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한편의 위로
묵직하게 다가오는 외로움의 무게
태풍이 매섭게 휘몰아치던 밤, 한 소녀가 사라진다. 복직을 앞둔 형사 현수(김혜수)는 소녀의 실종사건을 담당하게되고 실종을 자살로 종결 짓기 위해 그곳으로 향한다. 소녀의 주변사람들을 만나면서 소녀의 행적을 추적해 나가던 현수는 소녀의 주위에 남아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소녀가 혼자서 감당해야했을 고통에 가슴아파한다. 소녀의 행적을 찾아가면서 현수는 자신과 닮아있는 소녀의 모습에 점점 자신을 이입하게 된다.
이 영화의 장르는 미스테리가 아니다.
예고편이나 초반부의 분위기는 미스테리영화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래서 영화는 관객들이 범인이 누군지에 대해서 집중하게 만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현수(김혜수)가 세진(노정의)에 대해서 하나씩 알아가면서 현수에게 중요한것은 더이상 사건의 ‘진실’이 아닌 ‘세진’이다.
현수는 사건에 대해 알아가면서 점점 세진에게 자신을 투영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의문은 형사로서가 아닌 인간 현수의 의문으로 바뀌게 된다. 정말 세진을 위하는 사람이 단 한명만 이라도 있었다면 세진은 그런 극단적인 결정을 하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한다. 현수는 세진을 위하는 사람들이 단 한명이라도 있기를 바라며 세진의 주변사람들을 찾아다닌다.
자취를 시작했을때 혼자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며 그토록 즐거웠던 기념일이 싫어졌었다. 그런 날이면 괜히 더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기념일보다 더 싫었던 것은 아픈날이었다. 아플때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웠는지 아직도 그때가 생각난다. 주위에 아무도 남지않고 믿었던 사람들까지 모두 떠나버린 세진의 모습에서 자취방에서 혼자 아파했던 그날의 내가 보였다.
느리게 쌓아가는 감정의 깊이
영화의 전개는 전체적으로 좀 느린편이다. 사건전개가 빠르고 화려한 요즘 시대의 트렌드에 비하면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감독은 사건의 진실이 아닌 현수가 느끼는 세진에 대한 감정에 초점을 맞췄고 현수가 쌓아가는 감정의 섬세한 길을 관객들이 따라 걷기를 바랬다. 그래야 감독이 원하는 진짜 결말에 도달할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그런 감정에 치우치다보니 스토리에 대해서는 다소 식상하며 좀 부족한 부분들이 보인다. 현수가 가진 트라우마의 느낌에 대해서는 표현하기 위해 애쓰지만 그 트라우마의 내막에 대해선 그냥 저냥 넘어간다는 느낌도 든다.
평소 영화를 보며 스토리를 우선시하는 나에게 이 영화는 크게 취향에 맞는 영화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본 후 먹먹한 위로와 함께 마음속에 세진과 현수가 남았다는 것은 그만큼 천천히 감정의 길을 잘 따라갔다는 뜻일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을 살아간다.
“생각한 것보다 인생은 길어, 그러니까 너 스스로 구해야해”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역경을 겪고 또 겪는다. 마치 내 인생이 막다른 길에 다다른것 같다는 느낌도 들 것이고, 이제 모두 끝났다는 느낌도 들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 나온 대사처럼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우리는 아직 그 서막에 서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넘어진상태로 있을 수 없다. 일어서야한다.
이 영화는 그런 우리의 모습에 작은 공감과 위로를 주는 듯하다. 마치 불운에 가득찬 판도라의 상자속 마지막 희망처럼.
오늘은 보고싶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담은 인사를 전해보는것은 어떨까?
한줄평 : 나 자신에게 전하는 작은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