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꼬기 May 31. 2020

200531 어떤 어른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완독 

통영에 내려온 후 생긴 가장 큰 목표이자 관심은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전까지의 삶은 일단 '어른'에 대한 관심이 없었고, '어른'이라 부를 만한 '어른'을 겪을 일이 많이 없었고, 마지막으로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내 나이가 '어른' 줄에 들 거라 생각을 못 했다.(내게 노화 같은 것은 영원히~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통영에서 일을 시작한 뒤 일터에서 동네에서 하다못해 온라인상에서도 너무 많은 '어른'(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지위 높은 이들)들을 만나야 했고, 자연스레 '어른이란 무엇인가', '뭐하는 작자들인가', '엥? 나는 어른인가?'와 같은 생각들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배울 점이 많은 어른은 어른대로, 실망스러운 어른은 또 그런대로 내게 정말 좋은 귀감이 되어 주었다. 그런 만남에서 오는 감동과 실망, 긍정적 에너지와 스트레스 모두를 처음에는 감정적으로만 받아내다가 언제부턴가 '너는 어떻게 늙고 싶니', '어떤 어른이 될래?' 자문하게 됐다. 덕분에 이미 만났던, 앞으로 만나야 하는 어른들이 어떤 부류든 조금 흥미로워졌다. 그들의 좋은 점은 마음에 새겨 내 것으로 잘 발전시키되, 정말 별로다 싶은 건 내 안에서 나도 버리려고.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는 좋은 어른,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으면 어쩐지 '좋은 어른'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읽는 내내 행복했다. 작가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정말 부단히 스스로 살피고 노력하는 과정이 (본인에게는 조금 고될지라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나는 책을 읽으며 자주 웃었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으며 괜찮은 어른이 지녀야 할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자라는 동안 내가 들었던 어른들의 말도 언제나 단언하는 말들이었다. 스스로를 의심하는 어른은 본 적이 없다.'

'타인은 내가 모르는 낯선 세계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세계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이방인들이다. 그리고 끝내 닿을 수 없는 섬들이다.'

'아마도 어른이 된다는 건 모순과 부조리와 불행의 중력 속에서 힘껏 저항하는 경험을 하나씩 늘려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시에 그럴 수 없는 순간을 맞게 되었을 때는 그것을 잘 감내하는 일이기도 할 테다.'

'대화의 깊이는 관계의 거리가 아니라 경청하는 태도에 있다는 것을.'


누구나 자신만의 역사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경청할 것, 삶이나 관계에 힘든 순간이 와도 유연하게 바라보고 단단하게 버틸 것, 자신의 편의와 행복을 위해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 중 그 무엇이라도 고통에 빠뜨리거나 배척하는 일을 배척할 것, 산전수전 겪은 '나'라고 생각하더라도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있음을 염두에 둘 것, 무엇보다 겸손할 것, 그리고 겸손을 바탕으로 이 모든 일에 대해 매일매일 부단히 노력할 것. 책이 가르쳐준 어른의 모습은 이런 것들이었다.  


'나는 내가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사는 것이 무엇을 향해 가는 일인지 조금씩 더 선명해졌으면 좋겠다. 10년 전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니(10년 전의 나는 정말 한심한 인간이었으므로) 10년이나 20년, 혹은 30년 뒤에는 내가 어떤 면에서 분명 지금보다 나은 사람, 그러니까 내가 되고자 하는 방향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간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저자처럼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살아낸 세월이 쌓아준 지혜로 남을 판단하기 전에 나부터 돌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정말 원하는 것인지, 혹시 과시용은 아닌지 끊임없이 묻는 사람. 그리고 나를 돌본 결과가 자기연민이 되지 않게끔 늘 경계하고, 내가 받은 사랑과 관심을 늘 기억하고 주변에 마음을 다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게 돌아오지 않더라도 말이다.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삶을 꾸려가고 부단히 노력하는 어른이 쓴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를 통해 큰 위로를 받았고 행복했다. 주변에 열심히 영업 중이다. 이미 베셀이지만...ㅎㅎㅎ


매거진의 이전글 200524 탬버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