈에 나간다는 한마디만 하고 나섰다. 처음엔 가까운 까페에 앉아 있다 오는 게 다였다. 불안에 쫓겨 2시간도 겨우 있었고 돌아오면 아기를 꼭 안아주며 속으로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점점 가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나갈 땐 울며불며 대성통곡하던 아기가 돌아가니 나를 보는 둥 마는 둥 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그들(부자)도 외출을 하고 없었다. 그래서 점점 반경을 넓혀 혼영도 감행하고 지인들을 만나 6시간씩 있다 오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확실히 분위기가 말랑말랑해져갔다.

내 마음에 유연함이 생겼다는 표현이 맞겠다. 내가 힘든 걸 나몰라라 해서(물론 그럴 때도 있었을 것이다) 적극적인 팔로우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팔로우를 해내는 것도 타고난 것으로 그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시키는 건 하니까 구체적으로 일일이 시키면 되지 않나, 라고 말이다. 그리고 남편 역시 둘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에게 더 애착을 느끼고 자신만의 육아 효능감도 느꼈던 것 같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즐거워하되 각자 홀로 오롯하라"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 나오는 말인데 나는 부부, 가족 관계에 있어 이보다 적절한 지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리고 그후 나타난 우리의 구원자, '어린이 집'은 일주일에 다섯번은 나에게 홀로 오롯할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평일에 쉬는 J와 우리끼리 오롯할 시간도 주었다. 그래도 힘들 땐 협의 하에 가출 시간을 갖기도 했고 이따금 친정으로 1박을 하러 가 남편의 오롯한 시간도 마련해주었다.

육아는 함께해야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무조건 많은 시간을, 하루종일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모두가 컨디션 좋을 때 함께하는 오전 1시간, 모두가 웃는 그 시간이 나는 우리 세 사람의 관계를 단단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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